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아직 나를 모른다 (허지원)

나를 알아가길

by Bwriter

범상치 않은 책이다. 이말 저말 섞어가면 잘 포장해서 다독이는 것이 아니라, 괜찮다며 토닥여주는 책이 아니라 '그럴 수 밖에 없다'라는 작가의 말, 본인부터 챙겨야 한다는 말에 '내가 나를 진실되게 보고 있었나?'라는 의심과 부정을 하게 되었다.


'그럴 수 밖에 없다'라는 것은 '뇌의 기능이 그렇기 때문이다'라는 것으로 설득을 시키는 책.


자존감의 높고 낮음은 없으며, 굳이 표현하자면 자존감은 유니콘 같은 것이라고. 계급장 떼고 스펙 뒤로 재끼고 아무것도 내세우지 않고 민낯을 그대로 나타내며 표현할 수 있다면 그것이 자존감이고 자신감이라는 것. 확 와닿지 않나?


자존감이 높아 보이는 사람의 내면은 의외로 자존감이 낮은 사람일 수 있고, 자존감이 낮아 보이는 사람의 내면은 의외로 자존감이 높은 사람일 수 있다는 것이다. 단지 겉으로 보여지는, 표현하는 것이 다를 뿐이라는 것. 그리고 그 높고 낮음의 기준은 없다라는 것이다. 그러니 자존감의 높낮이에 연연해하지 말자라는 것인데... 이렇게나 속시원할 수가!


그리고 우울증. '우울은 어느날 갑자기 찾아오기보다 습자지에 물이 스미듯 야금야금 번집니다. 어느날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자주 이상한 생각에 꽂혀있는 자신을 문득 발견하면서부터 입니다.' 이 말에 끄덕이게 되고, '이런 우울의 증상들은 뇌에 흔적을 남깁니다.'라는 말에 두려움을 느꼈다. 내 뇌에는 우울증의 흔적이 남겨지고 있다. 뇌의 기능이 너무 좋으네....


내 경험을 토대로 말한다면, 우울증으로 인해 말을 버벅거리게 되기도 하고, 깜박거리기 일수, 머리를 좀 굴려야 하는 상황에서 정지된 느낌을 받게 되고. 그러다보면 내가 똥멍충이가 된 것 같아서 미쳐버릴 것 같은데, 이게 심리적이기보다는 뇌가 그렇게 되어버렸다는 것을 글로 확인하게 되니 (이 책은 심리치료와 뇌 MRI를 이용하여 연구하고 글로 쓴 책이다) 말 그대로 좌절이었다.


'추론하고 계획하고 행동을 억제하고 개시하는 등의 고차원적 인지기능을 담당하는 전전두엽의 하드웨어 자체가 줄어들어 있기에, 이후 효과적인 문제해결을 하는데 어려움을 경험할 소지가 있는 것입니다.' 라고 하는데 그러면 나는 이제 어찌해야 하는거지? 계속 이 상태로 살아야 하나?라는 생각으로 침울했고, 두려웠는데 그 다음 글이 희망을 줬다.


흔적을 옅게 하는 방법을 찾는 일 역시 과학의 영역이었으며, 많은 연구자들은 전전두엽과 편도체와 해마의 부피를 증가시키거나 해당 영역의 활동성을 높이는 요인들을 탐색해왔습니다.

그 요인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 규칙적인 운동

- 꾸준한 공부

- 항우울제 복용

- 그리고 과학적 근거에 기반한 제대로 된 심리치료


세상에 이렇게나 다행일 수 있을까? 평생을 똥멍충이로 사는건 아닐까 걱정했는데. 내가 의사선생님께 항상 듣는 말이 '운동하세요, 운동 하셔야해요.'인데... 나 이제 운동만 하면 되겠다. 의사선생님한테 운동하라는 얘기를 들으면서도, 밖으로 나가려고 해야 한다는 말을 들으면서도 '왜 해야 하지?'라는 생각을 막연히 했었다. 왜냐면 나가기 싫고 운동하기 싫으니깐. 밖으로 나가서 돌아다니고 운동을 하면 잠도 잘오고, 잠을 잘 자야 우울증 완화에 도움이 되니깐이라고 알았는데, 작가는 '그보다는 '어떻게 해야 하지?'가 맞는 질문입니다.'라고 했다.


그러게... 어떻게 해야 하지? 그냥 하면 된다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그게 말처럼 쉬운게 아니거늘... '내가 했으면 너도 할 수 있어.'라는 말이 얼마나 위험한 말인지 알고 하는 건지.. 그 말이 얼마나 공감력 떨어지는 말인지, 그 말에는 '나는 너를 이해 못하겠어'라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나 있는지...


이 책에는 그런 말이 없다. 내가 했으니 당신도 할 수 있어요 따위의 말이 없어. 그래서 건조하기도 하다. 건조하게 감정 섞지 않고 상담 받는 느낌. 그래서 팩트폭행 당하는 기분마저 들고, 그 덕분에 나를 다시 찬찬히 살펴보게 된다.


