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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용준 Oct 22. 2022

영화제가 그렇게 만만합니까?

부산국제영화제의 활기 속에서 올해 국내 영화제에 직면한 위기가 떠올렸다.

‘양조위 패키지는 하루 150개 한정 판매합니다. 대리구매 방지를 위해 1인당 2개까지 구매 가능합니다.’ 지난 10월 5일에 개막한 제27회 부산국제영화제 기념품 매장에서는 뜻밖의 오픈런을 기다리는 긴 줄이 늘어섰다. 심지어 새벽 4시부터 줄을 서는 사람도 있다고 했다. 이게 다 양조위 때문이었다. 개막 전부터 양조위가 2박 3일 일정으로 내한한다는 소식이 전해지며 화제를 모았던 이번 영화제는 양조위 사진엽서와 배지 등으로 구성된 양조위 패키지를 한정 제작해 판매했는데 생각 이상으로 판매 열기가 거셌다. 심지어 양조위가 참석하는 GV가 있는 8000원 예매가의 <무간도> 상영 티켓이 온라인상에서 기십만원의 암표로 거래되는 정황까지 포착될 정도였다.


제27회 부산국제영화제는 팬데믹 이후로 3년 만에 좌석 간 거리두기 없이 열린 영화제였다. 그만큼 관객들의 호응이 절실했다. 양조위의 방한은 영화제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키는 상징적인 이벤트였다. 다만 화제작으로 꼽히는 세계적인 거장의 신작을 소개하는 갈라 프레젠테이션 섹션 초청작이 두 편에 불과하며 양조위 내한에 준할만한 국제적 이벤트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은 다소 아쉽지만 OTT 섹션 강화로 영화제의 패러다임을 확대하는 공격적인 전략과 아시아콘텐츠&필름마켓 규모가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는 점은 고무적이다. 무엇보다도 영화제가 반환점을 돌아 한산해지기 시작한다는 6일 차 월요일에도 부산국제영화제의 심장부라 할 수 있는 영화의 전당 인근에는 적지 않은 인파가 몰리며 축제의 불씨가 유지되고 있다는 인상을 느끼게 만들었다. 여러모로 정상화라는 단어가 어색하지 않았다.

코로나19 유행으로 주춤했던 부산국제영화제의 위상이 회복되는 상황은 반갑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올해 영화제의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팬데믹 때문이 아니었다. “정말 놀라운 게 영화제를 비롯해서 연속성을 갖고 매년 개최되는 문화행사를 보호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없다는 거예요.” 올해 부산국제영화제 현장에서 만난 김형석 평창국제평화영화제 부집행위원장의 말이다. 지난 8월, 평창국제평화영화제는 올해 개최된 4회를 끝으로 폐지 수순에 들어갔다. 내년 영화제 예산 지원이 불가하다는 강원도청의 일방적인 통보를 받은 탓이었다. 충북국제무예액션영화제 역시 지난 8월, 충북도청으로부터 예산 재점검을 이유로 지원 중단 통보를 받아 폐지 절차를 밟았고, 그에 앞선 7월에는 울산국제영화제와 강릉국제영화제가 울산시청과 강릉시청의 지원 불가 통보를 받고 지원금 환수 절차에 들어가 올해 계획 중이던 영화제 개최가 무산됐다.


평창국제평화영화제를 비롯해 올해 폐지된 네 개의 국제영화제는 모두 개최 횟수 4회 이하의 영화제라는 공통점이 있다. 그만큼 지역적 뿌리가 얕지만 명확한 가능성을 평가받지 못했다는 점에서도 공통적이다. 하나 같이 지자체 지원 철회와 함께 폐지됐다. 혹자는 이를 두고 영화제가 자생력이 없다고 비판하기도 하지만 이는 애먼 소리나 다름없다 올해. 폐지된 영화제에 지원된 지자체 예산은 10~30억 원 안팎으로 알려져 있다. 세금으로 책정되는 예산인 만큼 신중하게 사용할 필요는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막대한 예산을 들였다고 평가되는 영화제 중단하기를 결정하는 데 있어서도 그만큼 신중하고 면밀한 절차가 필요하다는 의미다. 그런데 과연 영화제 폐지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신중한 검토와 면밀한 논의가 이뤄졌을까?


평창국제영화제 사무국에서 강원도청을 통해 예산 지원 중단에 관한 사실을 전달받은 건 지난 8월 23일경이었다. 올해 개최된 영화제는 강원도청으로부터 18억 원 상당의 지원금을 받았고, 이는 영화제 예산의 90% 수준에 달한다. 사실상 영화제를 폐지하라는 통보였던 셈이다. 예감은 있었다. 지난 6월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직후 강원도지사 당선인이 된 김진태는 후보 시절부터 ‘가짜 평화 행사를 다 없애겠다’고 공언해왔다. 선거가 끝난 뒤에는 평창 평화포럼과 평창국제평화영화제를 비롯한 2018 평창동계올림픽 개최를 기념하는 레거시 사업이 전면 중단될 것이라는 전망이 지역 언론을 통해 기사화됐다. 새로운 강원도지사가 영화제와 헤어질 결심을 하고 있다는 소문이 돌았다. 영화제 사무국도 손 놓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영화제의 사업성과 가능성을 알리고 설득해보고자 인수위 시절부터 예비 도지사와의 면담을 거듭 요청했지만 좀처럼 이뤄지지 않았다.

