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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용준 Oct 26. 2022

단절의 시대를 일깨운 연결의 가치, 로코노미

지금 로코노미가 뜨는 이유,  글로벌이 아닌 로컬이 대세다.

아무도 몰랐다. 2019년 연말까지만 해도 불과 몇 달 뒤의 세계가 이렇게 될 것이라는 예감 자체가 불가능했다. 가지 못할 곳이 없었던 세계의 문은 닫혀버렸고, 사소한 약속조차 각오가 필요한 선택처럼 여겨졌다. 여행이라는 단어가 낯설어졌고, 만남을 미루는 것이 예의처럼 여겨졌다.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생소한 용어가 일상적인 언어로 자리 잡은 것도 채 3년이 안 된다. 코로나19라는 바이러스의 전 세계적인 유행이라는 팬데믹을 처음 겪는 인류에게 지난 3년의 시간은 여러모로 낯설고 생소한 시간이었다. 


그만큼 많은 것들이 변했다. 팬데믹이 왔다 하여 사는 것을 중단할 수 없는 사람들은 새로운 생활양식을 받아들이고 감내했다. 그리고 작용이 있다면 반작용도 있기 마련이다. 외출과 만남이 어려워지고 꺼려지는 상황에서 활동 반경이 축소된 개개인의 일상을 보조하기 위한 비대면 서비스 산업과 해당 기술이 급격하게 성장하고 발달했지만 나가고 싶고, 만나고 싶은 마음까지 억누를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할 수 없는 것에 익숙해지는 만큼 갈망도 함께 축적되기 마련이다. 가능한 선에서 누릴 수 있는 것들을 찾아내기 시작했다. 멀리 나가지 않고도 할 수 있는 것들, ‘로코노미(Loconomy)’라는 용어도 그런 경향 안에서 파생되고 규정된 언어처럼 보인다.


‘로컬(Local)’과 ‘이코노미(Economy)’를 합성한 신조어인 로코노미는 말 그대로 특정 지역성 자체가 소비 영향력을 가진 경제적 효과를 일으키는 브랜드가 되는 현상을 정의한 것으로 보인다. 사실 지역성 자체가 하나의 브랜드처럼 여겨지며 경제적 효과를 일으키는 현상은 새로운 경향은 아니다. 이를 테면 소위 ‘핫플’이라고 일컫는 명소들은 예전에도 있었고, 그 언어가 존재하기 전부터 사람들이 찾는 유명한 장소라는 곳은 늘 있었다. 그런 면에서 로코노미라는 언어는 새삼스러운 면이 있지만 이런 트렌드를 규정하는 언어가 대두될 때에는 대체로 이를 뒷받침하는 바가 있기 마련이다. 


트렌드란 소비와 직결되는 생활 양식이기에 대체로 돈의 흐름을 파악한 데이터보다 확실한 근거는 없을 것이다. 구체적으로 올해 1월 19일 신한카드 빅데이터연구소에서 신용카드 이용자들의 카드 소비 데이터를 분석해 발표한 트렌드 리포트 ‘2022년의 소비 트렌드 주요 키워드’ 여섯 가지 중 하나로 로코노미를 내세운 것도 주목할만하다. 신한카드 이용건수 기준으로 매년 1월부터 9월 사이 지역별로 고유한 개성을 가진 매장을 대상으로 이용 변화를 살펴보니 2020년에 비해 2021년에 소비 지표가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고, 그러한 소비 패턴이 트렌드에 민감하다고 여겨지는 청년층 이외 세대까지 폭넓게 적용된다는 분석이 나타났다.


이는 팬데믹으로 인해 외출을 삼가려는 심리가 강해지면서 먼 이동 경로보다는 인접한 지역에서 필요한 것들을 해결하려는 심리가 주거지와 인접한 지역 내에서 가능한 것들을 살펴보고 발견하는 흥미로 발전한 사례처럼 보인다. 특히 부산, 전주, 인천 등 지역명을 상호로 활용한 가게가 많아지는 추세가 보인다는 점 역시 지역성 자체가 브랜드처럼 여겨지는 인식이 강해지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현상처럼 보인다. 그리고 로코노미가 단순히 로컬 안에서만 머무는 현상에 불과한 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팬데믹으로 인한 비대면 배송과 배달 산업의 발달을 통해 타 지역을 직접 방문하지 않고도 소비할 수 있다는 연결성의 간편함 자체가 새로운 소비 트렌드를 발생시켰다는 정황도 보이기 때문이다.


