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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용준 Mar 04. 2022

안철수의 네 번째 단일화를 보며 생각한 것

일단 많이 웃었다.

지난 아침에 일어나 기사를 읽고 진심으로 크게 웃었다. 안철수의 단일화 선언 속보를 읽고 웃어버렸는데 안철수가 철수한 게 한두 번도 아니라 그게 웃긴 건 아니었고, 내심 그래도 이번 대선에서 안철수가 뭔가 조금 달라 보인다고 생각했던 내가 생각나서 웃겼다. 물론 안철수가 걸어온 꼴, 아니, 행보를 봐온 입장에서 갑작스럽게 그의 지지자가 된 건 아니었지만 윤석열을 뽑으면 그 손을 잘라버리고 싶을 거라고 말했던 게 엊그제 같은데 말이다. 그렇다면 안철수는 윤석열과 단일화를 했지만 윤석열을 뽑지 않으면 되는 건가 싶기도 하고. 단일화를 한다는 거지 단수를 하겠다는 건 아니니까.


그래도 찰스가 나름 정치인 다 됐다고 생각은 했다. 완주를 다짐하며 단일화를 거부하던 상대 후보를 맹렬하게 공격하더니 결국 하루아침에 말을 바꾸고 단일화를 이뤄냈다. 단일화와 관련된 딜에 대해서 갖은 풍문이 도는 모양인데 다 떠나서 대선 이후 양당 합당까지 한다고 하니 윤석열과 안철수가 힘을 합쳐 안티 이준석 연대는 확실히 만드는 모양새는 될 것 같다. 물론 대선에서 윤석열이 승리한다는 가정 하에서. 


안철수가 정확히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수학까지 갈 필요도 없고, 간단히 덧셈, 뺄셈, 산수만 해봐도 이번 단일화는 그에게 득 보다 실이 많다. 이번 대선에서 완주했다면 나름대로 심지 있는 제3지대 정치인으로서 입지를 다질 수 있었을 텐데 결국 단일화 페티시가 너무 달아올랐던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야밤에 만나 단일화를 이뤘다. 정말이지 딜도 아닌 딜에 꽂힌 거 같은데 결국 그는 제3지대를 이끄는 협객 같은 포지셔닝을 원하진 않는 거 같다. 적어도 그가 손가락질하던 거대 양당 체제라는 게 지적의 대상이 아니라 지향의 대상이었다는 건 알았다. 그리고 언제나 그러하듯이 찰스는 단일화로 잘 구운 다음에 노릇노릇할 때 한편에 밀어 두고 짜게 식을 때까지 뒀다가 마저 태워 버리기 좋은 상대이니까. 물론 여기서 뜻밖의 반전 같은 게 있다면 의외로 윤석열도 단일화 페티시가 있었는데 찰스를 만나서 그렇게 막 더럽.


지금은 매우 부끄러운 기억이 됐지만 한때 안철수가 등대 같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안철수가 유일하게 빛났던, 막 정치에 뛰어들던 2011년 무렵인데 그 당시 무상급식 실시 주민투표 투표율에 서울시장 자진사퇴를 올인한 오세훈이 무릎까지 꿇었지만 추진력을 얻지 못하며 끝내 사퇴하는 초유의 사태로 벌어진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가장 유력한 서울시장 후보로 꼽혔던 것이 바로 찰스였다. 하지만 찰스는 무소속 후보였던 박원순을 서포트하며 그를 서울시장으로 만드는 서포터 역할을 했고 덕분에 차기 대선 후보로 급부상했으나 그 이후로 그는 아하하하하하하하핫하하하. 말을 말자.


생각해보면 안철수는 정치인으로서 야심이 없던 사람이었지만 개판 오브 개판이었던 정치판 고인물 대신 새로운 얼굴을 갈망하던 시민이 선택한 인물이었다. 그리고 그런 인기를 바탕으로 정치인이 된 안철수는 한때 새로운 정치의 대안 같은 별이었지만 모두가 알다시피 지금은 그냥 철수 4범 정치인에 당선 경력도 없는 이준석의 디스 배틀 맞수일 뿐. 역시 생각해보면 몇 년 전까진 애초에 대통령 후보 같은 건 생각해본 적도 없었을 윤석열이 대선 유력 후보인 지금이라는 시계 안에서 안철수와 그의 단일화는 이거 정말 상징적이라는 생각도 든다. 


아무튼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던 찰스의 진심은 단일화 희망을 버리지 않고 윤석열의 도리도리를 오마주한 것이었던 걸까 싶기도 한데 그렇게 보면 찰스도 많이 늘었다. 이제 누가 봐도 어엿하게 낡은 여의도 고인물이시다. 그의 선택이 이번 대선에 어떤 파장을 일으킨 것일까 귀추가 주목되는데 어느 정도 고민이 있었던 나는 찰스 덕분에 결정한 것 같다. 결국 돌려줄 것은 돌려주는 것이 인지상정이니까. 시저의 것은 시저에게, 낡은 것은 낡은 것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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