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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칼란드리아 Dec 26. 2023

이민희 <18세기의 세책사>

소설 읽기의 시작과 유행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세책'은 18세기 무렵 전 세계적으로 활발하게 운영되었던 유료 도서대여시스템을 의미한다. 낯선 단어이지만 상당히 흥미를 자극했다. 특히나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그냥 지나칠 수가 없는 내용이다.


이 책에서는 각 국가별로 세책문화가 어떻게 형성되었으며 어떻게 발전했다가 쇠퇴하게 되었는지를 보여준다.  여기에 저자가 직접 발로 뛰며 수집한 자료들이 돋보인다. 하지만 문헌을 샅샅이 뒤졌음에도 그런 기록이 없는 국가들도 상당히 많았다고 한다. 그래서 대표적인 사례 위주로 기술하였다.


세책점은 종교서적 중심의 구성을 벗어나 오락적 독서물, 소설, 역사서, 여행서 등 다양한 종류의 도서를 취급하며 '넓게 읽기'를 가능하게 했다. 그중에서도 세책 독서의 핵심은 소설이었다. 소설은 전통적인 문학에 비해 대중적인 인기를 끌었으며, 이는 독서 문화의 질과 성격을 변화시켰다. 그래서 이 책의 부제가 '소설 읽기의 시작과 유행' 이기도 할 것이다. 


세책 독서를 통해 당시 사회에서 소수만 즐기던 독서가 신분, 계층, 성별, 직업에 관계없이 즐길 수 있는 것으로 바뀌게 되었다. 이전에는 엘리트 계층의 특권으로 여겨졌던 독서가 세책점의 등장으로 대중적인 활동으로 바뀌었다. 세책점은 다양한 사회 계층에게 책을 접할 기회를 제공했고, 이는 문해율의 증가와 독서 문화의 대중화를 이끌었다. 특히 세책 소설 독서의 주역은 여성 독자였으며, 사회적 약자인 여성들이 자국어 독서물을 적극적으로 소비하며 세책 독서문화를 확산시켰다. 이렇듯 세책문화는 새로운 취향을 가진 열성 독자들이 만들어낸 문화였다. 


독서 방식에도 변화가 있었다. 낭독에서 묵독으로의 전환은 혼자서 책을 읽는 문화를 강화시켰으며, 이는 비판적이고 독립적인 사고를 촉진했다. 


하지만 소설의 대중화와 상업화는 문학 품질에 대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대량 생산으로 인해 소설이 더 많은 독자에게 도달할 수 있었지만, 이로 인한 문학의 품질 저하에 대한 우려도 제기됐다.




세책점의 설립 조건과 운영 방식은 세책 독서 문화 이해의 중요한 척도이다. 세책점은 문자를 익힌 모든 이들이 독자가 될 수 있는 새로운 서적 유통의 전초기지 역할을 했다. 책의 생산, 유통, 소비가 동시에 발달하며 도서대여 현상이 나타났고, 출판시장은 출판, 유통, 소비뿐만 아니라 여론 형성과 사회 변화에도 영향을 끼쳤다. 세책점의 등장은 출판업에는 손해가 아니었으며, 유럽의 큰 세책점들은 인기 있는 책을 잘 만드는 출판업자와 지속적으로 거래했다. 세책점들이 출판사를 겸하거나 혹은 출판사가 세책점을 겸하는 사례도 있었다.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세책문화, 혹은 세책독서가 당시 어느 특정한 국가에서만 번성하였던 것이 아니라 동서양 모두 발달했었다는 점이다. 외세 간섭, 전쟁, 정치적 불안 요소가 클수록 세책문화가 어려웠지만 문화와 정서적 차이에도 기인한다. 


이 책에서는 여러 국가의 사례들이 등장하는데 간략하게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한국: 

조선후기부터 국내에서도 세책점이 발달하였으며, 책쾌 혹은 서쾌라고 불리던 서적상들이 있었다. 주로 통속물을 다루었으며, 한글로 된 서적이 대부분이었으나 한문으로 된 책들도 많았다. 18세기에 동전 화폐의 사용이 늘어나고 시장경제가 발달하면서, 독자들은 전문 필사자가 필사한 책을 소유하거나 빌려 읽는 방식으로 독서를 하였으며, 19세기에는 방각본 소설이 등장하며 인쇄본도 세책 목록에 포함되기 시작했다. 이러한 세책점들은 1920년대에 자취를 감추었다.


일본: 

일본에서는 18세기 초부터 일반 시민들이 세책점에서 오락용 책과 소설류를 저렴한 가격에 빌려 읽는 문화가 발달했으며 도쿄, 교토, 오사카 등의 주요 도시뿐만 아니라 온천장에서도 세책업자가 생겨났다. 이는 도시화 및 시민계층의 성장으로 인한 것으로서 쉽게 다양한 독서를 접할 수 있는 환경 조성되었다.


