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딸아이 일곱 살 (3)]
크리스마스를 홀로 보내는 것도 처음인 듯싶습니다. 어릴 때야 가족과 함께 보냈고 대학생 때는 친구들과 보냈을 것이며 결혼하고 나서는 와이프와 딸아이와 보냈습니다. 올해는 민선이 방학하고 엄마랑 한국에 들어간지라 혼잡니다.
중국은 크리스마스가 쉬는 날도 아니고 기독교세도 약하지만 여느 나라와 마찬가지로 연말 분위기와 겹쳐 사회적으로 즐기는 모양샙니다. 길거리는 물론이고 쇼핑몰, 아파트 입구마다 크리스마스 트리를 화려하게 장식해 놓았습니다. 라디오에서도 ‘메리 크리스마스’가 연이어 나오고 스마트폰의 각종 앱에서는 크리스마스 배너를 걸어놓고 각종 특집 행사를 이때다 싶어 내놓고 있네요. 중국 SNS인 웨이신이나 웨이보에서는 크리스마스를 보내는 사진들이 넘쳐납니다.
크리스마스라고 특별한 이벤트가 있는 것도 아니라, 혼자서 보내는 주말과 별반 다를 바 없는 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선 딸아이가 그리도 신신당부한 물고기 구피 먹이 주고(구피가 글쎄 새끼를 세 마리!나 새로 낳았습니다.) 간단한 아침 체조 하고 밥 해 먹고 책 읽고 영화 보고(이번 주말에는 무간도와 드라마 환러송(欢乐颂)을 보고 있습니다.) 일기 쓰고 준비하고 있는 자료 쓰고 커피 마시고 몇 가지 업무 처리하고, 빨래 돌리고 설거지 하고 청소하고. 공기가 안 좋으니 실내에서만 지내지만 시간은 참 빨리도 저녁이 됐습니다.
아침 체조 운동이라고 거창한 것은 아닙니다. 간단한 팔 다리 돌리기일 뿐인데 이것조차 운동으로 느껴지고 있으니 원. 그래도 거친 숨을 쉬지 않는 운동을 하는 데 대해 스스로 안위합니다. 지금 공기에서는 가급적 숨을 쉬지 않는 게 좋다네요. 지금 중국에서는 이런 우스개가 있습니다. 자강불식(自强不息)을 같은 중국어 발음인 자강불흡(自强不吸)으로 바꿔 말하곤 한다. 마음을 단단히 먹고 가급적 숨을 깊게 쉬지 말라네요. 유산소 운동은 가급적 줄이랍니다. 그러니 이정도 체조 운동은 적당한 것이라고 안위합니다.
이번 주말에 읽었던 책은 연말 큰 행사를 마치고 집어 든 책이었던 ‘숨결이 바람 될 때’입니다. 제목 번역을 참 잘 했다 싶습니다. When breath becomes air. 숨결이 바람 될 때. 다 읽고 나서도 한 동안 가방 속에 넣고 다니고 있습니다. 그냥 들춰보고 싶고, 들춰보고 나서는 또 가슴 먹먹해지고 그런 책이네요.
와이프와는 생일이나 결혼기념일에 서로 책을 한 권씩 선물하고 있습니다. 지난 생일 때 받았던 책은 ‘永远没有的真相’. 우리말 번역본 제목은 ‘제이컵을 위하여’, 영어제목은 ‘Defending Jacob'입니다. "생일 축하해”란 문구와 함께 받았습니다. 한글본을 재미있게 읽었기에 중국어본도 덤볐지만 지금은 그냥 책장에 꽂혀 있네요. 그냥 두기에는 또 아까워서 중국 친구한테 혹시 읽어볼래 하고 물어보고 있는 중입니다.
이번 주말에 영화는 무간도를 선택했습니다. 그제 어제 1~2편에 이어 오늘 3편을 보려합니다. 예전에는 1편만 봐서 그런지 스토리가 제대로 잡히지 않았는데 이제야 어떤 흐름인지 이해가 되네요. 중경삼림과 마찬가지로 반환 분위기로 혼돈의 홍콩을 배경으로 한 영화인데 무간도란 제목과 영화 내용이 정확히 부합합니다. 메인 내용과는 별반 상관없을 수도 있지만 홍콩이 반환되면서 경찰들이 제복의 배지를 바꿔다는 장면이 인상적이네요.
사람 마음이 참 간사하긴 합니다. 있을 땐 공기와 같으니 존재감을 못 느끼지만 떨어져 있으면 보고 싶습니다. 아침에 영상 통화하니 반갑습니다.
아 그리고 오늘 음식 배달 앱에서 크리스마스라고 50% 할인해 준답니다.
이렇게 중국 베이징에서 2016년 크리스마스를 보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