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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칼란드리아 Mar 25. 2024

정한아 <술과 바닐라>


정한아 작가의 작품은 이전에 장편으로 <친밀한 이방인>, <달의 바다>를 읽은 적이 있고, 2022년 김승옥문학상 수상집에 수록되었던 단 "일시적인 일탈"을 읽은 적이 있다. 그리고 이번에 독파를 통해 <술과 바닐라>를 읽게 되었다. 공교롭게도 모두 독파를 통해 읽은 셈이다. 사실 <술과 바닐라> 구매는 오래전에 했지만 정작 읽지는 못했는데 이번 기회에 읽으리라 마음먹었다.


이 단편집은 <나를 위해 웃다>, <애니>에 이어 그의 세 번째 소설집이다. 단편으로는 "일시적인 이탈"을 먼저 읽었기에 그가 단편 작품에서도 재능이 있음을 짐작하고 있었는데, 이 단편집도 기대했던 것보다 좋았다.


이 단편집에는 아래와 같이 일곱 편의 단편들이 수록되어 있다. 


잉글리시 하운드 독 

술과 바닐라 

참새 잡기 

바다와 캥거루와 낙원의 밤 

고양이 자세를 해주세요 

기진의 마음 

할로윈 




아이가 잠든 후, 미연은 조용히 책을 덮었다. 문득 스위스의 설야가 떠올랐다. 하얗고 폭신한 눈, 영원히 녹지 않을 것만 같던 눈 덮인 구릉...... 연주는 그때를 떠올리며 눈이 휘어지게 웃었다. 그제야 미연이 아는 연주로 돌아온 것 같았다. 그들 넷은 잠시 동안 한마음이 되었다. 미연 역시 그 시절을 기억하고 있었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과거에 사로잡힌 채 살아갈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비록 모든 아름다운 것이 과거에 있다 할지라도.

"잉글리시 하운드 독" 중에서


여기 실린 단편들은 모두 30여 페이지 정도로 호흡이 그리 길지는 않았고, 비슷한 내용들이 변주를 이루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현실에서 충분히 있을법한 이야기들을 그리고 있어 독자들에게 가닿으면서도 어떤 면에서는 섬뜩함마저 느껴지기도 했다. 이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내재하고 있는 불안과 두려움 때문이 아닐까. 또는 현실 그 자체의 압박감일 수도 있을 것이다.


각 작품 속의 등장인물들 (주인공 또는 그 주변인들)은 실패와 연관되어 있다. <잉글리시 하운드 독>의 성재와 연주, <참새 잡기>의 아버지와 할머니, 그리고 그 외의 작품에서의 주인공들은 여러 가지 상황으로 인해 실패한 모습으로 그려진다.


그러나 그 실패는 혼자만의 것이 아니고 주변 사람들과 관련되어 있으며 영향을 미친다. 고통은 전파되고 전가된다. 결국 그것은 관계의 문제로 이어진다. 단편소설의 장점이 그러한 관계의 단면을 날카롭게 잘라 볼 수 있다는 점이지만 그의 소설에서는 그러한 관계의 어려움과 답답함, 때론 아득함이 더 잘 드러난다. 그래서인지 각 작품을 읽을 때마다 턱턱 걸리는 느낌이 들었다. 쉽게 넘어갈 수 있는 작품들이 아니었다. 이는 그가 그러한 상황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면서도 서사의 힘으로 스토리를 밀어내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이번 작품집에서는 결혼, 육아에 대한 힘겨움이 많이 나타난다. 남녀 간의 사랑 얘기는 동서고금 예술작품의 공통된 주제이지만, 모든 사랑 이야기가 행복하게 끝날 수만은 없다. 그리고 현실은 더 무겁고 힘들다.


