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언어 면역력을 키워주기 위해
며칠 전, 초등학교 6학년인 딸아이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아이가 쓰는 말에 깜짝 놀랐다. 특정 커뮤니티에서 비하의 의미를 담아 쓰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것이었다. 아이는 그게 무슨 의미인지 모르고 친구들이 쓰니까 그냥 재미로 따라 했겠지만, 아이가 그런 말을 쓰는 것을 들으니 다소 충격적이었다.
아이에게 '그 말은 나쁜 의미를 담고 있으니까 앞으로는 쓰지 말라'라고 했지만, 자세한 이야기까지 해주기는 어려웠다. 아이가 이해할 수 있게 설명해 주는 것이 필요했겠지만, 그랬더라도 과연 아이가 이해할 수 있었을까?
초등학교 6학년이라고 해도 아직은 미숙하고, 판단력이 부족하다. 어떤 말에 대해 그것이 옳고 그른 지를 스스로 판단하기 어려우며, 대체로는 몰라서 그럴 것이다. 주변의 아이들이 그렇게 말하니까, 그렇게 듣다가 자기도 모르게 언어 습관이 되고, 집에 와서도 무의식적으로 쓰게 되는 것이다.
요즘 초등학생이나 청소년 사이에서 유행하는 말들을 보면 거칠고 공격적인 표현이 많다. '아이들이 이런 말까지 하나' 싶지만, 현실이다. 장난처럼 하는 말속에는 상대방이나 특정인에 대한 비하, 외모 비판, 차별, 성별이나 집안 형편을 비꼬는 말들이 들어 있다. 장난이라고 해도 의도적, 악의적이기도 하다.
학교에서는 그러한 것도 '학교 폭력'의 범주에서 다루고, 아이들에게 그러한 '언어폭력'을 하지 말 것을 강조한다. 하지만 얼마나 효과가 있을까. 단지, 그 상태로 둘 수는 없기에 예방적 차원의 조치를 하지만 미흡하고, 문제가 발생하면 수습하면 미봉책이 될 수밖에 없다.
문득 아이를 처음 어린이집에 보냈을 때가 생각난다. 낯선 공간, 낯선 사람들 속에 아이를 보내는 것도 불안했지만, 아이들 사이에 감염병이 도는 것도 불안했었다. 아니나 다를까, 아이는 한동안 감기, 수족구, 눈병 등등 여러 가지 병에 걸렸고, 동네 병원을 계속 드나들었다. 아이가 자라면서 병원체에 노출되는 것은 불가피한 일이고, 면역력을 키워가는 과정이지만, 그럼에도 면역력이 약한 아이라 잔병치레는 쉽지 않았다. 지금도 학교 다니면서 종종 그런 일이 있기도 하다.
하지만 아이가 학교에 다니면서 옮아오는 것은 그런 감염병만이 아니다. 아이들 사이에서 사용되는 거친 표현, 욕설, 비하와 혐오의 말까지,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니 이제 그런 것이 일상적이 된 것 같다. 아이들이 사춘기에 접어들고, 집단 내에서 주도권을 잡기 위해 더 센 척하기 위해 더 그러기도 한다. 그런 아이들의 심리를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아이에 대한 걱정을 안 할 수가 없다.
그런 말들은 어디서 왔을까? 아이들이 접하는 윗세대에서 왔을 것이고, 손위 형제/자매가 있는 경우에는 그 영향을 받았을 수도 있다. 미디어나 온라인, 게임, SNS, 커뮤니티 등의 영향도 있다. 아이들은 이미 그러한 환경에 무방비로 노출된 상태이며, 강한 전염력으로 퍼져나간다. 좋은 것보다는 안 좋은 것이 더 빨리 전파되기도 하니까.
돌이켜보면 우리 세대(1970~80년대생)도 그리 다르지 않았다. 당시에도 지금보다 훨씬 거친 말들이 많았고, 차별적이고 무례한 표현이 아무렇지도 않게 오갔다. 다만 그때는 문제로 인식하지 못했을 뿐이다.