중국: 

중국에서는 세책 문화가 한국이나 일본에 비해 상대적으로 미미했다. 이미 출판과 서적 유통이 발달해 있어 세책 문화가 크게 필요하지 않았고, 필사 문화가 일상화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즉, 다른 사람이 갖고 있는 책을 필사하여 소유하는 성향이 강했기에 대여시스템이 발달하지 못한 것이다. 그러나 대도시 위주로 책방에서 대여하는 시스템이 있었음은 기록을 통해서 확인된다.


유럽: 

유럽에서는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읽는 문화가 있었다. 중세에는 필사본을 대출해 주는 '슈타치오나리'라는 역할이 있었으며, 구텐베르크 인쇄술의 확산으로 인쇄본 출판이 활발해졌다. 북유럽이나 동유럽의 경우에는 서유럽 국가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세책점의 발전이 더디거나 혹은 미미했다.


영국에서는 18세기 초 세책점이 처음 등장하였으며 200년 넘게 세책 독서문화를 주도해 나갔다. 이는 수도 런던뿐만 아니라 여러 지역의 도시에서 성행하였다.


아일랜드에서도 세책문화가 발달하였는데 국민들이 문맹률이 낮았으며 독서 인구도 많아 세책 독서에 대한 수요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 외에도 프랑스, 독일, 슬로바키아, 스웨덴, 러시아 등 여러 국가로 세책 문화가 확산되었으며, 대체로 비슷한 양상과 발전기를 보였다. 스웨덴의 경우에는 러시아에 의해 스웨덴어로 된 도서의 출판과 대여가 금지된 적이 있었고 세책문화가 발달하기 어려운 환경이었으나 독자적으로 자생한 세책문화가 있었다. 


북미(미국): 

북미에서는 18세기 이후 영국의 세책 문화의 영향을 받아 미국 아나폴리스에 1752년 첫 세책점이 등장했다. 초기에는 영국 문화의 영향을 받았지만, 미국에서는 유럽과는 다른 방식으로 세책 영업이 진행되었다. 또한 독립전쟁 이후에는 세책 독서가 크게 증가하여 19세기 후반까지 세책점들이 전성기를 이루었다. 


중남미:

중남미 지역에서는 19세기 이후 세책 문화가 서서히 나타났다. 브라질에서는 1820년대부터 포르투갈어나 프랑스어로 된 책을 다루는 서점과 세책점이 생겨났고, 1840년대부터 활성화되었다. 특히 프랑스어 소설들이 인기를 구가하다가 점차 자국어소설이 등장하여 민족문학도 발전하게 되었다.


카리브해:

카리브해 국가 중 세책문화가 가장 발달한 나라는 자메이카였다. 자메이카에서는 18세기부터 신문을 발행하였는데 신문 판매와 더불어 해외 출판물과 다양한 상품을 판매하는 가게들이 있었다. 이러한 가게들은 이후 구독제 도서대여까지 확장되었다. 


아프리카

아프리카에서는 정치적·문화적·지리적 여건 때문에 책의 출판과 유통 그리고 독서문화가 20세기 중반 이후에 나타났으며, 책을 빌려 읽는 문화가 크게 발달하지 못했다. 대학 및 공공도서관도 20세기 초 이후 일부 도시에서 처음 나타났다. 그러나 나이지리아에서는 오니차시장문학처럼 일반인들이 책을 쓰고 판매하는 시스템이 생겨났다. 이러한 문화를 통해 아프리카 대중 통속문학 작품들이 대량생산되고 유통되었으나 20세기 중후반부터 쇠퇴하였다.




19세기말부터 20세기 초에 이르러 세책 독서는 쇠퇴했다. 책의 가격이 하락함에 따라 책을 구매하여 소유하는 것에 대한 부담이 줄어들었으며, 특히 공공도서관의 설립은 세책점의 쇠퇴를 가속화시켰다. 책이 공공재로 인식되면서 대중은 세책점 대신 공공도서관을 이용하기 시작했다. 여기에 텔레비전과 같은 새로운 매체가 등장함으로써 사람들은 독서 이외의 다른 흥밋거리를 찾게 되었다.


이렇듯 세책 문화와 독서의 변화는 문학과 사회 전반에 영향을 미쳤다. 이는 교육과 문화, 사회적 변화를 가져왔으며, 오늘날에도 그 영향이 지속되고 있다. 


세책 문화는 독서가 개인과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극적으로 보여주는 중요한 역사적 사건이다. 이 책을 통해 책의 보급과 독서문화 형성에 기여한 세책문화를 돌아봄으로써 책의 역사의 일면을 알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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