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경에 작성한 글입니다.
제가 활동하는 독서 커뮤니티에서 추천받아 읽은 책입니다. 사실 처음 들어보는 작가였고 모르는 작품이라 살짝 걱정은 되었지만 다른 분들의 후기를 보고 관심이 생겼습니다. 다소 철학적이라고 하더군요.
철학적이라기에 다소 두려운 맘에 소설을 열었더니, 서문부터가 '이게 뭐야?' 싶었습니다. 추천사도 아니고, 서문이라면 작가가 직접 쓰는 게 아닐까 싶은데 다른 작가가 (그것도 저자보다도 지명도가 낮은) 쓴 것도 이상했어요. 서문 내용도 무슨 말인지 잘 이해가 안 됐죠. 그리고 났더니 그다음에 작가가 서문에 대한 반박글을 또 실어놓고, 서문을 쓴 작가를 저주한다고... 이게 뭐 하는 거지 싶었습니다.
네, 거기서부터 시작이었던 것 같아요. 이 작품의 블랙 코미디스러움은...
작품은 총 33장(챕터)으로 이루어져 있어요. 전체적으로 그리 긴 소설은 아닙니다. 그래도 장편은 장편이죠. 줄거리는, 어찌 보면 단편으로도 쓸 수 있을 만큼 단순할 수도 있는데 의외로 그 내용이 재밌었어요. 통속적인데, 앞서 말씀드린 대로 블랙코미디 같은 느낌이었거든요.
특히 주인공에 대해선 '귀엽게 미친놈'이라는 생각도 들었죠. 정상인 것 같으면서도 살짝 맛이 간 것 같은, 안쓰럽기도 하고 결국 호구가 되어버린... 그리고 주인공이 연모하는 여자의 고모부도 그런 인물이었죠. 에스페란토어를 쓰고, 무정부주의를 외치는... 그리고 그 밖의 인물들도 재밌는 요소들이 있었습니다.
그래도 주인공이 주변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는 부분, 혼자 하는 독백 혹은 사색하는 부분, 그리고 작가의 철학적 소견에서는 실존주의 철학이 진하게 녹아 있습니다. 하지만 애초에 염려했던 만큼 현학적이거나 어렵지는 않았어요. 곳곳에서 작가의 번뜩이는 통찰력을 느낄 수도 있었고, 때론 그것이 위트처럼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작가가 의도했던 것이 철학적 주제를 독자에게 전달하고자 했던 것인지, 그것을 블랙코미디를 부각하기 위한 장치로 만든 것인 지 모르겠어요. 하지만 어쨌든 그로 인해 재미가 반감되지는 않았고, 오히려 더 재밌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 문장들이 당연히 가볍지는 않습니다. 계속 곱씹어보게 만들기는 합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죠.
영원이란 미래가 아니다. 우리가 죽으면 죽음은 우리의 궤도에서 우리를 돌아서게 한 다음 뒤를 향해, 즉 우리가 있었던 곳을 향한, 과거를 향한 행진을 시작한다. 우리는 그렇게 끝없이 운명의 실패를 감으면서 어떤 영원함이란 개념이 우리에게 만들어놓은 모든 무한한 것을 부수면서 무(無)를 향해 나아간다. 그러나 우리는 결코 그곳에 도달하지는 못한다. 왜냐하면 무(無)란 결코 존재한 적이 없으니까.
말장난인 듯싶으면서도 알듯 말듯한 그러한 문장들이 작품 곳곳에서 펼쳐지지만 그것이 작품을 읽어나가는데 방해 요소는 되지 않았습니다. 다만 받아들이기에 따라 이러한 부분에서 계속 멈칫하게 될 것 같기도 해요. 하지만 이 작품 속에 나왔던 아랍 경구를 다시 인용해보고자 합니다. (물론 다른 의미이긴 하지만요)
"길을 갈 때 개가 나와 짖어댄다고 그때마다 멈춰 선다면 결코 목적지에 도달할 수 없다"
암튼 그런 맘으로 계속 읽어 나가면 되는 것이겠지요.
작품의 결말부에서는 다소 당혹스럽기도 했는데, 주인공과 작가가 티격태격하는 건 요즘엔 만화나 작품에서 가끔 나오긴 하지만 100여 년 전에 나온 작품이라 충격적이었을 것 같긴 해요. (그래서 소설 형식을 전복했다고 광고하는 듯합니다) 그것도 주인공의 죽음의 방식을 두고 하는 논쟁이라니요. 주인공이나 작가가 각자의 논리를 내세우지만 그 부분마저도 저는 블랙코미디처럼 느껴졌어요.
제가 이 작품을 너무 그렇게만 받아들였던 걸까요? 하지만 철학적으로 들어가기 시작하면 길어지기만 하고 재미없어질 것 같으므로 생략합니다.
작품을 다 읽고 나서 다시 서문과 그 서문에 대한 반박을 읽었습니다. 그제야 왜 그런 얘기들이 나왔는지 이해가 될 것 같아요. (그러면서 서문을 쓴 빅토르 고티는 작품 속의 빅토르와 동일인물일까 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전반적으로 재밌었고 또 기억에 남는 작품이 될 것 같습니다. 저도 추천하고 싶은 작품이네요. 나중에 다시 한번 읽으면서 처음 느꼈던 소감과 비교해봐야겠어요. 그때도 그냥 재미로, 블랙코미디로 느끼게 될지 모르겠습니다만, 아무래도 좀 달라지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