“유느님 칭찬하는 일은 세상에서 제일 지루한 일이다.”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이하 <유퀴즈>)에 출연한 영화평론가 이동진의 말처럼 유재석은 미담이 차고 넘쳐서 이제 웬만한 칭찬이 아니라면 칭찬 자체가 무색할 자타공인 모범 연예인이다. 대한민국에 사는 모두가 안다. 그리고 모두가 좋아한다. 그 흔한 연예인 악플도 유재석만큼은 비껴간다. 단순히 인기가 많고 유명한 연예인 수준이 아니다. 그 어떤 연예인 옆에 있어도 유재석의 존재감은 바래지 않는다. 가히 그 이름 석자에 거룩하다는 수사를 붙여도 거북하지 않을 신성한 존재처럼 여겨진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유느님이라는 별명이 괜히 생긴 게 아니다. 그저 빛이다.
김국진, 이휘재, 탁재훈, 김용만, 신동엽, 강호동, 김구라 등 유재석 이전에도, 이후에도, 나름 굵직한 인지도를 가진 예능 방송인은 있었고, 있다. 하지만 유재석 만한 존재감을 자랑하는 예능 방송인은 이전에도 없었고, 지금도 없다. 유재석에게는 분명 특별한 것이 있다. 그리고 그 특별함이란 대단한 유머 감각이나 놀라운 진행력이 아닌 의외의 재능에 있다. 혹자는 반문할 수도 있다. 유재석이 웃기지 않다고? 물론 유재석이 전혀 웃기지 않은 개그맨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나름 공채 출신 개그맨인데 전혀 웃기지 않고 뽑혔을 리도 없는 일이다. 하지만 유재석이 너무 웃겨서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정말 몇이나 될까?
“별로 웃기지 않아요. 유재석 씨 지금도 보세요. 폭발적으로 웃기는 사람이 아니에요. 개그맨들 그룹 중에서 굉장히 평범하죠.” 유재석 데뷔 30주년 특집으로 진행된 <유퀴즈>에 출연한 김영희 PD는 <느낌표>에 유재석을 섭외한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뼈 때리는 말이 아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이 대박이 나고 롱런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한 번 빵 터지고 나서 그 소재로 고갈되는 경우가 굉장히 많거든요. 그러니까 은은하게 오래가야 되는데 굉장히 소탈하고 솔직해서 섭외해야 되겠다(고 생각했어요).”
김영희 PD의 말처럼 유재석은 축구로 치면 골잡이가 아니다. 스트라이커가 아니다. 하지만 축구를 스트라이커 혼자 하는 게 아니듯 방송도 혼자 하는 게 아니다. 유재석은 리베로 같은 개그맨이자 방송인이었다. 후방에서 팀의 안정감을 책임지면서도 때때로 중원을 뚫고 올라와 벼락같은 슈팅을 날리기도 하는 전천후 플레이어다. <유퀴즈>에 출연한 영화평론가 이동진이 남긴 유재석에 대한 한줄평은 이런 유재석의 특징을 깔끔하게 정의한 것이기도 하다. ‘온 세상을 담아내는 바르고 유쾌한 귀.’ 그렇다. 유재석은 액션스타가 아니라 리액션 스타다. <유퀴즈>가 지금처럼 성공적인 예능 프로그램으로 자리 잡은 것도 그런 유재석의 역량 덕분이었다.
