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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비안 Apr 10. 2024

'온전한 나'에 대해 말하는 것

덕업일치에 대하여, 일과 일상에 대하여, 경계의 무의미함에 대하여

처음 만나는 사람들이 많은 자리에서

'온전한 나'에 대해 이야기해본 적이 있는가?


내가 속한 어떤 것에 대해서도 특정한 카테고리로 설명하지 않고

'나' 라는 사람에 대해서만 얘기해본 적이 있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고 자부한다.

글쎄, 최근에는 조금 늘어나고 있을 수도 있겠지만 그게 쉽지는 않다고 정말 강하게 얘기할 수 있다.


방송에서는 보통 일반인이 자신을 소개할 때 몇살, 어디에 사는 누구입니다, 어떤 회사를 다니는 사람입니다, 

라고 소개하는데 이는 실제로 현실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를 하는 방법일텐데


직업이 없는 사람들은 어떻게 '나'를 소개할까

직업이 없는 -나-는 낯선 사람들에게 나를 어떻게 소개할까


대학원 생활을 수료도 하지 않고 중단한 후,

4년 반의 백수 생활 

- 그러니까 한달에 100만원도 벌지 않았던

- 내가 하기 싫은 일은 그냥 하지 않았던

- 요즘들어서는 슈카 형님이 그렇게 살지 않았나, 싶은


당시의 나는 어디서 새로운 누군가를 만나면 '도가 지나친 클덕이고, 오래된 고민이 담기고 영혼이 담긴 음악과 예술을 정말 좋아합니다.' 뭐 이런 식으로 말하고 다녔던 것 같다. 그에 대한 추가 물음으로 그러면 무슨 일 하세요? 라고 물어보면 일은 안 하고, 그때그때 하고 싶은 일, 들어오는 일 하며 부모님 등골 빼먹고 살아요, 라고 자조적으로 답했던 것 같은데.


드디어 나도 '나'를 어디에서 어떤 일을 하는 누구입니다, 라고 소개할 수 있게 되었다. 드디어!

엄마 아빠 감사합니다.


-


그래도 4년 반 동안 만났던 나의 많은 친구들은

오랜만에 만났더라도 꽤나 항상 진심으로 나에게 해줬던 얘기는 이랬다.


- 오빠는 오빠가 좋아하는게 뭔지 너무나 잘 알고 그걸 위해 살기 위한 생각만 하고 살잖아. 언젠가는 그 날이 올거고, 지금 하고 있다는 일이 모두 그걸 향한 시간들 아냐? 어디에서 일하며 한달에 얼마를 번다는 것 그 자체로는 현실을 살 수 있지만 꿈을 위해 사는 거랑은 거리가 멀어. 그리고 나도, 내 친구들 중에도 그런 사람들은 정말 많지 않아서 오히려 나는 오빠가 부러운데..


- 형이 보내왔고 지금 보내고 있는 시간들이 내가 봤을 땐 형 생각만큼 의미 없고 가치 없는게 아냐. 난 형만큼 뭔가를 정말 순수하게 좋아하고 그걸 위해 사는 사람이 아닌데, 그리고 그렇게 되고 싶더라도 어떻게 그걸 시작해야하는지 모르는데... 형은 그걸 너무 당연하게, 심지어 모든 구체적인 이야기들을 들어서 하고 있잖아? 형이 좋아하는 것들에 대해서 얘기하면 항상 우린 30분이고 2시간이고 그 얘기를 듣고 있는데, 딱히 그 지루할 것만 같은 남의 이야기가 형이 얘기할 때는 당신의 안광과 열정이 우리도 충분히 덥힐 수 있을만큼 강하게 나오는 걸


- 야, 한의사고 의사고 대기업이고. 다 필요 없는게... 우리는 그렇게 벌기 위해서 우리가 원하는게 뭔지 모르는 시간을 너무나 오래 보내왔어. 그 같은 시간을 너는 그걸 항상 곁에 두고 살았잖아. 그럼 우리가 모르더라도, 네가 알지? 그걸 아는 너를 친하게 두고 있는 우리는 너를 통해 그걸 알 수 있으니까. 그만큼이라도 네 곁에서 그런 걸 경험할 수 있다면 우리도 너를 통해서 자극받고 열정이 조금씩 생길 수 있을 것 같아. 그러니까 힘들긴 하겠지만 너의 모든 시간이 너의 당장의 실존을 보장해주지 않는다고 시무룩해할 필요 없어.


그런 많은 이야기들이 내 무지랭이 시간을 버티게 해주었고, 그렇게 나는 위의 친구들처럼 나를 소개할 수 있는 시간을 지금 보내고 있다. 하지만 조금 더 덧붙이자면,


나는 클래식 음악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방송국 피디입니다. 제 취미요? 클래식 음악을 듣는걸 기본으로 지난 모든 시대의 예술과 매체에 관심이 너무 많은, 그래서 출근해도 일상 같고, 퇴근해도 일하고 있는 것 같지만 모든 시간이 일하는 것 같지도 않고, 쉬고 있는 것 같지도 않고. 현대의 가치로는 설명하기 힘든 삶을 너무나 즐기는 사람입니다.


온전한 나로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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