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책과 독서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칼란드리아 Oct 20. 2022

혼자 읽기와 같이 읽기

독서를 하다 보면 혼자 읽게 되는 경우도 있고 같이 읽게 되는 경우도 있다. 전자의 경우엔 자발적인 독서이지만 후자의 경우엔 어느 정도는 자발적이라고는 해도 대체로 강제성을 띠기도 한다.


독서를 좋아하는 사람은 굳이 강제성을 띠는 독서를 할 필요는 없다. 그런 의무적인 독서가 아니더라도 독서에 대한 즐거움은 충분히 느낄 수 있고 읽을 책들은 많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같이 읽기에 참여하는 경우가 많다.


내 경우에는 독서토론모임은 꺼리는 편이고, 좀 더 느슨한 쪽을 택하는 편인데 현재는 문학동네에서 운영하는 독파 챌린지, 그리고 내가 활동하는 독서 관련 커뮤니티의 '함께 읽기' 정도만 참여하고 있다. 


독파 챌린지나 함께 읽기는 읽어야 할 책이 정해져 있고 (내가 원하는 대로 선택할 수 있지만) 읽어야 할 기간도 정해져 있어서 어쨌든 부담이 되고 의무감을 느끼기는 한다. 그리고 책을 읽고 나서도 그에 대한 독서기록이나 후기를 남겨야 하기 때문에 좀 더 신경 써서 읽게 된다. 책을 그냥 읽을 때보다는 시간도 좀 더 걸리고 번거롭지만 해야 할 것들도 많다.


그럼에도 그렇게 참여하는 이유는 책을 좀 더 꼼꼼히, 잘 읽기 위한 것도 있고, 내가 평소에는 접하지 않을 것 같은 책들을 읽게 되기 때문이다. 장르의 다양성 측면에서도 그렇고, 특히 내가 의외로 가장 취약한 분야인 세계 문학도 읽을 수 있는 계기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한 독서는 나의 독서 습관을 바로 잡고 또 편향성을 줄이기 위한 방편이기도 하다. 그리고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좋아한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미처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도 알게 되고, 다른 사람들의 해석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이게 되기도 한다.


독서토론모임(이하 '독토')을 꺼리는 이유는 그 모임의 순수성에 대한 의심과 회의 때문이다. 


지금까지 독토에 여러 차례 참여해 본 적이 있다. 고등학생 때는 PC통신의 문학동호회에서 문학작품(시나 소설)을 읽고 같이 이야기를 나누거나 자기가 쓴 작품을 낭독하기도 했었다. 고등학생이라 많이 참여는 못했고, 늘 거의 막내였지만 내겐 좋은 경험이었다. 벌써 30년 전의 기억.


대학생이 되어서는 내가 속한 동아리에서 신입부원들을 대상으로 하는 독토가 있었다. 주로 사회과학서적을 읽고 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었고, 때론 비디오를 시청하기도 했었다. 새로운 것들을 알게 되기도 했지만 학생운동과 연계가 되다 보니 어떤 부분에서는 이해가 안 되거나 반감이 생기기도 했었다. 게다가 선후배 관계로 이어진 독토다 보니 모두가 평등한 입장에서가 아니라 위계가 있고 한 방향으로 흐르는 듯한 양상이었다. 그러나 선택이 아닌 의무였기에 그렇게 1년 가까이를 했던 것 같다.


그즈음에 나는 또 다른 모임에도 참여하게 되었다. 여기는 독토라기보다는 세미나라는 이름을 썼는데 어쨌거나 정해진 책이나 자료를 읽고 그에 대한 강의와 토론을 하는 것이었다. 박정희 정권이나 전두환 정권이었더라면 끌려갔을지도 모를 그런 내용들을 주로 이야기했다. 


하지만 대학생 때의 그런 독토는 별로 좋은 기억으로 남지는 않았다. 내가 책을 읽고 느끼고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책은 단지 매개체일 뿐, 다른 수단을 통해 내가 판단하기 어려운 지식들이 내게 주입되었다. 물론 그것이 내게 상당한 영향을 미치기는 했지만 그 수단이 맘에 들지는 않았다. 그래서 더 이상 그런 독토에 참여하지 않게 된 것이기도 하다.


이후에는 온라인 친목 동호회 내에서 몇 번 오프라인으로, 그리고 직장 내에서 잠깐이나마 독서모임을 갖고자 했었다. 하지만 다들 '해보자!'라는 말로 시작했지만 너무 느슨해져서 지속되기는 어려웠다.


독토의 문제점은 개개인간의 여러 차이에서 비롯된다. 아무래도 주도하는 사람이 있고 또 수동적으로 따라가는 사람들이 있다. 책을 읽고 모이기로 했어도 다 읽고 꼼꼼히 토론할 내용을 정리해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읽지 않고 오는 사람도 많다. 독토 중에 어떤 문장이나 내용을 놓고 열띤 토론을 하게 되면 소수의 몇 사람만의 자리가 될 수도 있다. 혹은 마치 그 책에 대한 시험을 보는 듯한 기분도 든다.


배경지식이나 지식수준에도 차이가 있어서 어떤 사람은 자기가 아는 것을 과시하려고 하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아무것도 모른다고 자괴감을 느끼기도 한다. 때론 책의 내용과는 무관한, 엉뚱한 방향으로 이야기를 끌고 가는 사람도 있다. 자신의 경험이나 경력을 내세우기도 한다. 특히 모임 구성원의 연령층이 다양해지면 그럴 가능성도 높아진다.


또한 발제자를 정하거나 돌아가면서 하기도 하는데 그러한 것에 부담을 느끼는 사람들도 있다. 읽어야 하는 책이 나와 맞지 않을 수도 있다.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실시간 모임은 비슷하다. 규모가 작아도, 커도 문제는 생긴다.


독토가 지속되려면 그 가운에서 즐거움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의무감이 되고 귀찮음을 느끼게 되면 개인도, 모임도 지속하기 어렵다. 특히나 형식에 얽매이게 된다면 그야말로 모임을 위한 모임, 모임의 존재를 위한 모임이 될 수밖에 없겠다.


그리하여 현재 나의 절충안이 약간의 의무감이 가미된 독파 챌린지와 함께 읽기다. 이것도 마음 내킬 때만 하는 것이긴 하지만 가끔씩 참여하면 긍정적인 효과가 있다. 


독서토론처럼 거창한 이름을 붙이지 않더라도, 그냥 함께 읽고 함께 이야기를 자유롭게 나눌 수 있는 것만으로도 독서의 즐거움은 더 커질 수 있지 않을까. 물론 기본적으로 독서는 혼자 하는 것이긴 하지만.

매거진의 이전글 나는 문학평론가가 아니니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