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민용준 May 30. 2023

한국 애니메이션 산업에 없는 것

지금 한국 애니메이션 산업에는 믿고 볼만한 이름이 없다.

솔직히 말하자면 한국 애니메이션 산업이 꼭 발전해야 할 의무는 없다고 생각한다. 일어날 일이라면 이미 일어났을 것이다. 물론 한국 애니메이션 산업에 나름의 포부를 갖고 도전해 온 이들 입장을 무시하는 말이 아니다. 하지만 정말 이상한 일 아닌가? 우리는 한국 애니메이션 산업이 발전하지 못하는 이유에 관해 지난 20여 년간 수없이 물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애니메이션 산업은 왜 발전하지 않는 걸까? 


한국 애니메이션 산업 발전에 의문을 갖는 이유는 한국영화 산업의 발전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영화 산업은 가능한데 왜 애니메이션은 안 되는 걸까?’라는 물음. 한편 한국은 애니메이션 수요가 적지 않은 시장을 가진 나라다. 올해 개봉한 <더 퍼스트 슬램덩크>나 <스즈메의 문단속>이 일으킨 반향을 보면 더욱 그렇다. 물론 모든 애니메이션이 잘 되는 시장은 아닐 수도 있겠지만 애니메이션의 수요는 확실히 있다는 것이다. 


한국 애니메이션 산업이 발전하지 못하는 건 결국 시장의 수요에 어울리는 공급이 이뤄지지 않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시장은 냉정하다. 국적보다 중요한 건 작품의 매력이다. 그렇다면 팔리는 애니메이션은 대체 왜 팔리는 걸까? <더 퍼스트 슬램덩크>와 <스즈메의 문단속>을 말할 때 스토리나 캐릭터를 논하기도 하지만 결국 해당 작품을 만든 창작자, 즉 감독을 말할 수밖에 없다. 이노우에 다케히코와 신카이 마코토, 그러니까 믿고 보는 이름이 있는 것이다.


한국 애니메이션에 없는 건 바로 그런 작가다. 한국 애니메이션에 기대를 걸고 기꺼이 선택할 작가나 감독이 부재하다는 의미다. 한국의 지브리나 한국의 디즈니 같은 건 정부에서 육성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미야자키 하야오와 월트 디즈니가 있어야 가능한 결과다. 한국 애니메이션 산업은 단 한 번도 그만한 대가를 만난 적이 없다. 그런 의미에서 봉준호 감독이 준비 중이라는 애니메이션에 큰 기대를 걸어본다. 결국 멋진 창작자가 만들어줄 세계가 마련되면 기술도 그에 걸맞은 쓰임새를 발휘할 것이다. 지금 한국 애니메이션 산업에 필요한 건 바로 그런 상징적인 이름이다.


(한국콘텐츠진흥원에서 운영하는 웹매거진 <N-콘텐츠>에 보낸 코멘트를 재편집한 글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아시아의 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