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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칼란드리아 Feb 13. 2023

이상엽 <강화 돈대>


작년 말에 이 책이 나오고, 인터넷 서점사에서 광고하는 것을 보고는 바로 주문했다. 꼭 읽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작 구입한 뒤 한 달이 훨씬 더 지나서야 읽게 되었다.


이 책을 읽고 싶었던 이유는 우선 제목에 있다. <강화 돈대>. '강화도'와 '돈대'는 둘 다 나에겐 익숙한 것들이었기에 그에 대한 이야기를 보고 싶었다.


나는 해병대 출신이며, 1990년대 중후반에 강화도 전방에서 2년간 군생활을 했었다. 강화도에서 전후방이 별 의미는 없지만 예비대와 전방(민통선 안쪽, 군사용어로 FEBA-A)에서 순환근무를 하는 형태였다. 


철책 (휴전선의 일부지만, 강화도의 한강하구는 중립지역이므로 남북한 각각 경계를 위한 목적으로 설치된 것) 근무를 위한 초소와 그들이 머물고 있는 소대는 돈대 근처에 있는 것들이 많았다. 그래서 돈대라는 명칭 자체가 익숙할 수밖에 없었던 것.


실제로 강화도 내에서 작전을 하거나 혹은 위치를 얘기할 때도 돈대를 기준으로 하는 경우가 많았다. 물론 군사시설물 위치(검문소나 초소 번호 등)나 지형 (산, 도로 등)을 기준으로 하는 경우가 더 일반적이지만. 


하지만 일반인들은 돈대라는 용어 자체가 생소한 경우가 많을 것이며, 실제로 돈대에 가본 사람들도 많지 않을 것 같다. 


강화도는 예로부터 군사적 요충지였고, 그 중요성 때문에 역사에 많이 등장했다. 고려시대에는 '강도'라고 불린 임시수도였으며, 조선시대에도 왕의 피난처가 되기도 했었다. 특히 병인양요, 신미양요, 운요호 사건, 강화도조약 등 근대사에서 중요한 사건들이 벌어진 곳이기도 하다.


이러한 중요성으로 인해 강화도에는 5진, 7보, 54 돈대가 설치되었다. 많이 알려진 초지진, 갑곶진 등이 진이며, 광성보 등이 보, 오두돈대, 월곶돈대 등이 돈대다. 진, 보, 돈대 순으로 규모가 작으며, 주둔하는 인원도 적다. 보나 돈대는 대체로 진에 속해 있었다.


그러한 돈대는 대부분 숙종시기에 축조되었는데 승려와 군인 1만 5천여 명을 동원하여 80여 일 만에 지었다. 이는 몰랐던 사실이었다. 하긴, 관심을 갖지 않으면 알 수가 없는 내용이니.


이 책의 저자인 이상엽작가는 르포전문작가이며, 강화돈대의 집필을 위해 2015년부터 6년 이상 강화도를 찾았다. 54개의 돈대를 일일이 찾아다니며 사진을 찍고 그에 대한 이야기를 적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돈대는 흔적만 남아 있거나 혹은 흔적조차 찾을 수 없는 경우도 있었다. 그나마 상태가 온전한 것도 군부대 소유 거나 혹은 1970년대에 엉터리로 복원된 것들이었다.


또한 정확한 위치를 알 수 없는 곳은 예전 기록에 의존하거나 위성사진을 찾아보며 갔다고 한다. 어떤 곳은 길이 없어서 절벽을 타고 올라갔다고 한다.


내가 군생활하던 당시에도 대다수의 돈대들의 상태는 좋지 않았다. 돈대들뿐만 아니라 강화도의 유적지들도 제대로 관리가 되고 있지 않았다. 훈련이나 작전 상 강화도 여러 지역을 다니면서 본 유적들 (가장 흔한 것이 고인돌이나 석탑)은 팻말 하나 붙어있고 방치되다시피 한 것들이 많았으니. 그나마 관리가 되기 시작한 것이 1990년대 말, 2000년대 들어서다.


그는 돈대 취재를 위해 해병대에 허가를 요청했으나 허가된 경우도 있고 거절되거나 응답이 없었던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그런 경우에도 몰래 가서 취재를 하기도 했고, 군인들에게 발각되어 쫓겨나거나 촬영물을 몰수당할 뻔하기도 했다고 한다. 


