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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HGXING Oct 27. 2024

“아빠, 택시는 불렀어?”

[2017년 딸아이 여덟 살 (2)]

“으앙, 아빠 같이 가..” 결국 울음이네요. 눈물도 뚝뚝입니다. 


아침 출근길에 부러 목소리 톤을 경쾌하게 높였습니다. “M! 잘 다녀오고, 엄마 손 꼭 잡고 다니고, 재미나게 지내다 와!” 하지만 며칠 전부터 이 시간을 생각하면 “눈물 날 거 같아..”라며 회피하던 딸아이 녀석은 결국 울음 한 바가집니다. 


오늘은 이 녀석이 엄마와 함께 여행 가는 날입니다. 영국에 있는 마리안 할머니 댁에서 여름 방학을 보낼 예정입니다. 지난해 여름에도 갔지만 올해는 좀 더 길게 갑니다. 2주 정도는 런던에서 지내고 일주일은 또 스코틀랜드 여행도 다녀온다네요. 솔리헐 마리안네 집에서는 한 달 정도 있을 듯싶습니다. 물론 딸아이 말대로 저도 가면 좋겠지만 직장 다니는 사람이 어디 그게 쉬운 일인가요.


울음을 달래며 꼭 껴안아 주고 부러 웃음 짓습니다. “뭘 울어?! 한 달 반 후면 볼 텐데! 아빠 늦었어, 먼저 나간다.” 신발을 부랴부랴 신고 있자 이 녀석이 다가옵니다. “아빠, 택시는 불렀어?” 나도 아내도 빵 터졌습니다. 아이도 어떤 분위긴지 아는 듯 울다가 웃을 때 짓곤 하는, 입술 삐죽, 장난기 가득 눈매가 얼굴 가득이네요.      

이유인 즉 이렇습니다. 


오전 비행기고 짐도 많으니 공항까지 데려다 주겠다 했지만 아내는 계속 마다했습니다. 일부러 반차 쓸 필요 없이 휴가 아껴뒀다가 나중에 여행가자네요. 대신 택시나 예약해 달라 고집입니다. 그래서 전날부터 스마트폰 앱, ‘디디추싱’으로 오전 8시 택시를 예약하려 했건만, 잘 잡히지가 않았습니다. 아침에 일어나서도 불렀는데 또 실패. 아빠랑 떨어지기 싫어 울던 아이지만, 아빠랑 떨어진다고 이틀 연속 같이 잠들던 아이지만, 한 편으로는 택시가 안와서 공항 못 갈까봐 걱정되었던 겝니다. 울면서도 여행은 가고 싶어하는 녀석의 마음이 “아빠, 택시는 불렀어?” 한 마디에 고스란히 담겨 있기에 웃음 짓지 않을 도리가 없습니다.


많이 컸습니다. 딸아이 말입니다. 그래 이제 이 녀석도 여행이, 영국이, 외국이 무엇인지 어떤 곳인지 어슴푸레라도 아는 나이가 됐습니다. 예전에는 엄마가 가니까 가는 곳이었지만 이제는 언제 가나 먼저 기다립니다. 아내도 느끼지만 제가 봐도 조금씩 자기만의 여행 방식, 즐기는 방식, 보는 방식을 만들어 가는 듯싶습니다. 


마음이 간사하죠. 이렇게 자라는 아이를 보고 있으면 진짜 어떤 어린이로, 어떤 청년으로 커나갈지 한없이 궁금하고 기대됩니다. 그러면서 벌써부터 와이프와는 스산한 대화를 나누곤 합니다. 이제 우리 아이가 온전히 자기 뜻대로 살아가면서 우리 품을 떠날 때가 내일인 양 쓸쓸해집니다. 


우리네 엄마 아빠는 어떠셨을까 싶네요. 제가 자라나면서 제 방이 생기고, 저만의 공간을 찾아가고, 혼자서 몇 달간 여행 떠나고, 공부하건, 놀건, 일하건 아침 일찍 나가서는 밤늦게 들어오고, 결혼해서 신혼집으로 이사 가고, 유학 가겠다고 나서고, 직장 때문에 지방에 머물고, 직장 때문에 해외에 거주하고.. 그럴 때마다 어머니 아버지 마음은 어떠셨을까 싶습니다. 지금은 혼자 계시는 어머니 마음은 어떠실까 싶습니다. 익숙해지셔서, 굳은살처럼 마음도 무뎌지려나요. 


마음이 또 간사합니다. 여행 가니 정말 한동안 못 볼 생각하니 마음이 콩닥거립니다. 한동안 수시로 뽀보해 댔습니다. 뽀뽀를 저장이라도 해서 매일 하나씩 풀어내려는 듯. 살을 부벼댔습니다. 부벼댄 느낌을 매일 하나씩 끄집어 낼 수라도 있다는 듯.


그러면서도 한 켠에서는 앞으로 한 달 반이 어떤 시간으로 채워질지 간질거리는 게 쓱 회심의 미소 뒤에 감춰지지 않습니다. 여느 40대 아빠들과 마찬가지로 한 달 반이라는 ‘자유’의 시간을 어떻게 한 올 한 올 아껴 써야 할지 벌써부터 상상의 나랩니다. 


마음은 이래나 저래나 간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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