8월 11일 한 유력 일간지는 김진태 강원도지사가 ‘일회성, 선심성 행사에 도민 혈세 수십억 원이 들어가는 것도 막을 것이다. 평창평화포럼과 평창국제영화제가 대표적이다’라고 발언했다는 내용의 인터뷰 기사를 게재헀다. 영화제 사무국과 영화제 지원과 관련된 실무를 논의하거나 검토한 바는 없지만 정책결정자의 의지만 선명했다. 4년간 지속된 영화제가 도지사 한 사람의 의지로 일사불란하게 지워졌다. 물론 세금으로 운영되는 지원 사업의 실효가 불분명하다면 중단하기를 주저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만큼 치밀한 검토가 이뤄지지 않은 채 4년 임기의 지자체장의 알력으로 일찍이 지속되던 문화 사업이 중단된다면 그 역시 당연한 일은 아닐 것이다. 세금으로 운영된 사업인 만큼 지속된 사업의 명암을 확실하게 묻고 따지며 지속과 폐지의 경중을 면밀히 따져야 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 아니었을까. 평창국제평화영화제의 폐지 과정에서는 그런 문답이 일절 없었다. 그저 누군가의 의지만 두드러졌을 뿐이다. 올해 폐지 수순을 밟은 네 개의 국제영화제가 모두 이런 식이었다.


“동네 어르신들 말씀을 들어보면 올림픽보다 영화제가 낫다고도 한다”는 김형석 부집행위원장의 말은 허언이 아니다. 평창국제평화영화제의 주둔지라 할 수 있는 횡계리에는 극장이 없다. 간단히 말하면 영화라는 것이 부재한 땅이었다. 하지만 영화제가 개최되면서 젊은 시네필들이 마을을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영화제라는 것이 영화만 상영한 것이 아니다. 영화제는 축제다. 없던 활기를 일으키는 부대 행사도 함께 열린다. 올림픽 개최 이후로 특별한 쓸모를 찾지 못하고 휑하게 주차장으로만 쓰이던 1만 7000여 평의 메달플라자에서 다양한 공연이 열리고, 영화제를 찾은 이들로 북적이는 풍경이 매년 이어진다. 이렇듯 매년마다 타지에 사는 젊은 관객을 유입시켜주며 지역에 활기를 북돋워주는 축제가 일회성, 선심성 행사로 평가된 까닭이 궁금하다. 주장만 있을 뿐, 명확한 근거를 제시하지 않은 채 지원이 불가하다는 통보만으로 매년 기십억원을 들여 4년간 지속된 영화제를 하루아침에 없애는 것도 심각한 기회비용일 것이다.

지금은 세계적인 영화제로 거듭난 부산국제영화제도 한때 정치적 논란에 휩싸이며 고초를 겪은 바 있다. 이미 동아시아 최대 규모의 영화제라고 평가된 2014년에는 세월호 참사 구조 현장의 목소리를 담은 다큐멘터리 <다이빙벨> 상영을 결정했다는 이유로 당시 부산시장이자 조직위원장이었던 서병수의 직접적인 압박을 받은 정황이 포착됐고 대대적인 감사를 받았다. 그해에 영화제 개최가 가능할지 모르겠다는 비관적인 전망까지 나올 정도였다. 올해 26회를 맞이한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는 비슷한 상황에 직면해있다. 지난 9월 16일, 더불어민주당 양정숙 부천시의원은 본회의에서 영화진흥위원회 발간자료를 토대로 영화제 폐지를 주장했다. 지자체 보조금 비율이 70%를 상회하는 것에 비해 경제효과가 미미하다는 것이 주된 근거였다.


세수 지원으로 진행되는 영화제가 해당 지역에 얼마만큼의 경제적 이윤을 남겨주는 것인지 따져 묻는 일도 중요할 것이다. 하지만 영화제의 지속가능성을 결정하는 과정이 불충분하다고 여겨진다면 그 역시 문제일 것이다. 혈세를 낭비할 수 없다는 주장만으로 세금을 들여 뿌리내린 문화적 행사를 단박에 베어내듯 지원을 끊어버리는 것이 과연 타당할까? 다 떠나서 임기제 지자체장이 바뀔 때마다 영화제의 존폐가 결정된다면 해당 지역 사회에서 지속 가능한 사업이라는 게 존재할 수 있을까? 세계적인 명성을 자랑한다는 부산국제영화제도 그런 의지만 있다면 하루아침에 사라질 수 있는 것 아닌가? 한국의 문화적 위력이 세계적인 위상을 자랑한다는 지금, 3년 만에 활기를 되찾은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문득 이런 물음을 갖게 되는 건 그저 기우에 불과할까? 하지만 올해 사라진 영화제들이 남긴 물음표는 영화의 전당 아래 드리운 그림자보다 선명하게 다가온다. 영화제가 그렇게 만만합니까?


(격주간으로 발행하는 '1st Look' 매거진 10월 첫 호에 쓴 칼럼을 재편집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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