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월 5일과 6일, 1박 2일간 강화도 전등사에서 템플스테이를 하였다. 강화도는 내가 군생활을 했던 곳이라 친숙한 곳이라 자주 찾는 곳이며, 전등사도 종종 들렀지만 템플스테이를 한 것은 처음이었다. 사실 템플스테이 자체가 처음이었다.
아내가 내게 평일에 이틀간의 자유시간을 가지라며 무엇을 할지는 내 마음대로 정하라기에 여러 가지를 알아보았다. 북스테이를 하고 싶은 생각도 있었고, 하루 종일 도서관에 있는 생각도 했었다. 바닷가 근처의 저렴한 호텔에서 머물면서 책을 읽는 생각도 했었는데 최종적으로 결정한 것이 템플스테이였다.
나는 종교가 없다. 하지만 불교, 기독교, 천주교를 다 접해보았기에 이들 종교에 대한 거부감은 그다지 없는 편이다. 템플스테이도 종교적인 의미보다는 휴식과 심신안정을 위한 목적이었다.
전등사의 템플스테이는 인기가 많은 곳인 듯했고, 평도 좋은 편이었다. 집에서 그다지 멀지 않고, 강화도나 전등사도 익숙한 곳이니 제격이었다.
아침 일찍 강화도에 도착해서 교동도와 여러 곳을 돌아보고, 입실 시각보다 일찍 전등사에 도착했다. 원래 3시부터 입실 가능이지만, 빈방이 있어서 먼저 들어갈 수 있도록 배려해 주어서 12시 반 정도에 들어갔다.
전등사의 템플스테이는 체험형, 휴식형이 있는데 나는 휴식형으로 신청했다. 숙소도 세 종류가 있는데 가격차이만큼 시설의 차이가 난다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프로그램은 동일하다. 나는 그중 적묵당에서 머무는 것을 선택했다. 방에 개별 화장실이 딸려 있는 형태다.
적묵당의 여섯 개의 방은 각각 육바라밀의 명칭이 부여되어 있는데 나에게 배정된 방은 '인욕'이었다. 분노를 끊고, 인내하고 참으라는 얘기. 내게 필요한 것이기도 하다. ㅋ
방안은 단출했다. 작은 책상이 있고 거기에 책 여러 권이 꽂혀 있었다. 커피포트와 독서등 이외에 다른 전자기기는 없다. (와이파이 공유기가 있어서 무선랜은 잘 된다)
템플스테이 일정표는 위와 같았다. 강제사항은 아니며 자율적으로 참여하면 된다. 하지만 나는 모두 참여하였다. 특히 새벽예불이 있던 시각에는 우리나라와 브라질의 월드컵축구 8강전이 열리고 있었는데...
그 외의 나머지 시간은 자유시간이다. 자유롭게 경내를 돌아다녀도 되고 방에서 하고 싶은 대로 해도 된다. 단, 경내를 벗어나서는 안 된다.
전등사의 특이한 점은 주변이 산성으로 둘러싸여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전등사로 가기 위해선 성문을 통과해 들어가야 하고, 이 산성이 절의 경계가 된다. 속세와의 경계이기도 하고.
산성의 원래 이름은 정족산 삼랑성이고, 단군의 세 아들이 쌓았다는 전설이 있지만 전설은 전설일 뿐. 줄여서 보통 정족산성이라고 부른다. 1866년에 병인양요 당시 프랑스군과 전투가 있었던 곳이기도 하다.
또 한 가지 특이한 점은 조선왕조 실록, 의궤, 족보를 보관하던 사고가 있다는 점이다. 임진왜란 이후 실록이 거의 유실될 뻔하자 실록을 새로 만들면서 깊은 산속에 네 곳의 사고를 새로 만들고 근처에 있는 절에서 이를 지키도록 하였다. 그중 하나가 정족산 사고이며, 전등사가 그 수호 사찰이다. 물론 사고를 지키는 군대도 근처에 따로 있었다.
조선왕조실록은 현재 유일하게 정족산 사고본만 전권이 남아 있는데 일제 때 이들 소장도서들은 서울로 옮겨졌다. 사고는 한국전쟁 때 불탔지만 1998년에 복원되었다. 생각보다 작은 규모였고, 사고 중에서는 유일하게 단층 건물이다. 사고는 통풍이 잘 되도록 2층 누각 형태로 짓는데 정족산 사고는 바다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어 단층으로 지었다.
경내 산책을 좀 하고 나서 대부분의 시간은 방 안에서 책을 읽으며 보냈다. 이번 여행에 이북 리더로 크레마 s를 가져갔기에 전자책을 읽을 예정이었지만 더불어 방안에 있는 불교 관련 서적들도 몇 권 읽었다.
아쉬운 점은 날이 추워서 밖에서 책을 읽을 수는 없었다는 점이다. 낮에도 영하의 날씨였으니. 경내에 다원도 있지만 다원보다는 따뜻한 방이 더 좋았다.
템플스테이를 하는 동안 전자기기를 잠시 멀리해도 될 것 같지만 전자책 정도는 괜찮겠지. 사실 태블릿도 가져갔었는데 태블릿은 사용하지 않았다. 스마트폰도 사진 찍고, 정보 검색하는 용도 이외에는 거의 안 썼다.
거기서 읽은 불교 관련 서적들. 가볍게 볼 수 있는 책인데 108 번뇌를 의미하는 듯, 108가지의 명상을 할 수 있도록 짧은 글과 그림들이 수록되어 있었다.
불교 관련 매거진인 듯한데 마침 강화도 특집이었다. 한 권 전체가 거의 강화도 얘기라 흥미롭게 읽었다. 특히 전등사에 대한 얘기가 많아 특별히 비치해둔 것 같았다.
그 옆에 외국인용 책들도 있었는데 잠시 훑어보았다. 외국인들도 템플스테이를 많이 온다는데 그 사람들은 무엇을 느꼈을까 궁금해진다.
그리고 어린이용 불교 해설서도 읽어보았다. 어린이용이라고는 하지만 불교 입문자에게도 적합할 것 같다. 종교로서가 아니라, 불교가 어떤 종교인지 이해하는데도 도움이 될 듯했다. 나도 막연히 알고 있던 불교 교리에 대해서 좀 더 정리를 해볼 수 있었다.
산사의 밤은 일찍 찾아온다. 야경도 아름다웠고 별도 많이 보였다. 이튿날에는 눈도 살짝 내려서 또 다른 풍경이었다.
템플스테이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좀 아쉬워서 집 근처에 있는 카페꼼마에 들렀다. 여기에서는 김연수 작가님의 <사월의 미, 칠월의 솔>을 읽었는데 이 작품집도 좋았다. 김연수 작가님의 책들은 전반적으로 좋다.
이틀간의 여행과 휴식. 특별한 시간들이었다. 하지만 그 시간을 보내고 나서 느낀 건 가족의 소중함이었다. 역시, 혼자보다는 가족과 함께 하는 게 더 낫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