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민용준 Apr 04. 2018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사랑의 밀어

사랑을 호명하는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안드레 애치먼의 소설 데뷔작 <그해, 여름 손님>을 영화화한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은 사랑을 확인하기 위해 속삭이는 두 남자의 달콤하면서도 애틋한 주문이다. “네 이름으로 나를 불러줘(Call me by your name). 내 이름으로 널 부를게(I’ll call you by mine).” 그러니까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은 서로의 사랑을 확인한 이들에게만 허락된 사랑의 밀어이자 가장 달콤하고 애틋했던 밀회에 대한 추억이며 회고인 것이다.


17세 소년 엘리오(티모시 살라에)에게 여름이란 어떻게든 빨리 지나가기만을 바라는 한가한 계절이다. 매년 여름방학 시즌이 되면 가족과 함께 가는 이탈리아의 작은 마을에 자리한 가족 별장에 올해도 어김없이 찾아온 엘리오는 강가에서 수영을 하거나 음악을 듣고 악보를 기보하거나 종종 별장으로 찾아오는 손님들을 위해 심드렁하게 피아노 연주를 한다. 그래도 좀처럼 시간은 빨리 가는 법을 모르고 소년의 하루는 화사한 햇살 아래 마냥 여유롭기만 하다. 그런 어느 날 소년의 시간에 낯선 호기심이 들어선다. 역사고고학을 연구하는 아버지를 돕기 위해 6주간 연구 차 집에 머무르게 된 24세 청년 올리버(아미 해머)가 찾아온 것.


엘리오에게 올리버는 이상하게 신경을 끄는 존재다. 매년 찾아오는 아버지의 연구 보조원을 위해 마을을 안내하는 건 엘리오의 몫이었는데 올리버는 딱히 엘리오의 도움이 필요해 보이지 않는다. 처음 만나는 사람과도 잘 어울리고 박학다식하면서도 운동신경이 뛰어난 그는 어딜 가든 유쾌하고 활동적인 성격을 드러내며 낯선 사람들과 쉽게 어울리고 이목을 끈다. 잘생긴 얼굴과 탄탄한 근육질 몸매로 이성들의 관심도 상당하다. 미국 사람이라 그런지 자신감도 상당하다. 엘리오의 주변 친구들 사이에서도 심심찮게 언급되는 인물이다. 엘리오 역시 올리버에 대한 호기심이 충만하지만 왠지 모르게 그에게 관심이 끌린다는 것을 들키고 싶지 않다. 무엇보다도 올리버에 대한 관심의 정체가 자신에게도 명확히 정의하기 어려운 감정처럼 느껴진다.



<아이 엠 러브>와 <비거 스플래쉬>를 연출한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은 창연한 자연광과 고풍스러운 저택이 어울리는 이탈리아를 배경으로 유화처럼 선명한 미장센의 영화를 만들었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역시 화창한 여름 햇살을 가득 머금은 스크린 너머의 풍경으로부터 고도시의 노스탤지어를 한껏 품은 고색창연한 이탈리아의 정취가 전해진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은 130여 분에 달하는 화보 영상이라 해도 좋을 정도로 시각과 청각의 만족도가 상당한 공감각적인 유희 그 자체다. 다만 이전 작품들이 유화물감을 여러 번 덧칠한 듯한 색감의 선명함이 두드러졌다면 이번 작품은 빛의 화사함이 더욱 도드라져 보이는데, 두 전작이 무르익은 중년 어른들의 치정극인 것과 달리 이번 작품은 끝내 절절하게 종착되고야 마는 소년의 어린 사랑을 그렸다는 점에서 보다 투명하고 산뜻하다.


예정된 이별 앞에서도 좀처럼 가라앉지 않던 소년의 열병은 뜨거운 여름을 지나 시린 겨울이 돼서도 여전히 달아올라 소년의 마음을 데우고 또 데운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은 뜨겁게 떠오르고 시리게 저무는, 사랑이라는 계절의 감각을 눈과 귀와 마음으로 체감하게 만드는 영화다. 달뜬 사랑의 열기를 담아내기에 손색이 없는 티모시 살라메의 정명한 얼굴은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을 위해 마련된, 뜨겁고 시린 첫사랑의 인장이나 다름없다.

매거진의 이전글 <쓰리 빌보드>인간은 무엇으로 답하는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