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보다 앞선 건 용기였다
슬로베니아어 수업을 잠시 멈추기로 마음먹은 어느 날, 나는 다른 방식으로 다시 말을 걸어보기로 했다. 슬로베니아보다 먼저 조금은 더 익숙했던 언어, 영어로.
영어 회화 어플을 켜고, 외국인과 화면 너머로 마주 앉았다. 머릿속에서 흩어진 단어들을 더듬더듬 모아 문장처럼 말해보는 연습이 시작됐다.
여전히 나는 어떤 언어도 능숙하게 하지 못한다. 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머물기엔, 나에 대해 말할 수 없는 시간이 지속되고 있었다. 이건 말의 정확성 문제가 아니었다. 그보다는, 내 마음을 나답게 전해보고 싶은 간절한 바람에서 출발한 시도였다.
슬로베니아어 수업에서 함께했던 친구들과의 대화도 그 다짐의 배경이 됐다. 그녀들과는 늘 번역기에 의지해 대화했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나는 상대의 얼굴이 아닌, 내 손에 들린 화면을 먼저 보게 되었다.
무례하게 비치진 않을까, 상대가 내 침묵을 오해하진 않을까— 그 걱정이 마음속에 쌓여갔다. 그래서 최소한의 리액션이라도, 지금의 나로서 할 수 있는 말로 전하고 싶었다. 부족해도, 틀려도, 입을 다문 채 멈춰 있는 것보단 나았으니까.
슬로베니아어 수업 시간에 내가 가장 자주 했던 말은,
“It’s difficult.”
그건 진심이었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말이 그 한 줄 뿐이라는 사실은 작은 수치심처럼 남았다. 그런데 영어 회화 수업에서는 조금 달랐다. 한 문장을 말한 뒤, 화면 속 상대가 자연스럽게 되물었다.
“What about you?”
나는 따라 해 봤다. 말을 끝내는 대신 상대를 초대하는 표현이었다. 그 짧은 말 하나로, 나는 듣는 사람에서 함께 대화하는 사람이 되었다.
기억에 남는 또 하나의 순간이 있다. 연결 상태가 불안정했는지, 상대가 갑자기 손짓하며 외쳤다.
“Hang on!”
처음엔 그 말의 뜻을 정확히 몰랐지만, 표정과 제스처, 말의 흐름만으로 나는 그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잠깐 기다려 달라’는 뜻.
언어는, 반드시 알아듣지 않아도 느낌으로 닿는 경우가 있다는 걸 그날 처음 배웠다.
나는 천천히 말하는 법을 다시 배우는 중이었다. 단어보다 앞선 건 리듬이었고, 문법보다 선명했던 건 상대를 향한 의도였다. 한날, 수업이 끝난 뒤 나는 번역기를 켜지 않고 직접 말을 걸어보았다.
“You look tired today. Are you okay?”
그녀는 잠시 멈춰 나를 바라보다가 작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 말은 서툴렀지만 내 마음이 전해졌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건 화면을 통해 번역된 문장이 아니라, 내 입에서 시작된 말이었기 때문이다.
나중에야 알게 됐다. 그 말이, 문화에 따라선 실례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하지만 그 순간, 나는 걱정이 아닌 다정함을 전하고 싶었던 거였다. 말이란 뜻을 정확히 전하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걸 그제야 조금 알게 됐다. 입 밖으로 나오는 말들이 조금씩 내 마음을 따라가기 시작했다.
나는 다시, 말을 시작한다.
이번에는 의미보다 마음이 먼저 닿을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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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말은 서툴렀지만, 마음만은 조심스럽게 전하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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