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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훈 May 09. 2018

묘사의 기초연습

- 방훈의 글쓰기 교실 21

방훈의 글쓰기 교실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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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묘사의 기초연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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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그 글이 '쓴 것처럼' 느껴진다면, 다시 써라.
- 생생한 묘사 덕분에 흔히 '디트로이트의 디킨즈'로 불리는 미국 소설가 엘모어 레오나드

달이 빛난다고 말해주지 말고,
깨진 유리조각에 반짝이는
한 줄기 빛을 보여줘라
- 안톤 체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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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사라는 것은 어떤 것에 대하여 글로 그림을 그리는 행위입니다. 묘사라는 것은 작가의 머릿속을 생생하게 독자에게 전하기 위해 표현하는 가장 중요한 방법입니다. 새로운 문장은 묘사에서 시작하여 묘사에서 끝난다고 까지 말합니다. 묘사라는 말은 원래, 그림 에서 온 말입니다. 화가가 인물이나 자연을 사생하듯이, 본 것 들은 것을 그대로 그려 보인다는 것입니다. 어떤 물건을 독자 눈앞에 현실감 있게 나타나게 하는 것입니다. 사람의 감각과 상상을 자극하는 최고의 표현법입니다.

길 가에 국화를 파는 트럭이 있었다.

이렇게 쓰면 참 글맛이 없는 보통 글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것을 고쳐서 써보세요.

도로변 트럭 앞에 색색의 국화꽃을 가득 담은 파란 플라스틱 양동이가 줄을 서있었다

시각적인 묘사가 추가 된 글을 읽으면, 각자의 기억 속의 국화를 떠 올리면서 작가의 의도를 더욱 풍성하게 상상하게 됩니다.


묘사 예문 1.
토끼우리에서 하이얀 양토끼가 고슴도치 모양으로 까칠하게 웅크리고 있다. 능금나무 가지를 간들간들 흔들면서 벌판을 불어오는 바닷바람이 채 녹지 않은 눈 속에 덮인 종묘장(種苗場) 보리밭에 휩쓸려 돼지우리에 모질게 부딪친다.
우리 밖 네 귀의 말뚝 안에 얽어 매인 암퇘지는 바람을 맞으면서 유난히 소리를 친다. 말뚝을 싸고도는 종묘장(種苗場) 씨돝은 시뻘건 입에 거품을 뿜으면서 말뚝의 뒤를 돌아 그 위에 덥석 앞다리를 걸었다. 시꺼먼 바위 밑에 눌린 자라 모양인 암퇘지는 날카로운 비명을 울리며 전신을 요동한다. 미끄러진 씨돝은 게걸덕거리며 다시 말뚝을 싸고돈다. 앞뒤 우리에서 응하는 돼지들의 고함에 오후의 종묘장 안은 떠들썩했다.
반시간이 넘어도 여의치 않았다. 둘러싸고 보던 사람들도 흥이 식어서 주춤주춤 움직인다. 여러 번째 말뚝 위에 덮쳤을 때에 육중한 힘에 말뚝이 와싹 무지러지면서 그 바람에 밑에 깔렸던 돼지는 말뚝의 테두리로 벗어져서 뛰어났다.
- 이효석 돈(豚)

1933년 작품으로 문장에 나타나는 문체와 표현 때문에 시대적인 특징을 느낄 수 있으며, 종묘장의 풍경이 낯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주인공의 심리와 갈망하는 애증의 심리가 가잔 대표적으로 묘사되고 있는 부분이기 때문에 소설 전체를 읽어 본다면 이 부분을 왜 발췌했는지 이해할 수 있습니다.

묘사 예문 2.
알란 칼손은 양로원 건물을 따라 길게 뻗은 펜지꽃 화단 한 가운데 우두커니 서서 잠시 망설였다. 그는 밤색 재킷과 밤색 바지 차림이었다. 발에도 같은 색 펠트 슬리퍼를 신고 있었다.
우아함과 거리가 먼 꼬락서니였지만, 이 세상 그 누가 나이 백살이 되어도 우아한 모습으로 남아 있을 수 있다고 장담할 수 있으랴!
- 요나스 요나슨,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중에서.

밤색의 헐렁한 옷을 입고 슬리퍼를 신은 채 엉거주춤 서 있는 나이 많은 할아버지와 펜지꽃이 피는 계절, 작가는 어떤 이야기를 하려고 이런 주인공을 우리에게 소개하고 있을까요?
아마 무엇을 상상하던 백살 노인을 통해 전개될 이야기는 호기심을 채우고 남을 거란 것을 독자들은 눈치 채기 시작했을 겁니다.
생생한 묘사가 되어 있는 글은 독자를 작품 속으로 몰입하게하고 작품 속 등장인물들과 동질감을 갖게 합니다. 그리고 전체의 줄거리를 좀 더 긴장감 있게 상상하게하며 경험한 것 같은 여운을 갖게 합니다.

