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에 작성한 글입니다.
동녘에서 나온 <나의 라임 오렌지나무> 완역본을 읽었습니다. 이 책도 어렸을 때 읽어본 책 같긴 한데 어렸을 때 읽은 책은 참 순화되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제나 밍기뉴는 알긴 아는데, 제제가 맨날 혼나고 맞고 와서 밍기뉴에게 한풀이하는 것 정도만 기억에 있었거든요. 근데 후반부의 뽀르뚜가 이야기는 금시초문인 게, 아마 그 당시에는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었나 봅니다. 근데 그게 정말 메인이었는데 말이죠.
읽으면서 여러 사람에게 감정이 이입되고 또 조금 이해도 가긴 했는데요, 제제가 장난이 심하지만 그걸 제지하기보다는 행위에 대한 처벌만 있어서 좀 안타까웠어요. 아이의 장난이야 그렇다 쳐도 어른들이 그걸 오히려 재미로 느끼거나 그걸 이용하기도 했으니까요. 부모나 윗 형제들도 아직 어린아이에게 제대로 가르치기보다는 때리기부터 했으니까요.
저도 다섯 살 딸아이를 키우고 있어요. 장난이 아주 심해요. 제가 이렇게 잔소리 많은 아빠가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는데 같이 있으면 제가 말이 참 많아집니다. 뭐 서로 잔소리를 많이 하긴 합니다만 그래도 사랑하는 마음이 더 많습니다. 아이에게 손찌검을 한다는 건 생각할 수도 없고요.
하지만 우리나라도 몇십 년 전만 해도 아이는 단지 노동력을 위한 수단이었지 지금과 같지는 않았습니다. 70년대 이후에 들어서야 아이가 그 자체로서 존중받고 또 잘 키워야 할 대상으로 여겨지게 되었죠.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였을 거예요. 그래서 1968년에 브라질에서 처음 이 소설이 나왔지만 작가의 유년시절을 배경으로 했으니 그보다 훨씬 더 예전의 상황을 생각해보면 거의 아동학대 수준 (방치와 구타 등) 수준이 일반적이었을 수도 있을 듯해요. 게다가 가족도 많으니 아이들은 그냥 그렇게 알아서 크는 걸로 생각했을 수도 있겠죠.
마지막에 제제의 아빠가 새 직장을 얻었다고 해도 그게 해피엔딩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아요. 물론 아빠의 실직이 가정에 문제이긴 했지만 사실 근본적인 문제는 더 심각했으니까요.
암튼 이 또한 아이를 키우는 아빠의 입장에서, 또 어른의 입장에서 여러 가지 생각이 드는 이야기였어요.
p.s. 다섯 살 아이가 어떻게 그런 이야기를 할 수 있냐고 할 수도 있지만, 요즘에 다섯 살 아이 중에도 입이 거칠고 벌써부터 욕을 하거나 다른 애들에게 '죽여버릴 거야'라는 말을 하는 아이들도 있어요. 또 장난이라고 보기엔 너무 과격하거나 혹은 남을 괴롭히는 걸 좋아하는 아이들도 있죠. 외국으로 치면 만 네 살 남짓한 아이들인데 말이죠. 가정환경 혹은 주변 환경의 영향일 수도 있고 미디어 노출로 인한 것일 것 같기도 합니다. 제제도 그러했겠죠.
p.s.2. <나의 라임 오렌지나무>하면 저는 예전에 있었던 노래가 떠오릅니다. '삼각형'이라는 혼성듀엣의 <나의 라임오렌지나무>, 1989년 대학가요축제 앨범에 수록되어 있네요. 옛날 사람 인증...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