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하루가 이별의 날 (프레드릭 배크만)

당신의 하루와 나의 하루

by Bwriter

할머니가 돌아가신지 3년이 지났다. 뇌경색, 노인성 우울증. 그러다가 치매로 진행. 치매를 앓는 사람의 감정이 어떤지에 대해서 나는 배려하지 못했었다. 내 감정 챙기느라. 나 하나 챙기느라. 할머니가 살고 있는 세계는 어떤 세계인지, 할머니의 답답함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하지 못했었다. 할머니가 두려워하지는 않았을까라는 생각조차도.


손자를 너무나도 사랑한 나머지 "노아, 노아"라고 이름을 두번씩 부르는 노아의 할아버지는 매일 매일 조금씩 줄어들고 있는 자신만의 세계로 인해 걱정과 함께 두려워한다. 결국에는 너무나도 사랑하는 노아도 잊게 될 거라는 두려움.


우리 할머니도 그러지 않았을까. 할머니가 나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멍청이가 되어서 신경질 나고 짜증난다고. 방금했던 것도 잊어버리고, 썼던거 또 쓰고 또 쓰고 또 쓰고. (할머니는 불경을 사경하는 공부를 하셨었다. 나보다 더 열심히 더 부지런히.) 그 '잊는다'는 것이 어떤 느낌일지, 작은 건망증과는 비교할 수 있는건지... 나는 가늠할 수 없었고, 그것에 대해 생각해본 적도 없었다.


"주머니에서 뭔가를 계속 찾는 기분. 처음에는 사소한 걸 잃어버리다 나중에는 큰 걸 잃어버리지. 열쇠로 시작해서 사람들로 끝나는 거야."

"무서우세요?"

"조금. 너는?"

"저도 조금요."


나는 내가 무서워하고 있는 것에만, 두려워하고 있는 것만 생각했었지 할머니의 기분이 이랬을 수 있었을 거라는 생각은 해보지 못했다. 할머니도 두려웠을테고 무서웠을텐데 말이다. 노아노아는 할아버지를 잘 이해해주는 손자인데, 나는 할머니를 잘 이해해 주는 손녀는 아니었음이 이런데서 드러나니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기억력이 안 좋아지고 추어을 잊는게 치매라기 보다는 그와 연관된 사람을 잃는 것이 치매인 것 같다. 할머니의 경우를 보면 과거의 일은 잘 기억하셨었다. 치매라느 것이 가장 최근의 일부터 잊게 되는 병이어서 가장 먼저 잊는 사람은 손자 손녀 그 다음은 며느리와 사위 그리고 자식들이라고 의사가 말했었는데, 물론 이건 이론상이겠지. 우리 할머니는 나와 정배를 말할 수 있는 마지막 까지 알아봤으니 말이다.


내가 지금보다 나이를 덜 먹었을 때. 할머니가 살아있었으 때. 그때는 할머니가 나의 어린 시절 기억을 더 많이 했지만 할머니가 편찮으시면서 내가 할머니에게서 들은 추억들을, 나와 함께한 추억들을 기억하고 들려주고 바로 잡아주곤 했었다. '아이의 기록은 그 절반이다. 할아버지는, 아이의 사고는 확장되고 할아버지의 사고는 수축돼서 둘이 중간에서 만나는 날이 올 거라고 입버릇처럼 얘기한다.' 그게 이 지점이 아니었을까. 그때부터 이 지점에서 우리는 지지고 볶고를 한게 아닐까.


왜 그렇게 할머니를 이해하려 들지 않았을까. 아니 이해하는 척을 했을까. 치매인걸 알면서도 나는 왜 그 병을 인정하는게 어려웠을까. 왜 그렇게 오랜시간이 걸렸을까... '내 할머니'이기 때문에 그랬던건 아닐까? 결국에는 '사랑하는 내 할머니'여서...


"여보, 기억들이 나에게서 점점 멀어져가고 있어. 물과 기름을 분리하려고 할 때처럼 말이야. 나는 계속 한 페이지가 없어진 책을 읽고 있는데 그게 항상 제일 중요한 부분이야."


읽으면서 가슴이 많이 아팠던 부분이다. 계속 한 페이지가 없어진 책을 읽고 있는데 그 부분이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 우리 나여서도 그랬겠지? 그래서 그렇게나 답답해 했던거고... 나는 할머니를 더 많이 이해했어야 했어...


