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이 반복되더라도 나는 같은 선택을 하게 될 것이다
It was the best of times,
it was the worst of times,
it was the age of wisdom,
it was the age of foolishness,
it was the epoch of belief,
it was the epoch of incredulity,
it was the season of Light,
it was the season of Darkness,
it was the spring of hope,
it was the winter of despair,
we had everything before us, we had nothing before us, we were all going direct to Heaven, we were all going direct the other way— in short, the period was so far like the present period that some of its noisiest authorities insisted on its being received, for good or for evil, in the superlative degree of comparison only.
찰스 디킨스 <두 도시 이야기> 중에서
1990년대를 생각하면 찰스 디킨스의 <두 도시 이야기> 첫머리가 떠오른다. 그만큼 내게도, 우리 사회에게도 1990년대는 최고의 시기이자 최악의 시기였으며, 지혜의 시기이자 어리석음의 시기였다. 그리고 믿음과 불신, 빛과 어둠, 희망과 절망이 공존하던 시기였다. 우리는 천국으로 가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모든 쪽으로 흩어지고 있었다.
3월 초부터 두 달 반에 걸쳐 나의 1990년대의 일들을 적어보았다. 1년씩 나누어 적었지만, 매 해마다 여러 가지 일들이 있었고 하고 싶은 말들이 많았다. 어쩌면 너무 난잡하게, 두서없이 적은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든다. 애초에 어떤 계획을 갖고 시작한 연재가 아니었기 때문에 그냥 사변에 지나지 않았다는 아쉬움도 남는다.
이는 나 개인의 기록이지만 당시 시대상도 같이 반영해 보고 싶었다. 개인이지만 결국엔 사회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PC 통신. 과학, 문학, 종교, 철학, 학생운동, 자원봉사, 사회에 대한 비판, 그리고 사랑...
고등학생 시절, 나는 자연과학과 문학을 좋아했던 소년이었으며 PC 통신을 통해 많은 사람들과의 교류를 시작했다. 대학생 때는 신문기자를 꿈꾸며 활동했고, 사회를 변화시키고 싶었다. 그러다 좌절감에 도피하다시피 해병대에 자원 입대했었고, 그곳에서도 나의 생활들은 순탄치 못했다. 군대 전역 후에는 어려운 가정 형편으로 내가 원하는 대로 할 수가 없었고, 복학 후에는 서로가 경쟁 상대가 된 현실에 적응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러한 가운데서 몇 번의 연애가 있었고, 모두 좋지 않은 결말을 맞이했다.
그러나 그 가운데는 좋았던 기억들과 안 좋았던 기억들이 함께 한다. 어느 때나 절대적으로 어느 한쪽만 있는 것은 아니니까. 다만 그 비율의 차이는 있을지라도.
나는 순진했었다. 내가 무언가를 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었다. 좁은 세상에 갇혀 있던 나는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는 비밀통로를 발견한 것 같았지만 그곳은 또 다른 좁은 세상이었다. 마치 영화 <큐브>에서 한 방에서 나가 다른 방으로 들어가듯 나는 그저 내 관심사에 따라 이리저리 옮겨 다닐 뿐이었고, 결국엔 제자리에 머무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10대의 고등학생이었던 나, 20대 초반의 대학생이었던 나도 당시엔 나 스스로가 뭔가 대단한 존재인 것처럼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그저 어리고 철이 없었을 따름이었다. 어찌 보면 한심스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나는 잘난 것도 없고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냥 막연했고 어중간했으며 다 어설펐다. 그게 나였다.
그럼에도 하고 싶은 것들이 많았고 그러기 위해 노력했다. 다 지나간 시간들이고 어쩌면 인생의 중요한 시기를 그렇게 보내버린 것이 낭비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러한 시기가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을 수 있는 것이다. 그 시간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나는 무엇이 되기를 바랐을까. 나의 꿈은, 나의 희망은 무엇이었을까. 나는 무엇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을까.
과학, 공학, 의학, 문학...
나는 현재 모 의대 전임교원이자 병원의 임상교수로서 살아가고 있다. 물론 의사는 아니다. 그 당시에 나의 미래가 이렇게 될 것이라는 것을 알았을까? 여러 갈래로 나뉘었던 분기점은 2005년에 들어서야 비로소 하나의 길로 합쳐지게 되었다. 애초 원했던 대로 물리학과를 지원했거나 혹은 생물학을 전공했더라도 어쩌면 이 길로 오게 되지 않았을까 싶다.
그러나 나는 이 길만이 전부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아직도 그 당시에 생각하던 것들에 대한 미련이 남아 있다. 비록 현실과의 타협은 있었지만, 나는 꿈을 포기하지 않았고 나의 삶도 아직 끝나지 않았다. 내겐 아직 더 많은 가능성의 날들이 남아 있다.
인생의 어느 일부분만을 떼어서 보는 것은 어쩌면 환원주의적 시각일 수도 있다. 그 이전과 이후, 그리고 현재의 나도 모두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때 내가 찾고 싶었던 삶의 의미, 삶의 목적은 여전히 찾고 있는 중이다. 비록 지금은 웅크린 채로, 소시민의 삶을 살고 있다 해도.
니체의 말처럼, 내가 인생을 반복해서 살더라도 나는 똑같은 선택과 시행착오를 반복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영원한 반복이 아니라 그것이 반복되는 과정에서 나는 깨달음을 얻을 것이다. 만약 기억할 수 있다면.
시간이 지나서야, 나이가 들어서야 알 수 있는 것들이 있다는 말을 인정한다. 더 훗날에는 40대 시절을 또 그리워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2001년 8월, 우리나라는 IMF에 대한 채무를 모두 갚고 공식적으로 IMF 관리체제를 벗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