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춘 나를, 내가 다독였다

무거운 수업, 졸아든 마음

by 슬로하라


수업은 갈수록 벅찼고, 내 안의 ‘나는 안 될 거야’라는 자기 회의도 함께 불어났다.

단어의 변형들, 시제의 변화, 무수한 어순의 차이들. 영어도, 슬로베니아어도 자유롭지 못한 상태에서 마무리 단계의 수업은 내게 감당하기 어려운 무게로 다가왔다. 게다가 슬로베니아어로만 이뤄지는 수업 안에서 나는 그저 눈만 깜빡였고, 입은 굳은 채, 손가락만 번역기를 기계처럼 반복했다. 그 반복은 마치 내 안의 언어와 연결되지 않은 채, 표면만을 따라가는 느낌이었다.


말하고 싶다는 욕구와 말할 수 없다는 좌절 사이에서 매 수업은 마치 고난을 기꺼이 맞으러 가는 수행처럼 느껴졌다. 마치 돌계단을 무릎으로 기어오르는 사람처럼.


두 달 동안 매 수업이 전투였다. 나는 매번 칠판과 싸우고, 선생님의 말에 두려워하고, 나를 지켜보는 사람들의 눈빛에 쪼그라들었다. 결국 ‘이건 아니다’는 한숨과 함께 나는 조용히, 빠져나왔다.


쉽게 내린 결정은 아니었다. 내가 이곳에 있는 이유, 이곳에서의 나의 존재감을 매시간 스스로에게 증명하고 싶었던 것도 있었기에. 하지만 버겁다는 감정은 어느새 지쳐 있다는 몸의 언어가 되어 있었다. 더는 외면할 수 없었다. 포기하기 위해 내려놓는 그 조각들이 어지럽게 흩어져 내 마음 곳곳을 건드렸다.


이 결정을 내리기까지 조심스러운 친절이 있었다. 친구라기엔 그 경계를 모르겠지만, 그렇다고 낯설지 않은 클래스메이트들. 그녀들은 매 수업마다 옆에서 내 애씀을 알아봐 주었고, 그 애씀을 거들기 위한 작은 배려와 눈빛을 소홀히 하지 않았다.

그들의 친절은 고맙기도 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나를 더 초라하게 만들었다. ‘나는 왜 자꾸 도움만 받아야 하는 사람처럼 굴까.’ 그게 미안하고, 또 부끄러웠다. 도움을 받아도, 도움을 다 받아내지 못하는 시간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더는, 벅참을 내색하지 않고 애써 따라가려는 걸음에서 내 자신을 조금 놓아주기로 했다.

멈췄다고 해서 배운 시간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되레 그 멈춤 안에서 나는 내 마음의 속도를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다시 걷기 위해, 나는 잠시 숨고르기였을 뿐이었다.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비워낸 자리에, 조용히 나를 다시 놓아두는 법을 배운 시간이었습니다.
‘슬로하라 언어일기’의 다음 기록도 함께해 주세요.

keyword
이전 15화말보다 먼저 건너간 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