"매일 아침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점점 길어질 거예요. 하지만 내가 당신을 사랑했던 이유는 당신의 머리가, 당신의 세상이 남들보다 넓었기 때문이에요. 그게 아직 많이 남아 있어요."


할머니의 길이 그랬을 것 같다. 하루가 다르게 길어지고 멀어지는...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야 내가 할머니를 얼마나 사랑했었는지를, 할머니의 세상을 얼마나 존경했었는지를 알았다. 원망과 화를 내며 나 힘듦을 표현했다가도 미안함에 가슴터질듯 속상하기를 반복했었는데 할머니는 어땠을까? 그래도 당신의 손녀가 최고였을까? 일찍 죽은 엄마를 대신해서 엄마처럼 나와 동생을 키워줬는데, 이제는 내가 할머니는 돌봐야 하는게 당연한거였는데 왜 그렇게 건방졌지? 왜 자꾸 할머니를 이기려 했을까. 병간호하기 수월하려고? 뭐가 수월했을까? 결국엔 아픔인데. 결국엔 돌아서면 죄책감인데.



마지막까지 손녀 배려해준 내 할머니, 그리운 나여사. 책 읽는 내내 할머니 생각이 간절했고, 할머니와 함께 지낸 시간이 그리웠고 가슴저렸다. 할머니를 더 배려하지 못하고 더 알아주지 못해서 미안했고. 할머니는 마지막까지도 나에게 주기만 하고 가셨다는 것도 다시금 생각하게 된 시간이었다.


언제나 믿고 읽는 프레드릭 배크만의 소설. 잔잔하지만 깊숙한 울림을 준 이 책이 너무나도 고맙다.





● "바쁘게 사는 사람들은 항상 뭔가를 바쁘게 놓치면서 사는 거야."
● "우리, 작별하는 법을 배우러 여기 온 거예요, 할아버지?'


● "내가 노아,너를 얼마만큼 사랑하는가 하면." 할머니는 동화책을 읽어주다 손자가 막 잠이 들려고 하면 귓가에 입술을 대고 속삭였다. "하늘도 그 마음을 다 담지 못할 거야." 할머니는 완벽하지 않았지만 노아의 할머니였다.





● "한번은 선생님이 인생의 의미가 뭐라고 생각하는지 쓰라고 한 적도 있어요."
"그래서 뭐라고 썼는데?"
"함께 하는 거요."
할아버지는 눈을 감는다.
"그렇게 훌륭한 대답은 처음 듣는구나."


● "가장 평범했던 일들이 그리워. 베란다에서 아침을 먹었던 것. 화단에서 잡초를 뽑았던 것."


하루하루가이별의날_프레드릭배크만_1.jpg 하루하루가 이별의 날 - 프레드릭 배크만


● "어떻게 할머니한테 반하셨어요?"
아이가 묻는다.
할아버지는 한 손은 자기 무릎에, 한 손은 아이의 무릎에 올려 놓는다.
"할머니가 내 가슴속에 들어왔다가 길을 잃어서 빠져 나가지 못한게 아닐까 싶다만. 끔찍한 길치였거든. 에스컬레이터에서도 헤맬 만큼."


● "저를 잊어버리면 저하고 다시 친해질 기회가 생기는 거잖아요. 그리고 그건 꽤 재미있을 거예요. 제가 친하게 지내기에 제법 괜찮은 사람이거든요." 할아버지가 웃음을 터뜨리자 광장이 흔들린다. 할아버지에게 이보다 더 큰 축복은 없다.


● "우리가 할아버지를 어떻게 도와드리면 돼요?"
아빠의 눈물이 소년의 면 스웨이트 위에서 마른다.
"할아버지랑 같이 길을 걸어드리면 되지. 같이 있어드리면 되지."


하루하루가이별의날_프레드릭배크만_0.jpg 하루하루가 이별의 날 - 프레드릭 배크만


[2019.07.20 - 2019.07.28]


그리운 나여사, 사랑하는 내 할머니.

할머니가 내 할머니여서 다행이야.

할머니가 내 할머니여서 고마워.





keyword
작가의 이전글고백 (미나토 가나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