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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HGXING Oct 27. 2024

“아빠, 이 책이 재밌어?”

[2017년 딸아이 여덟 살 (3)]

신기한가봅니다. 아빠가 자기 책을 붙잡고 읽고 있는 게 말이죠. 계속 읽고 있나 지켜보기도 하고 혼자 신나서 다음 책을 빼서 건네주고는 주인공 이름을 재잘거립니다.


"아빠, 이 요정들 예쁘지? 무지개 요정들이야. 레이첼하고 커스티가 루비, 엠버, 사프런, 펀 이런 빨강, 오렌지, 노랑, 그린 무지개 요정들을 구해주는 거다. 정말 재밌어. 난 다 읽었다. 한번 읽어볼래? 읽어봐!"


며칠 전이었습니다. 딸아이의 이 말에 넘어간 게. 수 십 권이 한 질로 돼 있는 이야기책 RAINBOW magic을 손에서 놓지 않고 시간 날 때마다 읽는 모습이 기특했습니다. "그래? 그렇게 재밌어?" 화답하곤 아이가 건네준 1권을 옆에 앉아 부러 꼼꼼히 읽었습니다. 



근데 이게 '사단'이었습니다. 이후 새로운 일과가 생겼습니다. 


퇴근하고 돌아온 다음날 아빠가 집에 들어오자마자 이 녀석은 바빠집니다. 부리나케 자기 방에 들어가 2권을 꺼내 와서는 "아빠, 자 여기" 이럽니다. 읽으란 소리죠. 아빠가 자기 책 읽는 모습을 보고 싶기도 하고, 아빠가 '읽고 싶어'하니 먼저 알아서 건네주는 '착한' 마음씹니다. 자기도 책을 꺼내와서 저와 나란히 앉아서는 책에 열중입니다.


다음날도 3권 Saffron the Yellow fairy는 제 차지였습니다. 딸아이가 책 읽는 모습을 보고 싶어하는데 실망시키고 싶지 않아 시간 내어 읽었습니다. 아니 읽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와이프는 이런 딸네미와 아빠의 케미가 재밌나봅니다. 그러면서도 짐짓 멀 그리 꼼꼼이 읽냐고 핀잔이죠. 대충 읽으랍니다. 이 녀석이 안보니 이제 다른 일 하라네요. 


매일 딸아이 동화책 읽는 게 과업인 기분이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대충 읽긴 또 싫었습니다. 아이가 어떤 책을 재밌어하는지 궁금하기도 했고요. 게다가 나중에 딸내미가 책 내용을 물어보면 최소한 엠버가 조개껍질에서 구해줬고 사프런은 벌통에 갖혀 있었다는 정도는 자연스럽게 맞장구쳐줄 수는 있어야 하지 않나요. 아이와 얘깃거리 하나 더 생기는 것도 좋았고요.


아무튼 딸아이는 신났습니다. 자기가 재밌어 하는 책을 아빠랑 같이 공유할 수 있고 얘기 나눌 수 있는 것이 기분 좋은가 봅니다. 이 녀석도 이제 그 기분을 아는 거죠. 그렇지 않은가요. 자기가 느끼는 감정과 생각을 다른 친한 사람과 함께 나누고 싶은 마음이 있지 않은가요?


하여간 아빠가 자기 책을 읽는 게 신기하기는 한가 봅니다. 친구들에게 다 말하고 다닙니다. "우리 아빠는 레인보우 매직 책 읽는다! 재미있대!" 어제는 반 친구들과 동네 친구들에게 얘기했다네요. 오늘은 피아노 선생님께 "우리 아빠가 레인보우 매직 책 읽어요"라 했답니다. 


이 녀석이 이제는 몰래 아빠 가방에 다음 책을 넣어놓습니다. 저녁에 늦으면 회사에서 쉬는 시간에 읽으라네요. 이것 참. 딸아이에게는 이제 일종의 놀이가 된 듯합니다. 숨기기 찾기 놀이처럼 말이죠. 그보다는 자기 책 읽는 아빠 독려 차원인가요.


'좋은 의도'가 '곤욕'이 되지 않게 이제 슬슬 출구전략을 고민해야겠습니다. 'M, 이제 각자 자기 책 읽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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