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칼란드리아 Oct 04. 2022

올리버색스<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온 더 무브>

*2017년경에 작성한 글입니다.



이 책은 1985년에 초판이 나왔으니, 30년도 더 된, 이제는 신경과학에서는 고전이라고 할 만한 책인 것 같습니다. 신경정신과적 여러 증례집 (역자는 병례사라는 말을 썼네요. 좀 낯선 용어입니다만)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여기에는 참 많은 사례들이 자세히 나옵니다. 참 흥미로운데요, 결국 '뇌'라는 것이 어떠한 이상을 일으켜 발생하는 현상들입니다. 그게 해부학적, 병리학적 이상일 수도 있지만 구조적 이상이 없이도 가능하다는 게 뇌의 신비죠. 문제는 그 원인을 어떻게 밝혀내고 치료를 할 것인가 하는 것인데 많은 경우 그게 참 어렵습니다.


병원에 가면 '신경'과 관련한 과가 '신경과', '신경정신과(정신건강의학과로 개명되었지만 아직 이 이름이 더 익숙합니다)', '신경외과'가 있습니다. 각 과가 '신경'으로 인한 증상에 접근하는 방법이 다르죠. 신경외과는 수술 또는 시술을 하려 할 것이고, 신경과는 약물을 사용하려 할 것이고, 신경정신과는 상담 또는 약물을 사용하려고 할 것입니다. 각각이 특화된 영역이지만 하나의 전문분야에서 갈라져 나온 것이라 볼 수 있겠지요.


올리버 색스 박사는 신경과와 신경정신과 (예전엔 구분이 없었지만) 전문의로서 '신경'과 '정신' 모두를 아우르는 연구와 저술을 하였습니다. 많은 책들, 특히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책들을 저술하였는데 그중에서도 이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가 가장 대표작이고 또 이전에 저술했던 책들의 증례들도 다시 인용하고 있습니다. 즉, 종합편이라고도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하지만 의학연구에서 증례보고는 그 증거도가 가장 낮은 단계여서 흥미롭기는 하지만 일반화하기는 어렵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투렛증후군 같은 경우나 몇몇 사례들은 좀 더 상위단계의 연구 (코호트 분석이나 약물 또는 시술의 무작위 시험 같은) 도 있습니다만, 이렇게 흔하지 않은 사례들을 연구하는 경우에는 쉽지 않을 듯해요. 


게다가 그가 임상에 있었던 시기 (책이 저술되기 전)는 현재와 같이 의료기기가 발전하지도 못했고 (MRI도 없었죠. CT도 초기 모델이었고요) 심지어 영상장치도 일반화되지는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그 당시 기술로 어려웠던 것들도 해내고자 하는 도전정신도 있었던 걸로 보입니다.



이 책을 읽고 얼마 안 있어 그의 자서전인 <온 더 무브>가 출간되었습니다. 그의 인생에 대해서도 관심이 있었기에 이 책도 구매해서 읽어 보았습니다. 어쩌다 보니 올해 가장 처음으로 읽은 책이기도 합니다.


분량이 꽤 많습니다. 하지만 첫 장을 읽으면서부터 다소 예상과 빗나간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 느낌은 끝까지 이어졌네요.


제가 예상했던 올리버 색스 박사는 큰 대학병원급에 근무하는 전형적인 임상의의 모습이었는데, 사실 그는 한 군데 오래 머무르지 못한 아웃사이더였던 것이죠. 이 책에서는 충격적인 고백도 많이 나옵니다. 동성애자, 마약중독, 모터사이클, 역도선수, 문제아로서의 모습들이죠. 


그는 그러한 자신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느끼기에 따라 자랑하듯 풀어나갑니다. 어떤 부분에서는 불편하기도 했습니다. 참 다사다난했던 그의 삶 (극적인 굴곡은 없었지만, 일반적인 삶의 모습과는 거리가 있는)을 보면서 정말 의외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약간의 동경(?) 같은 것도 있었네요. 보통사람들은 하기 힘든 그러한 것들이니까요. 습관적으로 궤도를 벗어나는 기차 같은 느낌. 그럼에도 다시 궤도로 돌아오는 회복력까지.


전반부는 그러한 자신의 이야기도 많고, 중반 이후에는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와 비슷하게 환자들의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여러 책들을 집필하게 된 배경도 함께 나옵니다. <아내를...>를 먼저 읽어서 그런지 더 쉽게 읽을 수 있었네요.


아무튼 얼마 전 타계한 그의 이야기는 여러 생각이 들게 해 주었는데요, 여기서 차마 밝힐 수는 없을 듯해요. 그냥, 저 자신에 대한 다짐을 다시 한번 했다고나 할까요. ^^;;


솔직히, 추천하기에는 좀 주저되는 책입니다. 하지만 관심이 있으신 분은 한 번 읽어보셔도 괜찮을 듯합니다. 편견을 버리고, 그냥 특이했던 한 사람의 삶을 바라보는 것 정도로 생각하시면 될 듯해요~


p.s. <온 더 무브>는 그의 친구였던 톰 건의 시 제목에서 따온 거라고 합니다. 이 책을 읽으니 마치 슈테판 츠바이크의 <어제의 세계>와 유사한 느낌도 들었습니다. 그냥 느낌만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