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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훈 Mar 21. 2018

아비의 역마살은 언제 끝나려나

아비의 역마살은 언제 끝나려나

- 방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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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해

슬픔이 눈이 되어 내리던

춥던 그 겨울

사람과 사람 사이에

모질게 내리는 눈발 아래에서

어미는 겨울내내

내리는 눈발처럼, 흐르는 눈물처럼

서리내린 도라지를 까지만

아비는 이 겨울에

어디에 가 있는지 편지 한 장 없다


한 장의 편지를

애타게 기다리지만

살갗을 파고드는 매서운 바람만이

어미의 메마른 가슴을 펄럭거리게 한다

어미도 아비도 먹고 살기 위해

그 해 겨울내내 발버둥치지만

삶의 고난은 끝이 없다


어미가 하루 종일 작업을 한 도라지는

밤새도록 면도칼에

우리들 가슴처럼 쪼개져 내려

얼음보다 차가운 물아래로 잠수한다

그러다 새벽에

상처 받았지만 다시 일어서는 우리들 삶처럼

다시 일어서

순백의 삶으로 살아난다

어미는 눈 내린 새벽길을 위태롭게 걸어

무거워진 도라지를 머리에 이고

먼 길을 걸어

새벽시장으로 간다


아픔과 행복

절망과 희망을 머리에 이고

고난의 시대를 겨울나무처럼 버티는

가난한 가족(家族)의 생계를

눈발 아래에서도

살아 있는 겨울나무처럼 버티는

어미는

이 겨울에 바란다

눈 내린 겨울길을 걸어가는 만큼

겨울바람에 펄럭이는 그 질긴 가슴으로


아비여

아비여

아비의 역마살은 언제 끝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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