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에 작성한 글입니다.
정이현 작가는 장편 <달콤한 나의 도시>로 많이 알려져 있어서 그런지 도시적인 이미지에 커리어 우먼들의 삶과 사랑을 주로 쓰는 것처럼 인식되지만 그렇지 않은 작품들도 많습니다. 아니, 오히려 그 도시 속에서의 군상들의 모습을 옆에서 담담하게 지켜보듯 말하는 게 더 많은 듯해요.
단편집 <낭만적 사랑과 사회>도 지금 읽고 있는데 여기에서부터 이미 작가의 그러한 성향이 나타났던 것 같아요. 제가 작가의 작품들을 순서대로 읽지 않아서 이게 원래 그랬던 것인지, 변화된 것인 지는 잘 모르겠어요.
또한 작품 속에서 현대사회의 부조리함을 드러내는 것들도 느껴지는데 (읽은 지 오래돼서 기억이 가물하지만) <너는 모른다>도 그랬던 것 같고, <안녕 내 모든 것>에서도 그러한 것들이 드러났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것은 신작 <상냥한 폭력의 시대>에서 정점을 찍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제목의 '상냥'이라는 단어와 '폭력'이라는 단어가 함께 쓰이면서 '친절을 가장한 폭력' 혹은 '폭력이나 다름없는 가식적 친절'이 난무하는 우리 사회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습니다. 특히, 수록된 단편 중 몇 가지는 살면서 한 두 번은 경험해 볼 수 있는 것들이라 공감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저도, 올해 겪은 비슷한 일을 소재로 한 것들이 있어서 남의 이야기 같지가 않았어요. 물론 전체가 다 그런 건 아니지만요.
또한 충격적인 내용도 있었어요. 저는 <아무것도 아닌 것>이 가장 충격적이었는데 그러한 충격적 사건을 어찌 그리 별 것 아닌 양 (고민과 충격이 드러나면서도) 처리(?)할 수 있는지가 놀라웠습니다. 그리고, 그럴 리는 없을 거라 믿지만, 제가 만약 그러한 부모의 입장이 된다면 어찌할는지... 아, 생각하기도 싫군요.
일곱 편의 단편들은 제각각 다른 형태를 갖고 있지만, 마치 하나하나의 퍼즐 조각처럼 단편적이나마 사회의 모습을 맞추어 나갑니다. 그게 비록 미완성의 모습일 지라도 그 일부의 모습만으로도 섬뜩함이 느껴집니다. 이것이 공포물이나 스릴러가 아닌데도 말이죠. 그건 모두가 알고 있지만 부인하고 싶은 모습, 그리고 속마음을 그려내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이 책을 읽으면서 한강 작가도 떠오르긴 했는데, 저는 이런 취향인가 봅니다. 또한, 그래서 호불호가 갈릴 거라는 생각도 들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