그렇다면 지금은 문제인가? 그렇다. 시대가 바뀌면서 과거에는 신경 쓰지 못했던 것들이 중요한 문제가 되었다. 더구나 단순한 욕설이 아니라 차별과 혐오, 비하의 표현이 많다는 것이 더 큰 문제인 것 같다.
아무래도 아이들의 수가 점점 줄어들고, 각 가정마다 자녀의 수가 적다 보니 부모들과 아이들이 이기적이 되어간다는 말은 하지 않겠다. 하지만, 과거보다 이해관계와 가치관의 충돌은 더 많아졌고, 경쟁이 심화되면서 경쟁자에 대한 공격이 심해지기도 했다.
'공정성'이라는 주관적 잣대 아래 '무임승차'에 대한 비판과 역차별론, 상대방과 약자에 대한 공격 등이 만연하며, 이것이 특정 커뮤니티의 정서적 바탕이 되기도 한다. 그러한 분위기가 초등학생들에게까지 내려온 것이다. 이것은 단순한 세대 차이를 넘어 분열과 갈등을 조장하는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다.
게다가 요즘에는 "가정교육이 문제"라는 말을 많이 한다. 가정교육이라는 것이 있나 싶을 정도다. 물론 아이를 키우는 입장에서 가정교육이 쉽지 않다는 점은 인정하지만, 그렇다고 손을 놓을 수 없다는 점은 분명하다. 또한, 많은 부모들이 부모의 역할을 중요하게 여기고, 부모가 아이를 키운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부모의 역할은 매우 제한적이다.
심리학자 주디스 리치 해리스는 자신의 저서인 『양육 가설』에서 "아이의 성격과 행동은 부모보다 ‘또래 집단’의 영향을 더 크게 받는다"라고 설명한다. 또 다른 책인 『개성의 탄생』에서도 "아이가 어떤 환경에 속해 있는지가 그 아이의 자아 형성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라고 말한다.
그의 책 두 권을 읽어본 바, 나는 해리스의 말에 대체로 동의하는 편이다. 다만 이것은 어린아이들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인간이 성장하는 전 과정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라 생각한다. 어릴 때의 경험이 중요하며, 더 큰 비중을 차지하기는 하지만.
생각해 보면 당연하다. 아이들은 대부분의 시간을 학교와 학원에서 보낸다. 그곳은 부모의 세계가 아닌, 아이들만의 생존 법칙이 지배하는 정글이다. 이 정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소속감'과 '서열'이다. 아이들은 부모에게 착한 아이로 보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친구들 사이에서 낙인찍히지 않고, '우리'라는 집단의 일원으로 인정받기 위해 행동하고 말한다.
그 과정에서 사용하는 말은 단순한 표현을 넘어서 유대감, 관계, 위상을 드러내는 수단이자 '생존 전략'이다. 또래가 집단을 구성하고, 집단 내 유대감을 위해 은어를 사용하거나 자신들만의 표현을 쓰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과거에도 그랬고, 아마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하지만, 아이들의 언어가 아이의 사고방식까지도 영향을 미친다. 그것이 옳고 그름을 떠나 그러한 말을 사용하게 됨으로써 생각도 영향을 받는다. 처음에는 무의식적이었다가, 점차 의식적이 될 수도 있다.
언어학의 관점에서, 언어가 사고 체계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이론이 여러 가지가 있지만, 공통적으로는 "언어는 단순히 이미 존재하는 현실을 반영하는 도구가 아니라 우리가 현실을 인식하고, 분류하고, 해석하며, 심지어 재구성하는 데 적극적으로 개입함으로써 우리의 사고방식을 규정하거나 최소한 강하게 영향을 미친다"라고 한다. 이렇듯 언어는 단순히 소통의 수단을 넘어 의식까지 지배한다.
