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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HGXING May 18. 2020

이 팔은 내거야.

[2016년 딸아이 일곱 살 (1)]

서울에서는 바닥에 이불을 깔고 자는 생활이었습니다. 침대에선 딸아이와 와이프가 자고 저는 침대 아래 바닥에 요를 펴고 자는 생활을 했죠. 침대에서 3명이 같이 잠들기에는 비좁았습니다. 베이징에 와서는 다시 침대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세 들어간 집 안방에 놓여 있는 침대는 3명이 누워도 충분할 만큼 넉넉했습니다. 


딸아이가 낯설어했습니다. 잠들 때 엄마가 아닌 ‘타인’이 옆에 있다는 게 이 녀석에게는 처음이니까요. 딸내미는 태어난 뒤 지금까지 7년여 동안 잠은 언제나 엄마와 함께였습니다. 아빠인 저와의 관계가 어느 부녀 관계보다도 돈독했지만(전 그리 생각하고 있어요) 잠자리만큼은 아빠는 침대 아래에서 자는 사람이었습니다.   


이 ‘벽’을 깨고 싶어 육아휴직하던 기간에 딸아이와 단둘이만 여행을 가려고도 했습니다. 인형사주겠다고 꼬드겨 제주도 ‘밀월여행’을 계획했습니다. 이 녀석도 주저주저하며 넘어왔지만 막판에는 결국 와이프도 함께 갔죠. 그 벽이 무어라고 가족 여행의 소중한 시간을 버릴 정도는 아니라 여겼기에. 내심 기대반 두려움반이기도 했습니다. 딸아이와의 새로운 추억을 만들 수도 있겠다 싶으면서도 와이프 없이 단둘이 갈 수 있을까, 잘 챙길 수 있을까 걱정도 되었으니까요. 아내도 둘만을 보내고 오랜만에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 데 대한 기대도 없지 않았지만 가족 ‘합일체’ 여행이 더 소중하다고 마음을 돌렸습니다. 


그랬던 녀석이기에 베이징에서 3인 침대 생활은 익숙지 않을 수밖에요. 처음엔 엄마 옆에 껌딱지가 되어 잤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제 옆으로 다가오더니 어느 순간부터는 제 한쪽 팔을 꼭 부여잡고 잠들곤 합니다. 그러곤 “아빠 이 팔은 내거야”랍니다.


아마 베이징에서 생활이 낯설었을 터입니다. 딸아이에게도 베이징으로의 변화는 적지 않은 스트레스일 것이고요. 첫 이사였고, 그 이사도 한국이 아닌 해외로의 이사였습니다. 말도 안 통하죠. 게다가 8살(당시에는 만 나이가 아니라 연나이로 기록했습니다)이 된 만큼 첫 학교 생활도 시작됐지만 유치원 친구들과 달리 전혀 모르는 친구들뿐입니다. 한국인이 학교에 많긴 하지만 기본 언어는 영어다 보니 익숙해지까지 시간이 많이 걸릴 겁니다. “학교가기 싫어”가 입에 붙어 있습니다. 거기다 아침마다 7시 50분이면 학교 셔틀버스를 타야 합니다. 그러려면 아침에 6시 반에는 일어나야 하니 저녁에는 가급적 8시 반에는 잠들어야 합니다. 


그러다 보니 자신에게 가장 익숙한 두 사람, 엄마 아빠가 어찌 안 좋겠습니까. 그나마 아빠는 집에 일찍 가는 날이라 하더라도 집에 도착하면 8시 가까입니다. 근무시간이 아침 8시 반에서 저녁 5시 반이지만 일찍 나온다 하더라도 차가 너무 많이 막히고 회사에서 집까지 거리가 있다 보니 아이가 평일에 아빠와 놀 수 있는 시간은 고작 1시간 내욉니다. 아빠가 저녁도 먹고 씻는 시간도 있어야 하니 실질적으로 함께 노는 시간은 더 줄어들죠.         


가급적 잠들기 전에는 책을 읽어줍니다. 2~3권 읽어주다 보면 아이 눈에는 졸음이 한 가득입니다. 아빠 엄마는 잘 자라 얘기합니다. 그럼 불 끄고 옆에 있어주면 스르르 잠듭니다. 제 팔 꽉 잡고서. 부여잡은 아빠 팔이 이 녀석에게는 어떤 의미 어떤 느낌일까요. 글쎄, 잠들 때 베개나 인형을 껴안고 자는 것처럼 아빠 팔은 그 베개나 인형 대체물일까요. 불안한 마음을 다스려주는 일종의 ‘부적’일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타지에서 익숙한 것이 없는 곳에서 내가 의지할 무언가 있다는 심리적 안정감을 주는 ‘물건’으로 다가올 수도 있겠다 싶네요. 아빠와의 연결고리를 갖고 싶은, 아빠와의 놀이를 갈구하는 아이에게 아빠 팔은 그 연결고리의 상징일 수도 있을 것이고요. 또는 아빠 팔을 잡는 그 자체가 딸아이에게는 아빠와 노는 또다른 놀이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을 것입니다.


어느 순간이면 아마 아이는 아빠 팔을 부여잡지 않고, 찾지 않고 잠들 겁니다. 아니면 이제 혼자 자기 방에서 잠들고 싶어할 것이고요. 그 순간이면 이제 이 녀석이 베이징에 적응해 가는구나, 커가고 있구나 하고 기뻐할만한 순간이겠죠. 그래도 마음 한 구석에는 쓸쓸함이 자리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제 아빠 엄마의 돌봄이, 품안이 필요하지 않는 시간이 다가오는구나 할 수 있기에.


딸아이가 일어났습니다. 글 그만 쓰고 뽀뽀하러 가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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