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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용준 Oct 01. 2024

그대들, 어떻게 살 것인가? 컴온, 컴온!

소설 '그대들, 어떻게 살 것인가'와 영화 '컴온, 컴온'에 관하여.

미야자키 하야오가 은퇴를 번복하고 새로운 작품 제작에 돌입했다는 소식이 들려온 건 2017년경이었다. 2023년에는 비로소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제목과 포스터 한 장을 공개했지만 그 외에는 어떠한 정보도 알 수 없었다. 내용은 물론 스틸 한 장 공개되지 않았다. 그나마 일말의 단서가 있다면 제목이었다. 일찍이 미야자키 하야오가 유년시절에 읽고 큰 영향을 받았다는 책으로부터 제목을 빌려왔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요시노 겐자부로가 쓴 <그대들, 어떻게 살 것인가>가 바로 그것이었다. 이것이 바로 <그대들, 어떻게 살 것인가>를 읽게 된 전말이다. 

<그대들, 어떻게 살 것인가>는 일본의 다음 세대가 될 어린이들, 즉 소국민에게 함양해야 할 교양을 선사하겠다는 의지로 편찬한 16권의 ‘일본 소국민 문고’ 시리즈 중 마지막권에 해당하는 책이다. 요시노 겐자부로는 본래 이 시리즈의 편집 주임을 맡고 있었다. 하지만 편집 대표를 맡고 있었던 야마모토 유조가 병환으로 비운 자리를 대신한 요시노 겐자부로는 <그대들, 어떻게 살 것인가>를 집필한다. <그대들, 어떻게 살 것인가>는 아동문학의 형태를 취한 교양 교육의 고전으로 평가된 일본 소국민 문고 중에서도 가장 큰 사랑을 받았으며 지난 2017년에는 만화 버전으로도 발간돼 200만 부 이상의 판매고를 올린 바 있다.


일본 연호로 메이지 32년인 1899년에 태어나 쇼와 56년인 1981년에 폐기종으로 사망한 요시노 겐자부로는 당대 일본의 진보 지식인이자 아동 문학자이며 반전 운동가였다. 대학 시절부터 정치적 관심이 지대했던 그는 사회주의 단체 일원으로 당대 일본의 군국주의 정책에 저항하고 반전 시위에 참가하다 경찰에 체포돼 실형을 선고받을 정도로 적극적인 활동을 펼쳤다. 1930년대 일본의 침략주의 노선에 저항하는 급진적인 지식인이었다. 미야자키 하야오에게 영향을 미친 <그대들, 어떻게 살 것인가>가 발간된 것도 1937년의 일이었다. 태평양 전쟁이 한창이던 1940년대 초에는 금서로 분류돼 발행이 금지되는 일도 있었다. 국적과 시대를 불문하고 음험한 세력이 힘을 쥐면 이처럼 치졸한 폭력이 뻔뻔하게 벌어지는 법인가 보다.


<그대들, 어떻게 살 것인가>의 주인공은 혼다 준이치라는 15세 중학생 소년이다. 하지만 이 소년은 본명보다도 코페르라는 별명으로 주로 불린다. 소년은 코페르라 불리는 걸 좋아한다. 별명을 붙여준 건 소년의 외삼촌이다. 인류 최초로 지동설을 주장한 코페르니쿠스의 이름에서 따온 별명이다. 코페르는 외삼촌을 좋아한다. 외삼촌도 코페르를 좋아한다. 진심으로 아낀다. 그래서 늘 조카의 말에 경청하고, 코페르도 자신에게 일어난 일들을 외삼촌에게 가감 없이 털어놓는다. 외삼촌은 코페르를 위한 지식의 보고이자 지혜의 주머니이자 정신의 채찍이다. 뛰어나고 훌륭한 처사에는 칭찬을 아끼지 않지만 비겁하고 어리석은 언동에는 매서운 조언도 마다하지 않는다. 코페르에게는 현인에 가까운 어른이다. 덕분에 코페르는 어린 나이에도 의젓하고 유연하게 성장하고 성숙한다. 

