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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용준 Mar 28. 2022

대통령과 집무실 그리고 국민의 뜻

국민을 위한다는 말보다 중요한 건 정말 국민을 위하는 행동일 것이다.

아직 한 달도 지나지 않았는데 1년은 지난 것 같다. 대선은 끝났고, 차기 대통령은 정해졌다. 하지만 아직 취임도 하지 않은 대통령의 새로운 거처로 인해 온 나라가 떠들썩한 기분이 든다. 물론 모두의 일상이 그에 관한 소리로 점철된 것은 아니겠지만 하루가 멀다 하고 그에 관한 소식이 이어지고, 토론을 빙자한 의미 없는 비방만 반복된다. 아직 취임하지도 않은 대통령이 고집하는 새로운 집무실 위치를 두고 온 나라의 시간이 텁텁한 체증을 느끼는 것만 같다.


태어나서 단 한 번도 이사라는 것을 경험해보지 못한 운 좋은 이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대체로 많은 이들은 그런 운이 없었을 것이다. 어쩌면 운이 있어서 이사를 하게 된 경우도 있을 것이다. 아무튼 살아생전 어떤 식으로든 이사를 경험해보지 못한 이는 없을 것이라고 감히 단언한다. 그러니까 이건 대체로 모든 이들이 알고 공감하는 사실이다. 이사란 번거롭고 성가신 일이다. 가기 전부터 번거롭고, 한 뒤에도 번거롭다. 한 식구가, 한 집이 이사를 해도 한 달 내내 끝나지 않는 집 정리를 틈틈이 붙잡고 있거나 대체로 어느 수순에서 포기하기도 한다. 그만큼 이사라는 것은 손이 많이 가고 힘든 일이다. 


대통령 당선자 윤석열이 청와대에 들어가기 않겠다는 이유는 명확하다. 제왕적 대통령이 되기 싫다는 의미다. 여기서 ‘제왕’이란 ‘황제와 국왕을 아울러 이르는 말’이란 의미를 가진 단어로 한국에서는 유물 같은 사어가 된 지 오래다. 그러니 그 뜻을 헤아려보자면 구시대적인 권력을 남용하는 대통령이 되지 않겠다는 의미일 것이다. 언어 자체로 보자면 좋은 의지처럼 보인다. 하지만 정작 지금 벌어지는 일련의 사태를 보자면 과연 그가 구사하는 언어가 실천으로 이어지고 있는지는 여러모로 의문스럽다. 


일반적인 가정집 하나가 이사를 해도 정리하고 정돈하는 부침은 생각 이상으로 크다. 그런데 당장 오는 5월 10일부터 대통령 업무를 수행해야 하는 윤석열 당선자는 청와대에 들어가지 않겠다는 선언에 이어 국방부 청사를 집무실로 쓰겠다고 발표했다. 모든 과정이 일방적이고 초법적인 인상이라 여러모로 우려스럽다. 간단히 말해서 국가 안보의 최고 컨트롤타워라 할 수 있는 대통령 집무실과 국방부 청사가 불과 두 달 남짓한 시간 안에 자리를 옮겨야 한다는 것인데 현 정권의 안보 불안을 주장했던 인사가 이렇게까지 심각한 국가 안보 공백의 불안을 야기하는 고집을 부린다는 것 자체가 의아하다. 


가장 중요한 건 국방부 청사로 집무실을 이전하는 것에 대한 권리와 책임은 당선인의 것이 아니다. 5월 10일 이전까지 국가 안보의 책임은 현정권에 있고 그만큼 안보 공백에 대한 최소한의 가능성에 대해서는 일말의 합의라는 것이 성립하기 어렵다. 심지어 제20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서는 이 모든 과정이 별거 아니라는 식으로 호도하는 경향도 적잖아서 우려가 크다. 좀처럼 납득이 되지 않는 대통령 당선자의 기이한 의지와 결단을 떠받드는 이들의 일방적인 주장에서도 어떠한 합리가 발견되지 않기 때문이다. 


다 떠나서 청와대를 국민에게 돌려주겠다는 약속을 이행한다는 주장 역시 의아하다. 2년여 동안 코로나19 유행으로 인해 생계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소상공인이 적지 않고, 최근에는 강원도와 경상북도 산간을 태운 화마로 인해 생계의 터전 자체를 잃은 이들이 즐비한데 그에 대한 일언반구 없이 대통령 집무실 이전에 혈안이 된 것처럼 목을 매는 당선자와 인수위원회의 모양새는 여러모로 의아하고 두렵다. 아직 취임도 하지 않은 당선인에 대한 지지율이 50%를 밑도는 지표까지 나오는 건 차기 정부에 대한 기대보다 불안의 심리가 그만큼 팽배하다는 것을 대변한다. 


국민을 섬기겠다는 그들의 언어 속에 자리하는 국민이라는 존재가 과연 현실에 자리하고 있는 것인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국민이라는 집단을 자신의 공약 이행을 위해 일획화된 존재로 해석해버리는 방식도 끔찍하다. 국민이라는 단어 아래 포로가 된 다양한 생각은 애초에 반영할 의사가 없다는 선언처럼 들리는 것 같아 벌써부터 차기 정부를 향한 마음이 무거워진다. 심지어 항간에는 법사인지 도사인지 정체를 알 수 없는 작자가 3년 전에 발음했다는 이상한 언어가 떠돌면서 대통령 당선자가 무속과 풍수에 근거해 집무실을 고집한다는 풍문까지 돌고 있다. 


논리적으로 납득하기 힘든 허구 속의 언어가 현실을 파고드는 건 현실이 삼류 시나리오보다 수준이 낮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문제는 우리가 영화 속 캐릭터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차기 대통령 당선자가 이런 우리네 현실을 살피는 눈과 마음을 가진 존재이길 바랄 뿐이다. 국민을 섬기는 대통령이길 염원한다.  


(명지대학교에서 발행하는 학보신문 <명대신문>에 쓴 '민용준의 허허실실' 칼럼을 재편집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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