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베이, 점심 <8>] 흔하디흔하지만 면발과 대만특유 조림 맛이 일품
특별할 것도 없는 음식이죠. 볶음면 말입니다. 볶음면은 사실 어느 나라나 있고 만들기가 간단합니다. 면을 볶으면 ‘볶음면’ 아니겠습니까. 요리에 일가견이 있는 분들이라면 무식한 얘기한다고 할법한 소견이지만 요리 문외한에게는 그렇게 보이는 건 어쩔 수 없습니다.
어느 지역, 어느 나라와 마찬가지로 대만에도 다양한 볶음면이 있습니다. 중화문화권에는 면 요리가 발달해 있죠. 국물이 아니라 건면 형태로 해서 볶는 음식 또한 지방마다 면 두께와 양념 등에 다양한 변조를 해가며 자기만의 색깔을 입힌 면요리를 내놓고 있습니다. 물론 결국에는 모두 볶음면의 테두리 안에 포함할 수 있지만요.
이러한 볶음면 음식이 직장인들에게, 특히 점심시간에 인기 있는 이유는 사실 맛도 맛이지만 그 ‘심플함’에 있을 듯합니다. 1시간 정도의 점심시간에 밥도 먹고 커피도 마시고 가볍게 산책도 해야 하는데 밥 먹는 시간만으로 1시간을 고스란히 투자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주문하고 5~10분 만에 나오는 음식이라면 점심식사로 너무나 훌륭하죠.
볶음면은 그래서 대만인들에게, 대만 직장인들에게 인기 있는 음식 가운데 하나입니다. 시간을 아껴 간단히 먹을 수도 있고 다양한 변주가 가능하니 입맛대로 골라 먹을 수도 있고요. 게다가 포장하기도 편합니다. 국물이 없으니 포장해서 사무실로 가져와 먹을 수도 있습니다. 사무실이 밀집해 있는 지역이라면 볶음면 식당도 부지기수라 기다리지 않고 바로 먹을 수도 있죠.
그래서 이날 볶음면을 선택했습니다. 정확히 말씀드리면 그래서 선택 했는 줄 알았습니다. 대만에 부임해서 사무실에 출근한 첫 날 점심을 말씀드린 겁니다. 업무 인수인계도 받고 사무실 책상도 정리하면서 오전 시간이 훌쩍 지나갔습니다. 오후에도 계속 분주할 수밖에 없어 점심을 후딱 먹어야 했죠.
첫날 무얼 알겠습니까. 동료들이 이끄는 대로 주변 식당으로 갔습니다. 볶음면집이라 하더라구요. 사무실에서 걸어서 10분도 걸리지 않았습니다. 3년전 2월이었는데 올해 2월 오늘처럼 낮기온이 20도는 됐던 것 같았습니다. 설날 이틀 전인 오늘 대만은 햇살 따사롭고 온도는 25도에 달하고 있네요.
식당에 도착해 자리에 앉아 자연스럽게 동료들이 추천하는 음식으로 정했습니다. 메뉴판에 여러 음식이 있었지만 볶음면 먹어보라 합니다. 그걸로 주문했습니다. 다만 그게 신기한 게 메뉴에 적혀 있는 볶음면은 이름이 그냥 정말 볶음면(炒麵)이었습니다. 앞뒤로 어떤 수식어가 없네요. 예를 들어 계란볶음면, 야채볶음면, 광둥식 볶음면 등이 아니라 그냥 정말 ‘볶음면’만 적혀 있습니다.
7분 안짝으로 나온 걸로 기억합니다. 역시 빠르네요. 굵은 면이었습니다. 돼지고기와 양배추, 계란, 파 등을 함께 볶았습니다. 간장 베이스인지 전반적으로 옅은 갈색을 띄고 있었고요.
향이 좋았습니다. 고소하기도 하고 간장 냄새가 은근히 찐했습니다. 먹기 전부터 침이 고이더라고요. 젓가락으로 한 입 집어서 먹었습니다. 면발이 탱탱합니다. 쫄깃쫄깃한 게, 식감을 중시하는 저로서는 맛나다는 표현을 하지 않을 수 없더라고요. 양배추와 파도 양념이 배어 있으면서도 여전히 아삭합니다. 뜨거운 화력을 받은 웍을 이용해 잘 볶았습니다.
