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독서 후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칼란드리아 Oct 04. 2022

알렉시예비치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2016년에 작성한 글입니다.


일주일 동안 이 책을 붙잡고 있었습니다. 사실 며칠은 그냥 놓고 있기도 했었습니다. 감정적으로 힘들거라 생각했었는데 생각보다 담담하게 읽어나갔습니다. 전쟁의 참상을 기술한 책은 이미 많이 보았으니까요. 


하지만 전쟁에 참전했던 여성들의 목소리를 그대로 기록한 이 책은 다른 느낌을 주었습니다. 그동안 생각해보지 못했던 것이었는데 간접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기회가 된 것 같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구 소련 (정식 명칭은 소비에트 사회주의공화국연방이죠)이 독일과 전쟁을 치르면서 막대한 희생이 있긴 했지만 결국에는 승리했죠. 당시 소련은 스탈린의 대숙청과 폭정으로 인해 불안정한 상태였는데 오히려 전쟁이 스탈린의 체제를 공고히 하는데 도움을 준 것 같은 생각도 듭니다. 그로 인해 얻은 것도 많았고요. 


그런데 무엇이 소련국민들로 하여금, 그리고 여자들로 하여금 전쟁에 뛰어들게 했을까요? 특히나 어린 여성들이 그렇게 자발적으로 전쟁에, 전투에 참여하게 만들었을까요. (약 백만 명가량의 여성이 전쟁에 참여했다고 합니다)


러시아 사람들은 상당히 보수적이고 자존심이 강하다고 알고 있습니다. 게다가 공산주의 정권이 들어서 모든 국민들에게 공산주의 사상을 주입시켰고 사람들은 공산주의의 이상향을 믿었습니다. 그리고 민족주의도 있었겠지요. 소련이 연방국가이지만 그래도 하나의 이념으로 독일군(책 속의 여성들은 대부분 독일군을 '파시스트'라고 말합니다)과 싸웠다고 생각합니다. 자발적 의지이긴 하지만 내면엔 세뇌교육+집단적 행동화가 있었을 것 같아요. 그 의지가 자유의지만은 아니었을 거라는 점이죠.


전쟁에 참여한 여군들은 힘든 상황을 많이 겪었습니다. 남자들보다 더 그랬겠지요. 그건 당연한 얘기입니다. 책에선 전쟁에서, 특히나 여자이기 때문에 겪은 육체적, 정신적, 감정적으로 힘든 것들이 끊임없이 계속 나옵니다. 읽기가 힘든 부분도 많았습니다. 어떤 사람은 자랑스럽게 얘기하기도 했고, 어떤 사람은 악몽을 떠올리듯 얘기를 했습니다. 이 부분은 남자들보다는 여자분들의 감정이입이 더 잘 될 것 같습니다. 전쟁, 군인을 떠나서 여자로서 느끼는 감정들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저도 이해가 안 가는 부분들이 많았지만 저의 고정관념 때문일 것 같습니다.


전쟁은 모두를 피해자로 만듭니다. 전쟁이 끝나고 나서도 그들의 전쟁은 끝나지 않았고, 그들에 대한 평가는 부정적이었으며 그들을 보는 시선은 차가웠습니다. 남은 건 상처와 장애와 쓸모도 없는 훈장과 메달뿐. 오히려 반역자로 몰리거나 불이익을 받은 경우도 많았습니다. 그러한 것에 대해 후회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그래도 자부심은 가지고 있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이 책에서 가장 마음이 아팠던 부분은 적에게 발각되지 않기 위해 아이를 죽였던 사연과, 남편을 찾아 전장에 갔다가 같이 전투에 참여하게 됐는데 남편이 죽은 이야기, 빨치산으로 활동하면서 겪은 이야기 (정규군 이외의 빨치산 부대 이야기도 나옵니다), 사랑 이야기 등입니다.


전체의 이야기의 요약은 가장 마지막 장에 '갑자기 미치도록 살고 싶어 졌어...'에 나오는 것 같습니다. 그 부분만 읽어도 전체적인 분위기를 느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사실 저도 전쟁은 남자들이 하는 것이란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지금도 그러합니다. 굳이 여자들을 전쟁에 참여시키고 싶지 않은 것이죠. 내 어머니, 내 아내, 내 여동생, 내 딸이 전쟁에 참여하는 건 생각할 수도 없으니까요. 


남자들이 무용담처럼 얘기하는 군대 이야기. 하지만 60대 이하 현재 대부분의 세대는 전쟁을 겪어보지 못했습니다. 아직도 먼 나라 이야기처럼 느껴집니다. 어떠한 목적으로도 전쟁은 정당화될 수 없지만, 우리 스스로를 지킬 수는 있어야 한다고 생각됩니다. 만약 전쟁이 발발한다면, 저는 어떤 결정을 내릴지 모르겠지만 아직 그런 생각은 하고 싶지는 않네요.


그 많은 이야기를 1980년대부터 모으고 담은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가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것이 충분히 납득이 갑니다. 증언록이긴 하지만 전쟁소설 몇 편을 읽은 듯한 기분도 듭니다. 가상의 이야기가 아니라 하나의 전쟁, 수많은 경험들이지만요. 읽기 힘들더라도 한 번쯤은 읽어볼 만한 책인 것 같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손아람 <디 마이너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