요시노 겐자부로(좌), 만화 버전으로 발간된 '그대들, 어떻게 살 것인가'

코페르는 일상에서 겪고 느낀 바를 외삼촌과 다시 나눈다. 대부분이 학교를 오가며 만난 친구들과 나눈 대화와 경험에 관한 것이다. 이렇듯 코페르의 일상을 그린 3인칭 시점의 스토리가 주요한 줄기를 이루지만 그 뒤에는 코페르를 위한 첨삭 지도처럼 작성된 외삼촌의 노트가 이어진다. 성장의 기쁨을 만끽하기도 하지만 성장통의 아픔을 앓기도 하는 코페르의 후견인처럼 자리하는 외삼촌은 조언과 격려를 이어간다. 이상적인 어른의 역할을 한다. 지식을 알아야 하는 이유란 단순히 높은 지위를 차지하기 위함이 아니라 세상에 대한 너르고 깊은 인식을 보다 세심하게 얻기 위한 것이라 조언하며 그에 걸맞은 사유를 거듭하길 격려한다. 친구의 가난을 통해 불합리하고 불평등한 세계의 사정을 이해하고 공감하길 권하고, 우상처럼 여겨지는 위인의 이름값에 지나치게 경도되지 말고 그 내면의 그릇된 욕망까지 깊이 들여다보며 인간의 다양한 면면을 고찰하길 바란다. 그렇게 좋은 어른의 재목과 그릇이 되길 희망한다. 


자국의 이익을 위해 타국의 자유를 유린하는 것을 당연하다 여기던 시대에서 세계의 사정과 개인의 내면을 너르고 깊게 살피길 바라는 지식인의 조언이란 결국 당대의 시선이나 관점보다 너르고 깊은 바람이자 희망이었을 것이다. <그대들, 어떻게 살 것인가>는 야만의 시대에 드리운 깊은 어둠을 밀어내고자 세운 등대 같은 마음이었다. 작금의 이기와 후퇴에 더 이상 질 수도, 물러날 수도 없다는 양심의 발로였다. 이런 마음과 양심이 후대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지 몰라도 결국 미야자키 하야오라는 대가의 근간을 마련하는 토대가 됐다는 건 분명 새로운 세대의 의식에 새로운 시대의 지평을 열어주는데 공헌한 바가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 아닐까? 어쩌면 현명하고 너그러운 어른이 된다는 건 나이가 들어가는 내내 고민하고 고찰해야 하는 문제일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살아가는 내내 되물어야 하는 것이다. 그대들, 어떻게 살 것인가?


물론 모든 삼촌들이 다 현명하고 너그러울 수는 없는 노릇이다. <컴온 컴온>은 어른의 질문에서 시작되는 영화다. 라디오 저널리스트로 활동하는 조니(호아킨 피닉스)는 다양한 도시의 아이들을 만나 그들의 목소리를 녹음한다. 보다 정확하게는 아이들에게 질문하고 답변하는 인터뷰 과정을 녹음한다. 영화에 등장하는 아이들은 하나 같이 자기 생각을 있는 힘껏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아이들은 어른 못지않게 고민이 많다. 단순히 맛난 과자 하나 더 먹고 싶다는 투정이 아니다. 도시의 빈민과 가난에 대해 누구보다 염려하고, 재난으로 휩쓸린 도시와 가족의 사정에 대한 걱정이 상당하다. 

놀라운 건 영화 속에 등장하는 아이들의 답변이 숙련된 연기의 결과가 아니라는 것이다. 조니가 인터뷰하는 아이들은 모두 전문 아역배우가 아니라 디트로이트와 뉴올리언스 현지에서 살아가는 아이들이다. 대본을 준 것도 아니다. 실제로 질문을 던지고, 아이들이 자유롭게 답한 것이다. 영화 속 인터뷰 장면만큼은 다큐멘터리나 다름없는 진짜 기록이다. 그래서 조니를 연기하는 호아킨 피닉스가 예정에 없던 리액션을 뱉기도 한다. 하나만 고치고 싶은 게 있다면 무엇이냐고 조니가 묻자, 아이는 이렇게 답한다. “내 태도요.” 의외의 답변에 조니가 왜냐고 묻자 아이의 답변이 무릎반사처럼 튀어나온다. “화내는 거요!” 천진난만한 표정과 명쾌한 답변 사이에서 놀랍다는 탄성이 절로 나온다. ‘오, 마이 갓!’ 실로 마법 같은 순간이다. 


이렇듯 일면식 없는 아이들의 생각을 수집하고 감탄하는 조니에게도 탄식을 부르는 아이가 있다. 개인적인 사정과 사연으로 한동안 연락하지 않고 지냈던 누나 비브(가비 호프만)로부터 어린 아들을 봐달라는 부탁을 받게 된다. 덕분에 예정에 없던 오클랜드를 찾게 되고 오랜만에 누나와 재회한 뒤 어린 조카 제시(우디 노먼)를 돌보게 된다. 하지만 예정보다 돌봄의 기간이 길어지고, 뉴욕에 갈 일정이 있던 조니는 제시와 함께 비행기를 탄다. 하지만 어디로 튈지 모르는 제시로 인해 조니의 분노가 폭발하고 어린 조카와 나이 든 삼촌의 반목이 반복된다. 역설적이지만 그 과정에서 누나의 고된 사정을 공감하게 된다. 양극성장애를 앓는 남편으로 인해 홀로 아이를 돌보는 것이나 다름없는 누이의 사정에 이입한다. 그리고 그런 부모의 사정을 누구보다도 깊게 이해하고 있는 제시의 마음속에 깊게 자리한 상흔도 발견하게 된다. 낯선 아이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던 조니는 비로소 자신과 가장 가까운 어린 혈육의 마음에 귀를 기울인다.


