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딸아이 일곱 살 (2)]
그러고 보니 4월의 베이징은 겪어본 적이 없습니다. 출장이건 여행이건 연수건 십여 차례 와 봤지만 3~5월에 온 적은 없었습니다. 그러기에 4월의 베이징은 낯섭니다.
다들 그렇게 표현하더라고요. 4월에는 눈이 내린다고, ‘8월의 크리스마스’가 아니라 4월의 크리스마스라고. 대략 감은 왔지만 그게 어떤 느낌일까 내심 궁금했는데 안에서만 바라본다면 정말 ‘환상적’이라 표현해도 크게 어긋나지는 않았습니다.
4월 초 주말 오전, 집 거실 창문으로 따스한 햇살이 넘실대는데 순간 ‘이게 머지?’ 싶었습니다. 살고 있는 아파트가 25층인데 하얀색 가루 같은 것이 창문 너머로 요동칩니다. 아래로 폴폴 떨어지다가 바람 따라 위로 급하게 날아올라갑니다. 바람이 강한 베이징이다 보니 그 하얀 솜들은 햇살 받으며 너울댑니다. 건너편 아파트 동이 뚜렷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앞을 가립니다.
안에서 바라만 보면 말 그대로 ‘몽환적’이네요. 가만히 보고 있으면 하이얀 눈이 내리는 모습입니다. 감상에 젖게 만들 정도로 예쁩니다. 딸아이와 함께 오랫동안 눈바라기했습니다. 딸아이 눈에도 상당히 인상적이었나 봅니다. “꽃가루가 날려서 이 세상에 꽃냄새 나겠”답니다. 버들솜 만큼이나 그 표현이 예쁘네요.
우리말로 표현하자면 버들솜인데 그 날라 다니는 모습이 영락없이 눈내리는 모습입니다. 버드나무 꽃가루입니다. 물론 꼭 버드나무만은 아니고요. 백양나무와 버드나무가 모두 그런 꽃가루를 날립니다. 양서(楊絮)와 유서(柳絮)라 일컫습니다.
이게 안에서 바라만 보면 시적이지만 밖에서 직접 맞닿뜨리면 곤혹스럽습니다. 꽃냄새 나는 아름다운 풍광이면 더 없이 좋을 테지만 현실은 그렇진 않죠. 그렇잖아도 미세먼지와 황사에 적잖이 답답해 하는데 거기다 버들솜까지 앞을 가리니 말입니다. 베이징 사람들은 이골이 낫겠지만 숨쉬기가 저어할 정도여서 심할 때는 마스크를 써야 합니다. 알레르기나 비염이 있는 사람이라면 돌아다니기 두려울 것이고요. 사무실에서도 구석구석에는 버들솜이 한무더기로 뭉쳐 있는 모습을 심심찮게 볼 수 있습니다.
중국 다른 지역도 마찬가지인지는 모르겠으나 언론을 보면 상당히 많은 도시가 마찬가지 인 것 같네요. 언제부터 이렇게 베이징 등 주요 도시에 버들솜이 4월을 특징짓게 됐는지 모르겠으나 오래전 시구에도 등장하는 걸 보니 역사적으로 꽤 오래된 듯합니다. 부러 찾아보니 소동파의 ‘어부사수’(漁父四首)에도 버들솜이라는 표현이 등장하고 송대 구양수의 시에도 버들솜이 등장합니다.
거기다 건조한 베이징 특성상 더 극성일 수밖에 없습니다. 비가 오거나 습기를 머금고 있으면 버들솜이 덜 날라다닐텐데 2월부터 지금까지 비다운 비를 본 적이 아직껏 없습니다. 새벽녘에 10여분 아스팔트에 빗물 흔적을 살짝 남기는 정도에 불과합니다. 그마저 다 말라 출근할 때는 비가 온 건지 아니면 나무에 물을 주느라 호스로 물을 뿌린 흔적인지 분간이 안될 정도죠. 건조하다 보니 웬만한 공원이나 아파트 단지, 가로수 등에는 인위적으로 물을 공급해 줄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도 올해는 예년에 비해 그리 심하지 않은 정도라네요. 언론에 따르면 중국 정부는 버들솜이 피지 않는 주사를 상당수의 버드나무에 놓았습니다. 내년에는 더 많은 그루의 버드나무에 주사를 놓을 계획이고요. 베이징 4월을 특징짓는 버들솜은 어쩌면 과거 언론 자료에서만 찾아보는 시절이 올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