여느 책들처럼 감정을 건드려서 응원을 퍼붓는 것보다 훨씬 낫다. 그 책들, 우울증 환자들에게는 무용지물일 뿐이다.


나는 내가 궁금했었다. 왜 이러는건지, 왜 자꾸 이렇게 되어가는 건지. 버벅거리고 바보 같고.. 이대로 괜찮을지.. 그러면서도 '괜찮아지겠지'라는 막연한 생각이 있었는데, 이제는 '괜찮아지겠네'라는 생각으로 바뀌게 되었고 그 찰나의 순간들은 이 책에 있었다. 그거면 충분한 것 같다.


이 책은 나에게 소임을 다 했다.






세상에서 내가 제일 중요하고, 세상에서 내가 나를 가장 잘 압니다.
편안하게 하세요, 괜찮아요.
"신경 끄자. 이만하면 괜찮다. 완벽은 됐고 그냥 꽤 괜찮은 나 자신으로 존재하면 돼. 자, 이제 다음."
이렇게까지 애쓰지 맙시다. 그냥 지금 할 수 있는 노력을 합시다.
되면 좋고, 아니면 마는 겁니다. (중략)
되면 좋고, 아니면 말고.




우리는 100퍼센트 완벽해질 필요도 없고 뭔가를 성취함으로써 주위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을 필요도 없습니다. 그런 성과들이 나의 존엄성과 가치에 큰 의미가 있긴 할까요?
괜찮아요. 충분해요.
이렇게까지 애쓰지 맙시다.



나도아직나를모른다_허지원_1.jpg 나도 아직 나를 모른다 - 허지원



과거의 단편들이 당신의 미래를 결정짓게 만들지 마세요. 5년 후의 시점에서 지금을 돌아봤을 때 내 억울함을 하소연하지 못한 것을 후회할지, 아니면 그 시간에 '뭐라도' 하지 않았던 것을 후회하게 될지 냉정히 살펴야 합니다.
뒤도 돌아보지 마세요. 성인인 당신이, 당신의 보호자입니다.
당신의 과거는 당신의 미래가 아닙니다.




설령 누군가 악의를 가지고 빈정거리더라도 그런 이야기들로 당신의 가치가 훼손될 수 없음을 나 자신과, 타인에게, 분명히 알리세요. 그 무례에 기꺼이 휘말려 들지 마세요.
자기 자신을 보호하려고 애쓰기 시작하는 그 결정적인 순간을 경계해야 합니다. 스스로를 위로하고 보호하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하는 것은 맞지만, 어느 순간 악착같이 애를 쓰고 있어야만 자신이 보호되는 상태라면 뭔가 단단히 잘못된 것입니다.




삶에 큰 의미가 있을 필요가 없습니다. 살아있는 것 자체가 의미이고, 그것만으로 당신은 다 한 겁니다. 살아있는 부모, 살아있는 친구, 살아있는 자식, 살아있는 나 그러면 됐습니다.
'어떻게'에만 집중하세요.
어떻게 일할지, 어떻게 놀지, 어떻게 사랑할지.
우리는 의미 없는 삶을 살아도 괜찮습니다.
뭐 어때요. 하루가 재미있으면 좋고, 아니면 또 마는 겁니다. 돈도 좀 써보고요.

우리는 아직 죽을 때가 아닙니다.



나도아직나를모른다_허지원_2.jpg 나도 아직 나를 모른다 - 허지원



우울에게, '내가 너를 인지하고 있음'을 알려줘야 합니다.
일이나 사랑의 실패 혹은 내 의지와는 관련 없는 타고난 기질적 특성으로, 우울은 찾아옵니다.
무엇이든 좋으니 당신 자신을 챙기세요.
괜찮아요. 삶으 즐거워해도 되고, 재미있어 해도 됩니다.
당신은 당신 자신에게 좀 더 좋은 주인이면 좋겠습니다.
당신은 이제 당신의 인생을 살아요.
당신의 가치를 주입식으로 폄하하는 부정적인 사람들이나 환경들과 우아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당신이 품위를 잃을 필요가 있는 일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누굴 위해 살지 말아요.
당신이 행복해지는 것이 최우선이에요.
천천히 진행하세요.
아직 오래되고 깊은 상처들이 딱지도아물지 않았는데 얼마나 tㅐ살이 돋았는지 궁금한 나머지 조급하게 떼어내고, 또 떼어 내면서, '나아지고 있는거야? 왜 지금 웃고 있어? 이대로도 괜찮아? 하며 타인과 자신을 시험에 들게 하지 마세요. 수 년을 두고, 차츰 자신을 받아들여 주세요.
너 잘하고 있지, 잘해 왔지.
다른 건 다 몰라도,
그건 내가 알지.



[2019.06.20 - 2019.07.08]

건조한 설득력, 그것이 이 책의 소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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