사실 그건 온당한 것은 아니다. 군생활의 경험상 그런 경우가 몇 번 있었는데 철책이나 군시설물 근처에 사전에 허가받지 않은 민간인이 접근하는 건 예민해질 수밖에 없다. 


돈대는 목적 자체가 군사시설물이었다. 해안가에 접근하는 적을 관측하고, 필요시에는 공격 또는 방어를 하기 위한 목적이다. 그 위치상 현재 남북대치 상황에서도 동일한 목적을 가질 수밖에 없고, 군사시설물로 이용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에 대해 저자는 상당한 아쉬움을 토로한다. 그래도 유적지인데 군이 임의로 훼손하고 이렇게 이용해도 되느냐고 묻는다. 군과 문화재보호, 양쪽의 입장을 다 이해는 하지만 당장 타협점을 찾기는 어려울 것 같다. 저자의 말대로 군시설물을 다 옮길 수는 없으니. 점차적으로 철수하는 추세이긴 해도.


그보다 더 심각한 것은 박정희 시대 때 엉터리로 복원된 진, 보, 돈대들이다. 박정희 시대 때는 목적성을 가지고 문화재들을 복원하였으며, 대부분 졸속, 날림이었다. 그로 인해 후에 다시 복원되거나 아니면 재복원조차 어려워진 경우가 많다. 그가 복원한 문화재들은 대부분 민족성을 강조하거나 혹은 안보, 전쟁과 관련된 것들이 많았다.


그러한 것들은 심각한 역사왜곡을 초래한다. 문화재의 잘못된 복원은 이미 잘못된 역사인식의 일부이기도 하다. 그래서 현재의 문화재 복원은 시간이 좀 더 걸리더라도 철저한 고증과 사료에 기반하고자 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 책은 '다크 투어리즘'을 표방한다. 우리 역사의 어두운 면을 간직하고 있는 유적지들을 탐방하는 것이다. 이는 유럽이나 외국에서 종종 등장하는데 우리나라에서도 어두운, 감춰진 역사를 갖고 있는 곳들이 많다. 특히나 전쟁을 많이 겪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 책에서는 그런 암울한 역사의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강화돈대를 주제로 하기는 했지만 조선시대 중반부터 현대사까지 강화도를 둘러싼 역사적인 사건들을 훑는다. 특히 한국전쟁 당시의 양민학살이나 이후의 강화도의 현실은 그러한 비극의 절정에 이른다.


강화도에 2년간 있으면서 마을주민들을 접촉할 기회가 종종 있었는데 황해도 쪽에서 온 실향민들도 있었고, 타지에서 온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나 북한과 접경지역이라는 특성상 대체로 상당히 반공주의자들이었고, 극우 성향을 보이기도 했었다. 또한 섬이자 해병대 주둔지라서 그런지 (또 강화도 출신들은 해병대로 차출되는 경우가 많아서인지) 해병대의 정서가 강한 곳이기도 하다. 그런 여러 가지가 맞물려서 상당히 배타적이고 특이한 정서가 있는 곳이다.


그런데 이 책에 나온 내용을 보니 그런 이유도 알 수가 있었다. 그 또한 이전에는 몰랐던 사실이었는데 참 안타깝고 씁쓸했다. 대체 우리의 역사에는 얼마나 많은 숨겨진 비극이 있는 것일까.


그러한 역사와 비극들을 각각의 돈대를 찾아가며 사진과 함께 담았다. 흑백으로 담긴 사진과 작가의 글들은 강화도, 그리고 우리나라의 역사와 현실을 담담하면서도 명확하게 보여주었다. 비단 강화도나 돈대에 관심이 없는 사람에게도 추천할만한 책이다. 전자책으로도 나와있지만 가급적 종이책으로 보는 것이 나을 듯하다. 아무래도 사진들이 많고, 그에 맞게 편집되어 있기 때문이다. 


현재 정부는 강화도의 진, 보, 돈대들을 묶어서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는 것을 추진 중이라고 한다. 등재 가능성이 높지는 않지만 그 중요성과 의미를 부각하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저자는 우려를 표명하며 조언을 남기면서도 대중들의 관심을 요구하였다. 


강화도는 지금도 종종 가는 곳이지만, 기회가 된다면 여기에 소개된 돈대들을 찾아가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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