묘사 예문 3.
어려운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란 으레는 그러하듯이, 그 골목 안도 한 걸음, 발을 들여놓기가 무섭게 홱 끼치는 냄새가 코에 아름답지 않았다. 썩은 널쪽으로 나마 덮지 않은 시궁창에는 사철 똥오줌이 흐르고, 아홉 가구에 도무지 네 개 밖에 없는 쓰레기통 속에서는 언제든지 구더기가 들끓었다.
제각기 집안에 뜰을 가지지 못한 이곳 주민들은 그들이 “넓은 마당터”라고 부르는 이 골목 안에다 다투어 빨래들을 널었다. 이름은 넓은 마당터라도 고작 열아문평에 지나지 않는 터전이다. 기둥에서 기둥으로 처마 끝에서 처마 끝으로, 가로, 세로, 건너 매어진 빨래줄 위에, 빈틈없이 삑삑하게 널려진, 해어지고 미어지고 이미 빛조차 바랜 빨래들은 쉽사리도 하늘을 가리고 볕에 바람에 그것들이 말라갈 때, 그곳에서도 이상한 냄새는 끊이지 않고 풍기어지는 것이다.
- 박태원, 골목 안 중에서.

이 글은 골목 안의 불결한 환경과 가난한 사람들이 살고 있는 삶의 모습을 묘사한 글입니다. 이 글을 읽으면서 과거 서울의 골목 안에서 살고 있던 가난한 사람들의 생활을 살짝 엿보게 됩니다. 유달리 꾸며서 쓰려고 하지 않았으나, 우리는 이 글을 읽으면서 구린내와 퀴퀴한 냄새가 뒤섞여 환기가 안 되는 허름하고 구석진 골목 안을 상상했다면 작가가 전하고자 했던 소설 속 배경을 여러분은 이미 본인 것으로 만든 것입니다.

묘사 예문 4.
우리가 앞서 말했듯 말름셰핑은 매우 한적한 마을이었고, 이 날도 예외는 아니었다. 도망쳐 나온 우리의 주인공은 자신의 백 번째 생일을 축하하지 않기로 작정한 이후 지금까지 아무와도 마주치지 않았다. 그가 슬리퍼를 질질 끌며 비척비척 역사로 들어갔을 때 대합실은 텅 비어 있는 것처럼 보였다. 대합실 중앙에는 벤치 몇 개가 등을 맞대고 두 줄로 늘어서 있었는데 하나같이 비어 있었다. 오른쪽에는 매표창구 두 개가 보였다. 그중 하나는 닫혀 있었고, 다른 하나에는 몹시 왜소한 체구에 콧등에는 동전만 한 둥근 테 안경을 걸쳤으며, 한 가닥 남은 머리칼은 대머리를 감추려고 정수리로 정성스레 끌어올린 제복차림의 남자가 앉아 있었다.남자는 알란이 들어오자 귀찮은 기색이 역력한 얼굴을 컴퓨터 화면에서 들어 올렸다.
승객들이 너무 많이 몰려든다고 느끼는 모양이었다. 아닌 게 아니라 알란은 대합실에 있는 승객이 자기 혼자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다. 홀 저쪽 구석에 키가 껑청한 청년 하나가 눈에 들어 왔다. 긴 금발 머리는 기름기가 절어 있고, 하관은 성긴 턱수염으로 덮여 있으며 등짝에 <네버 어게인>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청자켙을 걸친 차림 이였다.
청년은 글씨를 못 읽는 게 분명했다. 왜냐하면 지금 그는 온 힘을 다해 잡아당기는 장애인용 화장실 문에는 노란 바탕에 검정 글씨로 <사용 불가> 라고 선명하게 표시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 요나스 요나손,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중에서.

한적하다 못해 인적까지 드문 마을의 역사와 대합실을 주인공의 시선을 따라 가며 세밀하게 보여주는 문장입니다. 할 일이 없는 곳에서도 자신의 일이 귀찮은 역무원과 글을 모르는 듯 한 젊은이라고 알란은 독자에게 말하지만 이미 우린 게으른 역무원과 건달 청년의 제멋대로인 성격을 차림새와 행동의 묘사를 통해 눈치 챘습니다.
그리고 왠지 이들이 한 장소에서 만났다는 사실만으로도 앞으로 어떤 연관이 있겠구나 짐작하게 됩니다.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아도 전달받는 이야기, 바로 묘사의 힘입니다.


연습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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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신이 사는 동네에 대하여 묘사를 해보세요!! 단순 묘사가 아니고 소설이나 희곡 시나리오의 첫 구절이 될 수 있도록 어떤 이야기가 전개될 것인가에 대하여 암시를 주면서 써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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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습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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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신이 속한 집단(예를 들면, 학교, 직장, 학원, 산악회, 동호회 등)을 선정하여 그 안에 있는 인물에 대하여 인물묘사를 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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