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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칼란드리아 Jun 14. 2024

김기태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


김기태 작가를 알게 된 것은 올해 문학동네 젊은작가상 수상집을 통해서였다. 수상작인 <보편 교양>을 읽고 다소 특이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스토리 전개가 내가 예상했던 대로 흘러가지 않았던 점도 있지만 사회와 현실을 비꼬는 그 스킬이 예사롭지 않게 느껴졌다. 그러다가 마침 단편집이 나왔고, 독파로도 진행되기에 다 읽어 보았다.


플래그는 서랍 속에 접힌 채로 있다. 지금은 펼치지 않고도 떠올릴 수 있는 그 세계지도에서, 세상의 모든 바다는 분명 이어져 있다. 이제 나는 그 사실이 다소 무섭다. 바다를 등지고 아무리 멀리 가도, 반드시 세상 어떤 바다와 다시 마주치게 될 테니까. 그 불편한 예감에 시달릴 때마다 이상하게도 오래전 지하 소극장에서 본 오타쿠들이 떠오른다. 그 기모이한 오타쿠들의 열렬한 구호. 가치코이코죠. 진짜 사랑 고백. 좋아 좋아 정말 좋아 역시 좋아…… 그것도 사랑이라면, 나는 어쩐지 그 근시의 사랑이 조금 그립다.

<세상의 모든 바다> 중에서


이 단편집에는 총 아홉 편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다. 각기 길지 않은 작품들이었지만 그 속에 담겨 있는 메시지는 분명했고, 그 메시지에 적절한 소재를 SNS와 OTT, 그리고 각종 매체에서 끌어왔다. 그렇게 익숙한 듯하면서도 낯선 조합들은 가상현실을 만들어 냈지만, 그 속에 있는 인물들과 장치들은 우리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거나 혹은 익숙한 것들이다. 심지어 바로 올해(2024년)까지의 상황을 담아냈다는 점에서 더 현실감을 느끼게 했다.


하지만 리얼리티를 살리려고 차용한 그 많은 것들이 내게는 오히려 좀 과하다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마치 패러디가 난무하는 글들 같달까? 그러한 것이 과해질수록 메시지는 더 약해진다. 단순히 재미만을 추구할 것이었다면 아예 더 경쾌한 분위기로 갈 수도 있었을 것이다.


반면 그러한 소재들을 통해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밀고 나가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각 소설마다 중심이 되는 사건은 있지만 그 모든 것을 잘 버무려 내는 것이 작가의 역량이다. 그런 면에서 그는 수준급이라 할 수 있겠다.


존 레논의 〈Power To The People〉은 왜 〈Imagine〉처럼 올림픽 폐막식에서 울려퍼지며 세계인이 합창하는 클래식이 될 수 없었을까. 당장right on 인민에게 권력을power to the people 내놓으라는 요구보다는, 언젠가someday를 상상imagine해보라는 권유가 받아들이기 쉽긴 하다.

<로나, 우리의 별> 중에서
우리는 ‘모두’가 아니므로 당신의 하루를 모른다. 하지만 알고 싶다. 로나가 질문했듯, 만약 당신이 단지 생존하기 위해 그렇게나 일하는 데에 지쳤다면, 더 많은 삶을 사랑하고 창조하는 데에 쓰고 싶다면, 자신이 자유로운 인간인지 의심해본 적이 있다면, 당신은 우리다. 머지않은 창당 대회, 서로 얼굴을 알아보지 못할지라도 우리는 붉은 도브의 연주에 맞춰 같은 노래를 부를 것이다. 우리의 별, 로나가 예고한 대로 그 노래의 제목은 ‘우리는 가능하다’이다.

<로나, 우리의 별> 중에서


게다가 <보편 교양>,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 <팍스 아토미카> 같은 작품은 사회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다는 점에서 좀 더 주목할 만했다. 하지만 너무 힘을 실어서였을까, 결말이 좀 허탈할 정도였지만 그 모든 것은 진행형이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책의 제목이자 표제작인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의 '인터내셔널'의 의미가 그것 이리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아마 제목을 보고 대부분 '인터내셔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궁금했을 것이다. 대체로 다른 나라에 있는 사람들 간에 교류하는 얘기라고 짐작했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러한 생각을 완전히 뒤집었다. 


사회주의 역사를 잘 모르는 사람들의 경우에는 그것이 낯설거나 혹은 거부감이 들 지도 모르겠다. <보편 교양>에서 <자본론> 얘기가 나왔을 때도 마찬가지일 수도. 그러나 독자가 어떤 반응을 보이더라도 그것은 작가가 짊어져야 할 부채다.


