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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칼란드리아 Aug 03. 2023

미셸 자우너 <H마트에서 울다>


이 책은 한국계 미국인인 미셸 자우너가 쓴 자전적 소설이다. 소설이라고는 하지만 아마도 대부분의 이야기자 본인의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아버지는 미국인이며 어머니는 한국인인 그녀는 아버지가 한국에 있을 때 어머니와 결혼하여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미국으로 와서 자라게 되었다. 미국으로 온 후 아버지는 가정을 제대로 돌보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그녀의 어머니는 그곳에서 언저 장벽과 문화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꿋꿋이, 열심히 살았다. 


하지만 저자는 그러한 어머니와의 관계가 좋지 않았다. 특히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그녀는 집에서 벗어나고자 했다. 그러면서 음악활동을 시작했고, 일탈도 있었다. 어머니는 저자를 한글학교에 보내어 한글을 배우게 하거나 기회 되는 대로 한국으로 데리고 갔었다. 한국과 미국, 한국인과 미국인, 그 정체성의 혼란 속에서 성장했고, 극복하기 어려웠다. 저자에게 한국에 대한 것들을 심어주기 위했던 어머니의 노력도 소용이 없었다. 더욱이, 아시아계 혼혈이라는 차별, 인디음악을 하는 어려움 등이 그러한 상황을 악화시켰을 것이다.


그러던 중 저자의 어머니가 말기 암에 걸린다. 저자는 어머니를 이해하고 싶어 졌지만, 어머니는 이미 손 쓸 수 없는 상태였다. 저자는 어머니와 함께 시간을 보내며 음식을 만들고 이야기 나눈다. 그리고 어린 시절을 회상한다. 그 과정에서 저자는 어머니를 이해하기 시작했고, 어머니의 사랑을 느끼게 되었다. 그리고 어머니의 죽음을 통해 가족의 소중함을 깨닫게 된다. 어머니의 죽음 이후에도 그녀는 계속 한국음식을 만들며 그러한 과정을 이어갔다.


제목의 'H마트'는 그녀가 거주하던 지역에 있던 한인마트다. 어머니와 함께 그 마트에서 장을 보고 음식을 만들었다. 그러다가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혼자 마트에서 장을 보다가 울음을 터뜨리게 되었다는 의미다.


그녀는 뮤지션으로 활동하면서도 그 이야기를 책으로 썼다. 이 책은 미국에서도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국내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읽은 듯하다. 


이 책에는 한국, 한국음식에 대한 소개가 많이 나오기에 한국인으로서는 익숙한 측면도 있기는 한데 과연 미국인들에게는 어땠을까? 하지만 가족에 대한 사랑은 보편적인 이야기이기에 미국인들에게도 공감을 얻지 않았을까?


이 책의 어조는 대체로 담담하다. 억지로 눈물을 자아내게 하려는 장치는 없지만 먹먹함은 든다. 아마도 내용 자체가 그러하기 때문일 것이다. 


엄마는 나의 대리인이자 기록 보관소였다. 엄마는 내 존재와 성장 과정의 증거를 보존하려 갖은 노력을 기울였다. 내 모습을 순간순간 포착하고, 내 기록과 소유물을 하나하나 다 보관해 두면서. 엄마는 나의 모든 걸 기억하고 있었다. 내가 태어난 때, 결실을 맺지 못한 열망, 처음으로 읽은 책. 나의 모든 개성이 생겨난 과정, 온갖 불안과 작은 승리. 엄마는 비할 데 없는 관심으로 지칠 줄 모르고 헌신하면서 나를 지켜보았다. 

엄마가 사라지고 나니 이런 것들을 물어볼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기록되지 않은 일은 엄마와 함께 죽어버렸으니까. 한낱 기록과 내 기억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이제 엄마가 남긴 표식을 단서로 나 자신을 이해하는 일은 오롯이 내 숙제가 되었다. 이 얼마나 돌고 도는 인생인지, 또 얼마나 달콤 쌉싸름한 일인지. 자식이 엄마의 발자취를 더듬는 일이, 한 주체가 과거로 돌아가 자신의 기록 보관인을 기록하는 일이. 

나는 발효가 통제된 죽음이라고 생각했다. 배추는 놔두면 곰팡이가 피고 부패 한다. 썩어 못 먹게 된다. 하지만 배추를 소금에 절여두면 부패 과정이 완전히 달라진다. 당이 분해되면서 젖산을 만들어내 배추가 썩지 않게 되고, 그 과정에서 탄산가스가 나와 절임이 산성화 된다. 그렇게 해서 시간이 지날수록 색과 질감이 변하고, 톡 쏘는 새콤새콤한 맛이 나게 된다. 요컨대 발효는 시간 속에 존재해 변화한다. 그러니 발효가 완전히 통제된 죽음인 건 아니다. 사실상 새로운 방식으로 생명을 누리게 되는 거니까. 

내 기억을 곪아터지게 놔둘 수는 없었다. 트라우마가 내 기억에 스며들어 그것을 망쳐버리고 쓸모없게 만들도록 방치할 수는 없었다. 그 기억은 어떻게든 내가 잘 돌봐야 하는 순간이었다. 우리가 공유한 문화는 내 심장 속에, 내 유전자 속에 펄떡펄떡 살아 숨 쉬고 있었다. 나는 그걸 잘 붙들고 키워 내 안에서 죽어버리지 않도록 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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