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은 곧게, 삶은 곡선으로

사이프러스와 소나무가 남긴 여운

by 슬로하라


이곳에서 사시사철, 변함없이 마주치는 나무가 있다. 사이프러스.


계절에 따른 풍경의 변화가 거의 없는 나무. 하늘로 곧게 뻗은 모습은 푸름보다 먼저, 단호한 침묵을 닮은 인상이었다. 마치 유럽의 꼿꼿함을 대신 전해받은 듯하다.


산책길, 동네 입구, 교회 옆 언덕길, 길가 어디서든 묵묵히 서 있다. 단정한 기세로 풍경의 결을 다듬는다.


그래서인지 이곳 풍경이 다르게 느껴졌는지도 모르겠다.



언젠가, 이탈리아 토스카나의 언덕을 걸었다.


햇빛이 흘러내리던 언덕 위, 길게 이어진 사이프러스들. 광활한 밀밭 사이로 난 길이 그 나무들을 곧게 가르며 이어져 있었다. 그 길을 천천히 걸어냈다.


멀리서 볼 땐 느끼지 못했던, 그 곧음의 기운이 온몸으로 스며들었다.


바람은 뜨겁고, 땅은 숨을 죽이고 있었다.


마치 죽은 자가 걸어가는 길처럼. 그 길 끝에서, 다시 만나는 가족. 그리고 이어지는, 끝나지 않는 평온한 영원.


영화 ⟪글래디에이터⟫의 마지막 장면이 겹쳐졌다. 죽음 이후를 평화롭게 그려낸 장면, 그 길을 둘러싼 나무가 바로 사이프러스였다.



사이프러스는 '죽음을 하늘로 인도하는 나무'라고 한다. 곧게 뻗은 형상 때문일까, 하늘로 가는 영혼의 안내자웠다. 애도를 품은 채, 묵묵히 서 있었다.



그 모습에서 한국의 소나무가 떠올랐다.


산비탈과 묘역, 바람 부는 언덕에서 홀로 있어도 주변 풍경을 감싸 안으며 계절이 달라져도 건히 그 자리를 지켰다. 오래도록 눈에 담아 온, 익숙한 풍경이었다.


햇빛 아래서도, 바람 속에서도 변치 않았다.


한국의 묘지들은 소나무 숲과 함께 있었다. 자연 속으로 돌아가는 삶의 끝. 조용하지만, 따뜻한 생기를 남긴 풍경이었다.


소나무와 사이프러스, 서로 다른 땅에서 자라지만 치 않는 푸름으로 시간을 넘어선 기운을 품고 있었다. 죽음을 지키는 나무, 삶을 버티는 나무. 각자의 방식으로 영원을 담아내고 있었다.



소나무는 지금을 살아내는 자들의 태도를 닮았다.


계절을 통과하며 단단해지고, 삶의 굽이짐을 스스로 품어낸다.


죽음을 마주하는 방식이 이렇게 다르다는 걸, 나는 나무를 통해 알았다.


사이프러스가 영생을 기원하는 죽음의 서정을 품고 있다면, 소나무는 고독한 채로 절개와 삶을 지켜내는 의지 간직하고 있었다.


같은 하늘을 향해 자라지만, 품은 기운도, 향한 시선도 서로 다르게 느껴진다.



말없이 서 있는 나무 하나가, 삶과 죽음을 바라보는 내 마음을 천천히 다듬고 있었다.


그날 이후, 이방의 길 위에서 마주치는 사이프러스마다 나는 조용히 안부를 건넨다.


그리운 이가 잠든, 그 소나무 숲을 떠올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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