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경에 작성한 글입니다.
30대까지, 저는 이렇게 말하곤 했습니다.
"내가 믿지 않는 것이 세 가지 있다. 신, 인간, 사랑이 그것이다"
다소 중2병스러운 말이지만, 실제로 저는 그랬습니다. '진정한 사랑' 같은 얘기는 <겨울왕국> 같은 데서나 존재하는 거라고 말이죠. 근데 '사랑은 없다'라고 말하는 '진짜'가 나타났습니다. <러브 온톨로지>의 저자인 조중걸 교수입니다.
처음엔 '사랑'에 대한 담론, 가벼운 이야기일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사랑에 대한 책은 워낙 많으니까요. 하지만 조중걸 교수... 전공이 '논리철학'입니다. 특히 비트겐슈타인 전문이에요. (아래의 <비트겐슈타인 논고 해제>를 썼는데 이 책은 추천할만합니다)
그러니 이 책 분위기가 대충 짐작이 되시겠지요? 이게 사랑에 대한 책인지 철학책인지 모르겠습니다. 철학 강의에 사랑을 넣은 건지, 사랑 얘기에 철학을 넣은 건지. 아무튼 제목에 낚여서 샀다가 당황했습니다.
제목의 '온톨로지'는 철학적인 용어라고 하는데요, 존재(개념)의 본질을 밝히려는 분야라고 하네요. 사실 전 이 용어를 인공지능 공부하면서 접한 지라 시맨틱 구성을 머릿속에 떠올렸습니다. 뭐 비슷하긴 합니다.
근데 부제는 나중에서야 봤네요. 부제는 '사랑에 관한 차가운 탐구'입니다.
하지만 이건 차갑다 못해 끝까지 시니컬합니다. 우리가 말하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고, 사랑이란 알 수도 없고 증명할 수도 없고, 사랑의 행위 역시도 사랑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사랑이라 부르는 것들을 사랑과 혼동하고 있다고요. 극단적으로 말하면, (비트겐슈타인식으로) '사랑이란 증명할 수 없는 것이니까 증명할 수 없는 건 말하지 말자'가 될까요.
결국 '사랑이 무엇인가'에 대한 저자의 답은 '나도 모르고 우리도 모르고 아무도 모른다'는 거네요. 한참 동안 얘기해놓고 나서 허무한 답을 말합니다.
'사랑은 다른 무엇, 대상을 위해서도 아니고 사랑 그 자체를 위한 사랑이어야 한다'는 저자의 말은 참 난해합니다. 세계에 포함된 나, 그리고 나 자신을 향한 사랑, 배타적이지 않은 사랑. 하지만 어쩌면 그게 답일 수도 있겠지요. 저자도 고민을 많이 했을 거예요. 헛말 하려고 쓴 책은 아닐 테니까요.
하지만 괜찮습니다. 애초에 저는 '사랑이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찾고자 했던 것이 아니었으니까요. 그리고 지금은 저 위에 믿지 않는다고 한 세 가지 중에서 '사랑'은 뺐어요. 왜냐면, 저는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죠.
p.s. 그럼에도 딱히 권하고 싶은 책은 아니에요. 저자는 자신의 강의를 수강 신청한 학생들이 몇 번 강의를 듣고는 수강취소를 해서 폐강되는 경우가 많아 그 분풀이로 책을 쓴다고 하지만 (독자가 있든 없든) 은근 애독자가 많은가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