어느 정도 먹은 뒤에는 테이블 위에 놓여 있는 매운 양념 소스를 두 숟갈 정도 넣어 먹어 보라 합니다. 꽤 매우니 많이는 말고요. 알고 보니 고추기름 소스입니다. 이 또한 절묘합니다. 간장 양념과 매운 양념이 섞이며 두 가지 음식을 먹은 기분입니다. 매콤함을 좋아하는 저로서는 금상첨화네요.
볶음면을 먹는 중에 함께 시킨 음식이 나왔습니다. 간장조림반찬(滷味小菜)이라 표현해야 할까요. 대만 음식에는 간장조림 음식이 꽤 많습니다. 이 조림 방식을 루웨이(滷味)라 표현하는데요. 이전에 소개했던 루러우판의 ‘루’와 같은 의미입니다. 간장육수 맛인 것이죠.
말린 두부, 두부피, 삶은 계란, 미역줄기를 루웨이 방식으로 졸여서 내오는 음식입니다. 짭쪼름한 간장 베이스가 배어있어서 향긋하면서도 각각의 식재로 식감은 그대로 살아 있습니다. 말린 두부를 씹으면 두부 안에 스며들어 있는 육수가 입안에 넘칩니다. 훌륭합니다. 거기다 돼지귀를 추가해 내왔습니다. 오돌뼈 같은 느낌에 고소합니다.
이 식당의 볶음면과 간장조림모듬은 시간이 넉넉지 않은 직장인들의 점심으로 한 끼 때우는 음식이 아니라 찾아 먹으러 올 정도의 음식이었네요. 출근 첫날 점심으로는 딱 맞는 식사였습니다. 이후 종종 찾아가서 먹곤 합니다.
다만 이 식당은, 외관은 그리 번듯하진 않습니다. 대만에 처음 온 사람들에게 대만 음식을 맛보이려고 데리고 올 외관 모습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런 모습에 개의치 않는 사람들이라면 대만 로컬 음식 체험 차원에서 충분히 추천할 만합니다.
겉모습은 허름하지만 이 식당의 위치를 생각하면 사실 이 식당 자리값은 무시못할 것 같습니다. 대만의 대표 고층빌딩들이 모여 있는 신이구에 있고, 101 빌딩에서 10분밖에 떨어져 있지 않으니까요.
그래서 궁금했습니다. 어떻게 이 지역에 이렇게 허름하지만 맛집이 있나 해서요. 찾아보니 사연이 기막힙니다.
식당이름은 ‘남촌식당’(小凱悅南村小吃店)인데요. 1976년 생겼으니 올해로 50년이나 됐네요. 원래 위치는 지금의 자리가 아니라 200미터 정도 큰길가 쪽의 ‘군인가족촌’에 위치해 있었다고 합니다. 실은 남촌식당의 구글 리뷰를 보면 ‘군인가족촌의 전통적인 맛이 살아 있다’는 표현이 심심치 않게 나왔습니다. 그 연유가 여기에 있었네요.
그 군인가족촌 이름이 스스남촌(四四南村)입니다. 타이베이의 첫 번째 군인가족촌이었답니다. 그 가족촌이 2000년대 초반 재개발로 사라지면서 남촌식당은 현재의 자리로 옮긴 것이죠.
군인가족촌이란 1940년대 국공내전에서 국민당 정부가 패해 국부천대하면서 대만으로 이주한 군인과 그 가족 등이 모여 살던 마을입니다. 당시 약 200만명의 대륙 본토인들이 넘어 왔는데 외성인이라 칭하죠. 이들이 모여 살면서 마을을 형성한 겁니다.
신기했습니다. 우리나라에도 ‘국가유공자 자활용사촌’이란 마을 단위가 있습니다. 중상이자 20명 이상이 마을 단위를 형성해 거주하면서 복지공장을 운영하면 정부에서는 관련 법령 등에 따라 지원을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정부 부처에서 물품 구매할 때 우선적으로 자활용사촌 물품 구매하는 형식입니다. 전쟁을 경험한 국가들은 이렇게 비슷한 제도들이 있네요.
볶음면 얘기를 하다 군인가족촌까지 이야기가 확장됐습니다. 대만의 근현대 역사를 함께 하는 식당의 음식이라 하니 괜히 한 번 더 눈길이 가긴 합니다. 하여간 타이베이에서 거주하면서 종종 먹는 음식에 볶음면도 추가해 얘기해 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