결혼은 두 사람 관계의 이야기(+양쪽의 가족들)이지만, 그 사이에서 아이가 태어나 자라게 되면 그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들은 예상을 벗어나기 일쑤다. 그러한 점들은 육아를 해본 사람들만 공감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나 역시 그러한 것을 현재진행형으로 겪고 있기에 공감이 되는 점들이 많았다. 하지만 아내, 엄마로서의 역할과 입장에 대해서는 다소 시각차는 있을 수 있겠다. 이는 당연한 것이며 그렇기에 일률적인 감상이나 해석에서 벗어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한 달쯤 지나자 모든 게 가짜처럼 느껴졌다. 무엇보다도 나 자신이, 집안에서 동동거리며 돌아다니는 나 자신에게 묘한 위화감이 들었다. 매일 베갯잇을 삶아 햇볕에 말리는 내가, 직접 생선의 내장을 제거하고 손질하는 내가, 휘에게 끝도 없이 긴 책을 읽어주고 있는 내가 낯설게 느껴졌다. 가짜인 나를 진짜인 내가 바로 옆에서 지켜보고 있는 느낌이었다.
(...)
밥을 먹다가 휘의 앞니가 벌어진 것을 보면 흉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아이가 옆에 들러붙을 때는 미지근한 체온을 참을 수 없어 뒤로 물러났다. 무엇보다 그 애의 발작적인 웃음소리를 견딜 수 없었다. 마치 지하철에서 옆에 앉은 사람의 체온과 숨소리를 느낄 때처럼 불쾌한 감각이 불쑥불쑥 솟아올랐다. 나는 아이를 향해 억지 미소를 지었다. 아무렇지 않은 척 손을 내밀어 머리를 쓰다듬었다. 매 순간이 히스테릭한 연극 같았다. 시간이 슬로모션처럼 느리게 흘렀다. 나는 오 분마다 한 번씩 시계를 올려다보았다. 술을 마시기 시작한 것은 그래서였다. 시시각각 분열되는 나를 참을 수 없었다.

"참새 잡기" 중에서


특히 여기 나온 작품들에서는 '엄마'와 '자아' 사이에서의 갈등과 어려움이 더 잘 나타난다. 또한 자아에 대한 포기가 되어버릴 수도 있다. 


"술과 바닐라"는 마치 정한아 작가 자신의 목소리가 담겨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는데 작가로서 성공을 꿈꾸는 주인공과 그로 인해 짐이 되어 버린 듯한 아이, 그리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통상적 해결책(육아도우미)을 모색했지만 결국엔 두 가지 모두 실패해버리고 말았다. "참새 잡기", "바다와 캥거루와 낙원의 밤", "기진의 마음" 역시 마찬가지다. "잉글리시 하운드 독"에서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같은 방향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것이 과연 실패이기만 한 것일까? 어쩌면 그것은 국면의 전환일 수도 있고, 새로운 일상의 시작 혹은 아이와의 관계의 재정립일 수도 있다. 실패가 끝은 아니니까.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경우라면 끝일 수도 있지만)


아무것도 쓰지 못하는 삶, 어떠한 새로움도 없이 거죽만 남은 채 쳇바퀴를 도는 삶은 내가 가장 두려워했던 것이었다. 하지만 실제로 그렇게 끔찍하지는 않았다. 매일 하루씩 시간이 지나갔을 뿐이다. 버스에 잘못 올랐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뒤 스스로를 미워하고 자책하고, 허둥지둥 내릴 곳을 찾다가 모든 게 이미 늦었음을 깨닫고 체념해 버리듯이. 나는 두 발을 늘어뜨리고 창밖을 바라보았다.
(...) 
밤이 되면 그때껏 잠복해 있던 망상이 기척 없이 일어나 머릿속을 점령했다. 잠깐 졸다가도 누군가 떠드는 소리, 웃는 소리, 거칠게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소스라쳐 깼다. 죽어버려, 작지만 분명하게 속삭이는 어린아이의 목소리를 들었다. 나는 나를 결박하듯 독주를 마시고 고꾸라져 잠들었다. 결국 나는 더 이상 글을 쓸 수 없었다. 나는 친밀했던 누군가의 죽음처럼 그 사실을 서서히, 그러나 종내는 완전히 받아들였다. 밤이 되면 그때껏 잠복해 있던 망상이 기척 없이 일어나 머릿속을 점령했다. 잠깐 졸다가도 누군가 떠드는 소리, 웃는 소리, 거칠게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소스라쳐 깼다. 죽어버려, 작지만 분명하게 속삭이는 어린아이의 목소리를 들었다. 나는 나를 결박하듯 독주를 마시고 고꾸라져 잠들었다. 결국 나는 더 이상 글을 쓸 수 없었다. 나는 친밀했던 누군가의 죽음처럼 그 사실을 서서히, 그러나 종내는 완전히 받아들였다.

