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민용준 Jun 03. 2024

'존 오브 인터레스트' 이토록 끔찍한 평온과 화목

조나단 글레이저는 그래서 '존 오브 인터레스트'를 꼭 만들어야 했다.

“왜 파헤치는 거야? 그냥 썩게 놔둬(Let it rot).”


조나단 글레이저 감독의 아버지는 아들이 아우슈비츠의 나치 사령관이었던 루돌프 회스에 관한 영화를 만들 계획이라는 말을 듣고 이처럼 말했다. 그리고 조나단 글레이저는 아버지에게 이렇게 답했다. 


“아버지, 이건 과거가 아니에요.”

한국어로 번역하자면 ‘관심 구역’ 정도가 적절한 <존 오브 인터레스트>를 조나단 글레이저의 아버지는 보지 못했다. 그는 영화가 공개되기 전에 세상을 떠났다. 그 이후로 그가 썩게 놔두라고 했던 이야기는 영화가 돼서 세상에 나왔고, 영화가 처음 공개된 칸영화제에서부터 대단한 호평이 이어졌다. 국내에서는 이제야 공개될 예정이지만 항간에 돌던 2023년의 최고작이라는 평가가 결코 무색하지 않았다. 이렇게 수많은 홀로코스트 영화가 등장했음에도 <존 오브 인터레스트>를 보고 나면 이런 영화는 확실히 처음이라는 사실을 체감하듯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놀라운 건 이 영화가 실화를 바탕에 두고 있다는 것이다.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그 악명 높은 유대인 수용소이자 홀로코스트의 핵심지였던 아우슈비츠의 담장과 마주하며 살았던 나치 사령관 루돌프 회스와 그의 아내 헤트비히 회스를 비롯한 나치 일가에 관한 이야기다. 그러니까 이것은 실화다. 신문을 통해 마틴 에이미스가 쓴 동명의 원작소설을 접한 조나단 글레이저는 흥미를 느끼고 영화화를 마음먹었으며 2014년에 영화화 개발을 시작한 이후로 실제 역사를 광범위하게 파고 들어가 마주한 것들을 통해 끝내 스크린에 세우고 상영관을 채울 정보와 감각을 구상했다.


회스 부부는 수용소 담장을 자신들의 주택 담장으로 공유하며 아우슈비츠의 이웃에 자리한 학살의 주도자이자 방관자로 살았다.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담장 너머의 아우슈비츠를 중계하지 않는다. 대신 그 담장 너머에 살고 있었던 나치 가족의 평화롭고 평온한 일상을 무심할만큼 쨍한 햇빛 아래에서 함께 지켜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극의 기미와 조짐은 담장을 넘어온다. 음울하고 참담한 절규 같은 것이 한데 뒤엉켜 뭉개지듯 형체가 불분명한 절망이 담장을 넘어오는 가운데 이들의 절망을 설계하고 주도한 가해자들의 악의를 삼킨 평화와 평온의 일상은 지속된다. 실로 놀랍고 생경하게 끔찍하다.

피해자의 참상을 묘사하며 통증을 전이하거나 가해자의 비열을 추적하고 분노를 야기하는 기존의 홀로코스트 영화들의 문법과 달리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지극히 평온한 한 가족의 일상을 보는 데에서 시작하고 그들이 홀로코스트의 직접적인 가해자라는 것을 놀랍도록 은근하게 드러낸 뒤 그들의 평화로운 터전이 아우슈비츠의 담장을 공유하고 있는 상황을 적나라하게 중계한다. 실질적인 폭력을 묘사하지 않아서 더욱 소름 끼치는 상상이 음울하게 스며든다. 마치 육체가 절망을 빨아들이는 습자지가 된 것 같은 기분이다.


조나단 글레이저는 아우슈비츠를 처음 방문했을 당시 여전히 보존된 회스 부부의 집에 먼저 방문했고 그곳에 폴란드인 가족이 살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곳이 아우슈비츠와 담벼락 하나를 사이에 둔 공간이라는 사실에 소름이 돋았다. 그리고 담벼락 반대편 수용소에 갇힌 유대인들이 그 너머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어떻게 들었을 지 상상했다. 지옥에서 듣는 악마의 행복한 일상이 얼마나 끔찍할지 실감했다. <존 오브 인터레스트>가 사운드스케이프의 영화가 된 전말이다. 그래서 1년간 방대한 사운드 아카이브를 수집했다. 그야말로 ‘수용소에서 흘러나왔을 법한 모든 소리를 기록하는 작업’이었다.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런던 북부의 유대인 커뮤니티 사이에서 자란 조나단 글레이저는 “처음부터 이 프로젝트와 묘한 관계를 맺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 길을 가길 멈출 수 없었지만 언제든 물러날 준비도 돼 있었다”고 고백했다.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실험적인 성격을 가진 영화이지만 난해한 형식성을 제시하는 영화는 아니다. 오히려 지극히 평범한 낯빛으로 놀라운 경악을 선사하는, ‘악의 평범성’에 응답하는 영화다. 눈은 감을 수 있어도 귀를 닫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체험이다. 보이지 않아서 안전하다는 믿음은 담장 너머로부터 날아오는 학살의 비명과 폭력의 굉음을 통해 되레 명명하고 형형해진다. 그리고 이 끔찍함이 끝내 마음을 울린다. 영화의 끝에서 일어나는 파고의 세기와 높이가 상당하다. 그리고 끝내 이것은 과거에 머무르는 이야기일 수 없게 된다.


이 놀라운 목격과 체험을 선사하는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극장이 존재할 이유에 답하는 강력한 시네마다. 그러므로 꼭.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