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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칼란드리아 Oct 04. 2022

윌라 캐더 <나의 안토니아>


*2017년에 작성한 글입니다.


<나의 안토니아>를 열린책들 번역본으로 읽었네요. 몇 달 전에 구매하긴 했지만 서문만 읽고 뒷부분은 손을 못 대고 있었는데 올해가 가기 전에 읽으려다가 만 책들도 읽어야 할 것 같아 읽게 되었습니다.


지루할 거라 생각했어요. <스토너>와 비슷할 거라는 사전 정보(?)가 있어서 그럴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평이하게 진행되면서도 지루하진 않았네요. 그건 이 작품에 생기를 불어넣어 준 '안토니아'라는 여자 때문인 것 같습니다. 


'보헤미안 스타일'의 이 천방지축 말괄량이 여자의 이야기지만, 그 바깥을 싸고 있는 것은 짐 버든이라는 주인공의 이야기이고, 그 이야기를 다시 서문에서의 짐 버든의 친구가 이야기하고 있네요. 사실 서문의 화자는 무시해도 되겠지만요. 


소설의 전개가 시간순이긴 하지만 그게 선형적이지 않고, 어떤 부분에서는 시간이 느리게 가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어느 부분에서는 압축되거나 혹은 건너뛰기도 해서 마치 영화 장면 탐색하듯 빠르게, 느리게 보는 듯한 느낌도 들었습니다.


좋은 문장도 많이 나오고, 가슴 아픈 에피소드도 많이 나오고, 황당한 에피소드들도 나오고, 아주 조금씩의 사랑 비슷한 것들도 있긴 하지만 그것들은 '고향'과 '친구'라는 단어에 대한 연관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그건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보편적인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것 같아요. '향수' 또는 '추억'이라는 것이죠. 


이 작품의 배경이 1800년대 말, 1900년대 초 정도니까 그때는 더 시골스럽고, 옛날스러운 추억담이 있었을 것입니다. 역사가 짧은 미국은 불과 100여 년 전의 일들도 까마득한 옛날처럼 느껴질지도 모르겠어요.


올해 방송되었던 '응답하라 1988' 같은 드라마가 히트한 것도 같은 맥락일 것입니다. 요즘의 중년층에겐 1970~80년대가 그 추억의 시기가 될 수 있을 듯하겠고 저도 그렇네요.


제 고향도 시골입니다. 경남의 어느 섬, 바닷가예요. 친가와 외가가 다 그곳입니다. 하지만 제가 태어나기 얼마 전에 육지와 다리로 연결되면서 더 이상 섬이 아니게 되었습니다. 어린 시절을 그곳에서 보냈고, 나중에 도시로 올라왔지만 초등학생 때까지도 방학 때면 시골에 가서 지내곤 했습니다. 사실 초등학생 때까지만 해도 시골집, 시골마을은 큰 변화가 없었어요. 1980년대가 그렇죠 뭐.


하지만 1990년대부터 변해가기 시작한 주변 풍경은 지금은 꽤 많이 달라졌습니다. 마을 자체는 집들이 좀 더 현대식으로 바뀐 것 말고는 크게 달라진 건 없지만(아, 폐가가 많아지기도 했네요. ㅠㅠ) 주변이 관광지로 개발이 많이 됐거든요. 그만큼 외지인들도 많아졌습니다.


어릴 때 추억은 이젠 가물가물하고, 그때 같이 놀았다는 친구들도 다 그곳을 떠났거나 혹은 남아 있더라도 전혀 알아보지 못하고 서먹함만 느낄 따름입니다만 그래도 고향이라는 곳은 늘 한결같은 생각이 들게 합니다. 


그래서 저자의 네브래스카에 대한 추억이 담긴 이 작품에 많은 공감이 갔던 것 같아요. 비록 저는 '안토니아'와 같은 여자아이에 대한 기억은 없지만요. ^^;;


서문에 나오기도 했지만, 만약 이 작품의 제목을 그냥 <안토니아>라고 했으면 정말 밋밋했을 텐데 거기에 'My'가 붙음으로써 그 애틋함을 극대화 한 효과가 있는 것 같습니다. 주인공에게 안토니아는 고향 그 자체일 수도 있는 것이니까요. 애증이 모두 담겨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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