그러한 사고는 다시 언어를 통해 표현된다. 그러므로 그 사람의 언행이 그 사람을 평가하는 기준이 되는 것이다.
그러면 부모로서 어떻게 해야 할까. 결론적으로는, 아이가 자기 언어를 돌아보고 선택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방식이어야 한다.
우리 부부는 아이가 어릴 때부터 바른말을 사용하도록 해왔다. 욕은 물론, 부적절한 표현이나 줄임말, 은어의 사용도 못하게 했고, 우리 부부 역시 그런 말들을 사용하지 않으려 했다. (물론, 나나 아내도 감정이 격해질 때는 간혹 그러지 못했다는 반성을 한다)
하지만 가정에서 그렇게 한다고 해도 딸아이가 많은 시간을 보내는 학교나 학원에서까지 관여하기는 불가능하다. 그것은 전적으로 아이에게 달린 일이다. 아이들 사이의 언어는 아이들 스스로가 감당해야 하는 것이자 책임져야 한다. 지금 당장이 아니더라도 그렇게 되도록 해야 한다.
아이가 자라며 겪는 수많은 감염병처럼, 나쁜 말도 전염된다. 감기처럼 퍼지고, 때로는 깊은 상처를 남긴다. 그것을 이겨내기 위한 면역력이 필요하다. 아이가 나쁜 말을 하지 않도록 하는 것, 그리고 그러한 말을 들었을 때도 잘 판단할 수 있도록 하고, 그러한 말에 휘둘리지 않도록 자신의 생각과 가치관을 지켜나갈 수 있도록 하는 것. 이것은 현재 뿐만 아니라 미래에도 아이의 생각의 중심을 잡아주는 역할을 할 것이다.
그 과정에서 부모의 지도가 백신이 될 수 있을 것이며,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하다. 부모의 역할이 제한적이라고 해도 부모의 무관심이 아이를 더 그릇되게 만들기 때문이다. 책임이라는 것은 뭐든 잘 돌아갈 때는 드러나지 않지만, 잘못되었을 때 나타난다. 쉽지는 않겠지만 아이의 '언어 면역력'은 부모와의 대화, 신뢰, 그리고 시간을 통해 만들어질 것이다. 부모로서의 책임이 무겁게 느껴진다. 그러나 부모니까 해야 하는 일이기도 하다.
첫머리의 사례의 경우, 아이가 그런 말을 하더라도 “그런 말은 안 좋은 의미니까 쓰지 마”로 끝내는 게 아니라 왜 쓰면 안 되는지 잘 설명해 줄 필요가 있으며, 이후에는 아이가 스스로 판단할 수 있도록 해 주어야 했다. 그럴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고 하더라도, 차후에는 일상적인 대화 속에서도 언어에 대한 감수성을 키울 수 있도록 해 주어야겠다. 그러한 문제는 아마 앞으로 좀 더 심각해지고, 중요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부모는 아이를 ‘만들어내는' 존재가 아니다. 아이는 이미 고유한 성격과 감각을 가진 존재로 태어난다. 아이가 성장하면서 부모의 역할도 바뀌며, 아이의 부모에 대한 의존도도 바뀐다. 그렇다 하더라도 부모는 아이 옆에서 길을 함께 걷고, 넘어지면 일으켜주고, 고민이 생기면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다. 이끄는 사람이 아니라 함께 뛰는 '페이스 메이커'다.
언어 역시 마찬가지다. 아이의 언어는 아이의 세계를 만들고, 점점 더 확장되어 나갈 것이다. 그 세계가 조금 더 따뜻하고 건강하기를 바란다면, 부모도 그 말 속에 함께 머무르며 길을 찾아야 한다. 아이가 어떤 말을 하더라도, 그 말의 뿌리를 함께 들여다보고, 더 나은 방향으로 바꿔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 그것이 부모의 역할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