2021년 1월부터 9월 사이, 해당 지역에서만 구할 수 있는 식재료나 특정 지역의 유명 식당에서만 파는 음식을 직배송해주는 산지 직송 플랫폼 이용 횟수는 2020년과 비교했을 때 20대부터 60대까지 전 세대에 걸쳐 40~50% 이상의 증가율을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여행이 어려워졌고 특별한 경관을 찾는 즐거움을 누리기는 힘들어졌지만 여행의 묘미라 할 수 있는 식도락 즐기기까지 중단할 수 없는 이들의 심리를 간파한 서비스가 발달하면서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소비자가 적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직접 방문하지 않았음에도 해당 지역이나 특정 가게에서의 경험이 가능하고, 이런 간접적인 소비를 통해 오히려 해당 지역이나 공간 자체에 대한 인식은 보다 강해질 수 있다는 전망이 가능하다.


한편 KB국민카드에서 분석한 개인 신용/체크카드 매출 데이터 분석 결과에 따르면 올해 지역 축제 방문객이 지난해에 비해 여실히 증가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특히 전남 구례군의 섬진강 벚꽃길 축제 기간에 해당 지역의 오프라인 가맹점 매출액에서 외부 방문객이 차지하는 매출건수 비중은 95% 증가했고, 서천 동백꽃쭈꾸미 축제나 영월 단종문화제 같은 경우 100% 이상 증가한 것으로도 집계됐다. 사회적 거리두기 완화로 한동안 위축됐던 지역 축제가 활성화되면서 나들이 인파가 늘어났기에 나타난 자연스러운 결과이기도 하지만 특정 지역을 기반으로 한 축제를 찾아다니는 이들의 수가 여느 해보다 많아졌다는 사실은 지역 자체가 하나의 콘텐츠로 소비되는 현상이 한동안 지속될 수 있다는 예감을 부추긴다. 몇몇 카드사에서 발빠르게 지역 가맹점 할인 프로모션을 포함한 신용카드나 체크카드를 발행하며 로코노미 트렌드에 부합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도 이런 흐름을 반증한다.


사실 지역성 자체가 하나의 상표처럼 대두되는 현상은 지난 몇 년 사이 다양한 브랜드의 마케팅을 통해 제시된 바가 있다. 특히 고유 지역의 대표 주자를 표방하는 수제 맥주 브랜드가 대표적인데 미각을 자극하는 식음료에 대한 경험은 지역성과 가장 밀접한 분야이기 때문에 더욱 가능한 것이기도 하다. 지방 도시마다 유명한 고유 브랜드의 빵집이 존재하고 해당 도시를 찾았을 때 일종의 성지 순례처럼 이곳을 찾아야 한다고 여겨지는 것도 비슷한 일례다. 이런 현상이 지역성 고유의 개성을 활용한 마케팅 전략으로 발달했던 것이 팬데믹 이전 상황이라면 팬데믹 이후의 로코노미는 지역성을 소비하는 새로운 생태계가 조성된다는 면에서 더 나아간 현상처럼 보인다. 


물론 이런 현상이 팬데믹 이후에도 지속되는 경향을 보일지, 팬데믹에 맞물린 일시적인 현상일지, 알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일시적이라도 경험은 경험이고, 그로부터 이어지는 관성적 행위가 낳는 새로운 현상도 발생할 것이다. 하지만 특정 세대에 갇힌 유행이 아니라 남녀노소 불문한 전 세대적인 소비 경험이 너르게 반영된 데이터를 통해 읽어낼 수 있는 현상이라는 점은 로코노미 트렌드가 단말마 같은 현상에 머무르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조심스럽게 예측하게 만든다. 팬데믹으로 제한된 일상이 되레 만인의 삶을 글로벌이 아닌 로컬에 시선을 맞추도록 유도한 결과 새로운 생활 반경을 발견하게 된 이들이 늘어난 셈이기에 로컬 안에서의 수요와 공급의 선순환 효과는 더욱 결속될 가능성이 크다.


무엇보다도 로코노미 트렌드는 ‘~리단길’ 같은 핫플 되기를 추구하지 않아도 적정한 수요와 공급의 순환이 가능한 지역성 보존 자체가 가능한 사례라는 점에서 주목할만하다. 유명한 가게가 뜨면서 해당 지역 자체가 번화하는 현상은 무분별하게 오른 임대료로 인해 정작 그 지역의 기세가 급격하게 도태되는 젠트리피케이션의 흐름이 발생한다. 그런 면에서 로코노미는 지역성의 특색을 유지하면서도 지속가능한 공급과 수요의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소비 문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탐색할 수 있는, 연결의 가치를 발견하게 만드는 힌트처럼 보인다는 점에서 주목해야 한다. 한동안은 글로벌이 아니라 로컬이다.


(종합광고대행사 대홍기획에서 운영하는 블로그 웹매거진 섹션에 게재된 칼럼을 재편집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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