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독서 후기

김지연 <마음에 없는 소리>

by 칼란드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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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연 작가의 단편집 <마음에 없는 소리>에 수록된 작품 아홉 편을 하루에 한 편씩 읽었다. 평소 나의 독서 패턴대로라면 아마 한 번에 모두 읽어 나갔을 수도 있지만 이 책은 그럴 수가 없었다. 독파에 참여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한 편씩 읽고 생각을 하고 다음날 또 다음 편을 읽는 식으로 해야 온전히 느낄 수 있을 듯했다.


처음에 나온 <우리가 해변에서 주운 쓸모없는 것들>의 첫 문장부터 해서 < 공원에서>의 마지막 문장까지, 작가는 도발적이고 도전적으로 내게 얘기했다. 그리고 많은 질문을 던졌다.


당연히 누구보다도 화가 난 것은 우리였는데 한 편으론 무서웠다. 왜 그렇게까지 악의를 갖는 건지 알 수 없어서 더 그랬다. pp.16
하지만 나는 지나가지 않은 것에 대해 말하는 게 늘 두려웠다. 말하는 순간 다른 것이 되어버릴 것만 같았고 나로서는 변화를 감당할 수 없을 것만 같았고 그 변화에 대해 누군가에게 다시 설명해야 하는 것도 자신이 없었다. 나는 내가 다 겪은 것, 감당한 것, 견뎌낸 것에 대해서만 다른 사람과 공유할 용기가 났다. pp.22


작가의 문장들은 직설적이고 또 나의 감추고 싶은 부분을 들춰내듯 치밀하게 파고들었다. 등장인물들의 내면과 심리를 정확하게 잘 묘사해서, 그게 사람들의 공통적인 심리기 때문에 나에게까지 적용된 것 같다.


그런데 그것들이 불쾌하게만 느껴지지 않았던 건, 차라리 내 속마음을 들킨 것이 오히려 다행이라는 마음이 들었고, 또 안도감도 느껴졌기 때문이다. 마치 비밀을 털어놓듯이.


죽는다는 건 어쩌면 그냥 마음이 산산이 흩어지는 건지도 모르지. 다른 누군가가 그게 무슨 말이냐고 되물었다. 처음에 기능을 다하는 건 몸뿐이지만 그렇게 되면 마음이 머물 곳이 없어지니까 마음은 산산이 흩어질 수밖에 없지. 그러면 너라고 할 만한 것은 완전히 사라지고 마는 거야. 너는 여러 마음들의 집합체 같은 거라서. pp.190


또한 작가의 표현들이 유머러스한 면들도 있어서 유쾌하게 읽히기도 했지만 블랙코미디처럼 섬뜩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성소수자, 여성, 지방, 20~30대 젊은이들의 자화상, 코로나19의 시대 (작품 내에서 '감염병'이라는 표현이 자주 등장했다) 등 우리 사회의 그늘과 어두운 면들도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죽고 싶은 이유를 수십 가지나 가지고서도 자기 같은 건 아무짝에도 쓸모없다고 생각하면서도, 밤마다 엉엉 울면서도, 아침이면 일어나 허기를 느끼고 무언가를 먹고 마시며, 포만해지는 게 사람 아니냐고. 그러자 삼이 내 얼굴을 골똘히 보다가 눈감고 아, 해, 하고 말해서 눈을 감고 아, 했더니 내 입속으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한 숟갈 넣어주었다. 이 달달함 때문에 살고 싶은 거냐고 물어서 차가운 단맛을 침으로 녹이며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였지만 사실 나는 맹물을 들이켜면서도 살아 있는 게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니까 자살은 아니었다. pp.218
속담은 개수에서도 차이가 났는데 여자와 관련된 속담이 더 많았다. 어쩌면 당연한지도 몰랐다. 속담도 일종의 일반화니까. 남자들은 자신의 이름으로 살아왔고 여자들은 여자 일반으로 살기를 강요당했다. 그런 식으로 사전에는 인간의 온갖 차별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애초에 사전이라는 것이 인간 행위의 다수 항으로 만든 것이니까 당연했다. 인간적이라는 말은 그런 것이다. pp.266


다른 곳에서 작가의 인터뷰를 보았었는데 작가의 주 장르가 원래 스릴러나 호러라고 했던 것이 기억난다.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래간만에 괜찮은 작가를 만난 것 같다. 하지만 이 작품들을 다른 사람에게 추천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 분명 호불호가 갈릴 것 같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른 책들이 나온다면 나는 또 읽어볼 것이다. 다른 작품들도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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