“만약 내가 아빠가 아니었다면 이 영화를 만들 생각이 전혀 없었을 거다.” <컴온 컴온>을 연출한 감독 마이크 밀스는 자신의 인생에서 영화를 발견하고 모색해 왔다. 아내와 사별한 뒤 노년의 나이에 커밍아웃한 뒤 5년 후 암에 걸려 사망한 아버지에 관한 실화를 영화에 반영한 <비기너스>와 1999년 세기말에 뇌종양으로 사망한 어머니가 일찍이 품었던 다양한 꿈을 반영한 <우리의 20세기>는 그가 기억하는 부모의 역사를 영화로 승화한 결과물이었다. <컴온 컴온>은 일찍이 촉망받던 영화감독이었지만 자신과 결혼해 아이를 낳은 뒤 육아에 전념하는 엄마가 된 아내 줄라이 미란다의 모습과 두 사람이 함께 빚어낸 아이와의 삶을 지켜보는 과정에서 길어 올린 영화다. 그래서 실제 자신이 겪었던 경험들이 영화에 투영되기도 했다. 이틀 테면 런던 하이드파크에서 몰래 숨어버린 아이가 자신을 잃어버린 줄 알고 찾느라 곤혹스러운 아빠를 보고 웃고 있었다는 사실 같은 것 말이다. 물론 이렇게 짓궂은 대목만 반영된 건 아니다.

“미래를 상상할 때 어떻게 될 거라고 생각해요?” 조니는 만나는 아이들에게 묻는다. 제시는 녹음 기기를 플레이해서 조니의 물음을 듣고 녹음 버튼을 누른다. 이렇게 답한다. “예상했던 일들은 안 일어날 거예요. 생각 못한 일들이 일어나겠죠. 그러니까 그냥 하면 돼요. 해요. 해요(C’mon. C’mon).” 이 답변은 마이크 밀스 감독이 7살이 된 아들 호퍼로부터 실제로 들었던 말로부터 모티브를 얻은 것이다. “할 수 있을 때, 재미있게 해(Be funny, when you can).” 영화 초반에 등장하는 제작사 명칭이 ‘A Be Funny When You Can Production’인 이유도 여기 있다. “할 수 있을 때 쉼표, 재미있게 마침표(We’ll be funny comma, when you can period).” 모든 갈등 국면을 넘어 비로소 한 마음으로 일치가 된 조니의 등에 업혀 노래하듯 뱉는 제시의 대사도 그렇다. 그러니까 결국 아이를 가진 부모의 마음에서 비롯된 세상과 아이와 가족에 대한 염려와 감탄이 <컴온 컴온>에 온전히 투영된 것이다.


나날이 빠르게 변해가는 세상에서 한 자리에 머무는 것조차 불안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면 그건 결코 이상한 일이 아닐 것이다. 어른은 어른대로, 아이는 아이대로, 해야 할 것이 너무 많고, 그전에 해야 한다고 느껴지는 무엇이 매일마다 밀려오고 밀려가는 요즘이니까. 그래서 아이를 제대로 돌보지 못하는 죄책감에 빠져드는 어른들은 아이 돌보기를 중단하고 싶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것이 인구 소멸을 걱정하면서도 아이 낳기를 생각하지 못하는 이 땅의 현실과 유관한 것 아닐까? 퍼뜩 물음표를 세워본다. 하지만 어쩌면 어른도, 아이도, 함께 살아가고 성장하며 서로를 돌봐야 하는 것 아닐까? 문득 다른 물음표를 세워본다. 그런 의미에서 삼촌과 조카의 관계를 통해 어른과 아이의 교감이 가능한 세계를 권하고 그리는 <그대들, 어떻게 살 것인가>와 <컴온 컴온>은 각기 다른 시대와 세계 속에 놓여있지만 하나의 고민으로 여전히 계속해서 수렴하는 제목 같아 함께 발음하고 싶기도. 그대들 어떻게 살 것인가? 컴온, 컴온!


(예스24에서 운영하는 '채널예스'에 쓴 칼럼을 재편집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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