"술과 바닐라" 중에서


또한 그것은 육아 단계의 있는 여성들뿐만 아니라 "고양이 자세를 해주세요"의 주인공이나 "할로윈"처럼 결혼의 실패, 사랑(그러나 불륜)의 실패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사랑도, 자신도 모두 잃어버리게 되는. 하지만 그들은 다른 계기(요가, 가게 개업)를 통해 그것을 극복하려고 한다. 그러한 감정의 변화가 그리 길지 않은 작품들 내에서 보인다. 짧은 시간 내에 가능한 변화는 아니겠지만, 작품 내에 그러한 과정들이 더 압축되어 있다. 


내적 갈등이 좀 부족하다 싶다면, 독자의 감정을 이입하여 채워놓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이 작품들도 그 자체로 완성형이거나 그대로 따라가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마치 컬러링북처럼 독자가 채워 넣어야 하는 부분들이 많아 보인다. 그것이 문학작품이 아닌가.


웨딩홀은 장식을 다 뜯어내고 페인트칠까지 새로 해서 연회색의 멀끔한 건물이 되어 있었다. 요양원에 어울리는 외관이었다. 자연스레 이 건물에 들어올 노인들이 떠올랐다. 시간표에 따라 잠이 들고, 잠에서 깨고, 배식을 받아 밥을 먹고, 창밖을 보듯 벽을 보며 순서대로 죽음을 기다리는 노인들. 그것이 훗날 나의 모습이라고 해도 이상할 것은 없었다.
(...)
십오 년 전 나는 이곳에서 결혼했다. 아이를 임신한 채였고 곧 불행이 닥칠 것이라는 사실을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었다. 어쩌면 버진 로드를 걸어가며 불가에서 온기를 찾는 중년의 여자를 환상처럼 보았는지도 모른다.

"바다와 캥거루와 낙원의 밤" 중에서
기진은 끙, 소리를 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제야 노인의 얼굴이 제대로 보였다. 희미한 불빛 아래서도 노인에게 병색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살이 말라 골격만 남은 얼굴은 생기가 빠져나가 빛이 바래 있었다. 병원 복도에서, 입원실에서, 수도 없이 봤던 얼굴. 그녀 자신의 얼굴이었다. 기진은 그 노인이 다시 살아가겠다는 소망으로 유성우를 보러 왔으리라 짐작했다. 삶에서 내쳐진 자의 성마름과 초조함이 노인의 몸집에서, 말투에서 배어 나왔다.

"기진의 마음" 중에서


또한 작품 내에서 노인들의 모습도 많이 등장한다. "술과 바닐라"의 육아도우미, "참새 잡기"의 할머니, "바다와 캥거루와 낙원의 밤"의 시한부 암환자, "기진의 마음"에서 마주친 노인, "할로윈"에서의 할머니 등, 이들은 이 작품집을 아우르는 또 다른 주제를 보여주는 캐릭터들이다. 이들은 다른 형태의 실패한 모습을 보여주거나 혹은 삶의 여러 면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 노인들은 작품의 주인공들, 등장인물들과 동떨어져 있지 않으며 어쩌면 그들의 미래의 모습이 될 수도 있다. 그것은 결과일까 혹은 예정된 것일까. 작가가 '삶에서 내쳐진 자의 성마름과 초조함'이라고 표현한 그들의 모습이 그저 타인의 모습으로만 느껴지지 않는다.


삶이 항상 좋은 때만 있는 것도 아니고 항상 힘든 때만 있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고 했다. 그것은 희망을 가질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고, 현재에 대해 일희일비하지 말아야 할 이유이기도 하다.


그런 거 있잖아요. 이 시대의 정언명령은 ‘너 자신이 돼라’인데 ‘엄마 되기’는 그와 정반대라는 생각이 들어요. 엄마 되기는 내가 되면 안 돼요. 나 자신이 되는 순간 아이들이 대가를 치르게 되니까. 참 그런 게 아이러니하죠. 아이들은 자신이 마땅히 받아야 하는 사랑이 있는 것처럼 구는데, 그러기에 우리는 스스로를 사랑하기도 벅찬 불완전한 존재들이거든요. 그럼 아이에게 줄 사랑은 어디에 있나, 그 사랑 없음에 매일매일 고민했어요. 

정한아 작가의 대담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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