사실 <유퀴즈>는 처음부터 주목받는 프로그램이 아니었다. 지금은 예능에 좀처럼 출연하지 않는 배우들도 기꺼이 출연하며 그때마다 화제성을 낳는 프로그램이 됐지만 시작부터 그랬던 건 아니었다. 이런 프로그램이 하는지 모르는 이들도 부지기수였다. 여느 한 동네를 찾아간 유재석과 조세호가 무턱대고 걷다가 만난 사람을 그 길에 앉아 인터뷰한 뒤 퀴즈를 내서 정답을 맞히면 인근의 ATM 기기에서 현금 100만 원을 출금해 전달한다. 그러니까 잘 알지 못하는 평범한 누군가의 삶을 듣고, 그 누군가가 퀴즈를 맞히고 100만 원을 받는 과정을 보는 것이 과연 재미있을까? 활자로만 들었을 때에는 분명 와닿지 않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어려운 것을 유재석과 조세호가 해낸다. 잘 모르는 평범한 이의 삶에 대해 듣는다는 건 의외로 특별하지 않아서 보다 너른 공감대를 자극하는 것이었다. 긴 인생을 살아가야 할 청년의 고민은, 긴 인생을 지나온 중년의 소회는 놀랍도록 특별한 물음표와 느낌표가 걸리는 것이었다. 나아갈 삶에 걸릴 물음표와 지나온 삶에 걸린 느낌표는 손쉽게 마침표를 찍을 수 없는 무궁무진한 이야기의 세계였다. 유재석은 그런 이야기를 위한 특별한 수식어처럼 거기 자리하고 있었다. 이야기를 만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를 찾아가고 들어주는 특별한 존재, <유퀴즈>는 그렇게 유재석이라는 귀를 통해 로드 토크 퀴즈쇼라는 전무후무한 포맷의 예능 프로그램으로 자리매김했다.
코로나19 유행으로 인해 길거리에서 만난 낯선 이들의 반가운 사연을 들을 기회는 없어졌지만 <유퀴즈>의 영향력은 다른 방식으로 확장됐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유재석이라는 아이콘의 위력은 더욱 형형해졌다. 지난 9월 시사주간지 <시사IN>에서 발표한 언론 신뢰도 조사에 따르면 가장 신뢰하는 언론인 순위에서 1위를 차지한 전 JTBC 스튜디오 총괄사장 손석희에 이어 2위를 차지한 건 유재석이었다. 10위 안에서 연예인으로 분류되는 인사는 유재석이 유일했다. 낯설게 느껴지는 결과이지만 유재석의 대중적인 영향력을 염두에 둔다면 납득하지 못할 결과도 아닌 것 같다.
과거 손석희 앵커가 진행하는 <뉴스룸>에 문화계의 유명인사들이 출연한 건 손석희라는 상징적인 존재감과 무관하지 않았을 것이다. <유퀴즈>도 마찬가지다. 공유, 배두나, 신하균, 정우성, 황정민, 신민아, 조승우 등 좀처럼 예능 프로그램에서 얼굴을 보기 힘든 배우들이 <유퀴즈> 출연을 선택한 건, 그것도 몇몇 배우는 생애 첫 예능 출연 프로그램으로 <유퀴즈>를 선택한 건 우연이 아니다. 거기 유재석이 있기 때문이다. 단순히 유명하고 인기 있는 MC가 있기 때문이 아니다. 신뢰할 수 있는, 부담 없이 이야기를 털어놓을 수 있는 이가 거기 있기 때문인 것이다. 대중들이 유재석을 믿는 것처럼 배우들도, 연예인도 유재석을 믿는다. 다 같은 사람이다.
<유퀴즈>를 통해 쌓아 올린 유재석이라는 신뢰도는 천재지변이 없는 이상 꾸준히 유지될 것만 같다. 유재석은 자신을 사랑해주는 이들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잘 아는 사람이다. “내가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많은 분들에게 웃음을 주면 줄수록 나 또한 매우 행복하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많은 분들에게 행복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으면 좋겠다. 그럼 나 역시 행복할 수 있을 테니까.” 참고로 이 멘트는 과거 유재석을 직접 만나 인터뷰하며 들었던 말이다. 맞다. 자랑이다. 유느님을 만났다는 건 충분한 자랑거리니까. 그리고 잘 알다시피 이건 부러워해도 지는 게 아니다. 마음껏 부러워하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