또한 그러한 주제가 담고 있는 것은 '유대'와 '연대'일 것이다. 애초 '인터내셔널'이 추구했던 바가 그것이기 때문이다. 비록 그것이 공산주의국가들, 특히 소비에트에 의해 왜곡된 바는 있지만 그 기본 정신이 이 소설의 바탕에 흐르는 듯했다. 이는 <세상의 모든 바다>나 <로나, 우리의 별>에서도 나타나는 점이다. 


하늘이 맑았다. 눈밭은 하얬고 바다는 파랬다. 음식냄새를 피우고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날이었다. 미안한 일에 사과하고 고마운 일에 인사하기. 마주앉아 밥을 먹고 나란히 서서 사진 찍기. 그러려면 때맞춰 울리는 알람이 필요하다는 느낌. 한시에는 한 번, 열두시에는 열두 번의 종소리가 울리도록. 돌아가면 오른쪽 태엽을 감아보고 싶었다. 열두 바퀴든 열두 바퀴 반이든. 그때 잘못 셌거나 지금 잘못 셌거나. 아니면 그때는 열두 바퀴였는데 이제는 열두 바퀴 반이거나. 시계판 뒤에 무슨 장난과 음모가 있든 살아야 할 시간이 많았다. 어쩌면 서핑을 배울 수 있을 만큼 긴 시간이 있을지도 몰랐다. 왜 시도도 안 해봤을까. 나도 파도를 탈 수 있지. 그래, 나는 파도를 탈 수도 있어.

<태엽은 12와 1/2바퀴> 중에서


다부진 몸의 아이들이 바벨을 머리 위로 들어올리고 꼿꼿하게 섰다. 그리고 바벨을 바닥에 던져버렸다. 내려놓는다기보다는, 내던졌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역도에 내려놓는 동작은 존재하지 않았다. 들었다면 그것으로 끝이기 때문에 그대로 바닥에 버렸다.
송희는 들어보고 싶다기보다 버려보고 싶었다.

<무겁고 높은> 중에서


각 작품의 분위기에 따른 밝기의 순서를 매긴다면 어떨까. 어두운 부분도 분명 있지만 대체로는 그래도 희망적인 쪽으로 향하는 것이 보인다. 비록 그것이 주인공들이 의도한 방향과는 다를 지라고, 길은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줄 수도 있다. 그래서일까, 대부분의 이야기는 열린 결말이다. 그 뒤의 이야기가 어떻게 될지는 알 수 없고, 그 상상을 독자에게 맡긴다. 


작품들을 읽으며 독자는 등장인물들에게 감정을 이입할 수도 있을 것이고, 공감할 수도 있을 것이다. 혹은 '왜 저래?'라며 받아들이지 못할 수도 있다. 이는 개인마다 공감을 느끼는 포인트가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지만 독자는 이 이야기들을 통해 위안과 응원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우리 주변에 있을 수도 있는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 그들이 살아가는 이야기가 우리 자신과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우리 사회의 몇몇 단면들을 그대로 보여주는 작가의 관찰력과 문제의식, 통찰력에 감탄하게 될 수도 있겠다. 


그의 작품은 내가 좋아하는 단편소설류와는 거리가 있지만 소설에 제한이 있을까. 소설이 무엇을 얘기해야 하며 어떤 소재를 다루어야 하는가라는 생각이 들게 한 단편집이었다.


등단한 지 2년 남짓한 기간에 다수의 작품을 발표했고, 몇 번의 수상을 한 작가. 그리고 상당히 빠른 기간에 단편집이 나온 신인 작가. 비단 그의 이력 때문만은 아니지만, 그의 현재뿐만 아니라 미래에 대한 기대감을 갖게 한다. 


내가 연구한바, 결정적 주문은 최소한 다음 조건을 요구한다.

첫째, 내가 만든 나만의 주문이어야 한다.
둘째, 나만의 주문이지만 나에 관한 것만은 아니며, 나보다 더 크고 넓고 깊고 오래된 진실을 담고 있어야 한다.
셋째, 그것은 하나의 문장 또는 충분히 외울 수 있을 만한 개수의 문장들로 구성되어야 한다.

이런 주문을 발견한다면 나는 자유로워질 것이다. 자유가 무엇인지 의심할 필요도 없이 자유를 참칭하는 소음들로부터 자유로워질 것이다. 그것을 오르골의 자유라고 할 수도 있다. 나는 하나의 멜로디에 헌신하는 단순하고 평화로운 기계가 되고 싶었다.

<팍스 아토미카>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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