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딸아이 다섯 살] 연말에 지인들에게 보낸 편지 일부분
딸아이가 2014년 다섯 살이 되었습니다. 딸아이에게 줄 선물로, 올해 육아휴직을 했습니다. 물론 이 육아휴직은 아래 글을 읽다보면 제 자신을 위한 선물이었던 것 같기도 합니다.
남자가 육아휴직을 하는 일은 아직까지 우리나라에서는 보편적인 모습은 아닌 것 같습니다. 대학교 선생님께 육아휴직한다고 말씀드리니 “자네를 보면 우리나라가 선진국인 것 같아”란 말씀을 들을 정도니 말입니다. 물론 앞으로 어떤 결과가 될지는 아직도 모르지만 그래도 육아휴직은 제가 선택한 일 가운데 비교적 훌륭한 선택이었다고 자부합니다.
이 녀석은 제게는 참 사랑스런 아이입니다. 여느 부모가 자식한테 이런 감정을 안 느끼겠습니까. 하지만 사람들은 이런 제게 ‘딸 바보’라는 호칭을 붙이곤 합니다. 육아휴직 덕분에 딸아이와의 관계는 더욱 애틋해진 듯싶습니다.
‘애틋하다’는 단어는 부러 썼습니다. 올해 아이와 함께 했던 무수히 많은 ‘처음’ 순간은 지금 돌이켜봐도 눈가가 촉촉해지기도 하고 저절로 미소가 지어지기도 하는 애틋한 순간입니다. 아이를 꼭 껴안고 가슴 벅찼던 순간순간들이 참 많았습니다. 물론 앞으로도 많으리라 두근두근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 장면 몇 가지를 소개해 드리면 ‘너 이 녀석 올해 이렇게 살았구나’ 하고 대충 이해되실 겁니다. 지금 떠오르는 첫 번째 장면은 유치원 첫 하원길입니다. 딸아이는 다섯 살 때 유치원에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첫날 낯선 친구들과 선생님과 시간을 보낸 뒤 나오며, 운동장에서 기다리던 아빠가 보이자마자 안도의 환한 웃음을 짓고 그렇게도 손을 흔들어 댔습니다. 극적인 부녀 상봉 모습이 연출된 것은 자명했죠.
유치원 생활이 순탄한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머 그렇다고 치고 박고 싸운다는 것은 아니고 유치원에 재미를 붙이는 게 쉽지 않은 듯 보였습니다. 올해 내내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지나도록 아침마다 “유치원 안가면 안 돼?”냐면서 엄마, 아빠를 긴장시켰죠. 참 일관됐습니다.^^ 달래며 유치원 생활의 화려함과 달콤함으로 설득하고 유혹했습니다. 통하는 날이면 그나마 수월하게 유치원에 갔고 실패한 날에는 평소보다 더 눈물을 한 바가지 흘리곤 했죠. 아빠 집에 있는데 아빠랑 놀면 되는 거 아니냐는 거죠.
와이프와 제가 올해 가장 많이 고민했던 부분은 이 부분이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아이를 유치원 생활에 흥미를 느끼게 할까 말이죠. 그러면서 우리가 육아를 잘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 아이에게 최선은 무엇일까, 이 아이가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등등을 고민했습니다.
그 결론은, 물론 모든 고민과 문제를 해결해준 것은 아니지만 정답대로 하는 게 아니라 이 녀석에게 맞는 방법대로 해야 한다는 것이고, 너무 고민하지 말고 자연스레 받아들이고, 시간을 주자는 거죠. 물론 이 결론도 수시로 흔들리기는 했습니다.
육아휴직 기간의 생활은 단조로웠습니다. 그래서 좋았습니다. 단조로워서 좋았고 그 안에 다양한 변화가 있어 좋았습니다. 오후 2시 반경 하원하는 길은 동네 탐색 시간이었습니다. 차타고 다닐 때는 안보이던 골목골목이 보였습니다. 보통 딸아이를 자전거 뒤에 태워서 오곤 했는데 담벼락에 그려진 그림도 보였고 골목에 있는 빵집과 붕어빵 수레도 보였습니다. 간혹 동네 도서관에 들러 아이랑 책도 읽고 놀이터가 보이면 내려서 시간 구애받지 않고 놀았습니다. (물론 그만 가자고 말하는 건 언제나 저였던 것 같습니다.^^) 마음이 동하면 커피집에 들러 전 커피, 아이는 주스 마시는 호사도 누렸고 레고방도 가고 문화센터 가서 연극도 봤습니다. 자전거로 할머니네 까지 가기도 했습니다. 어머니 집까지는 딸아이 태우고 가면 30분 정도 걸립니다. 그럼 저녁 얻어먹고 오는 거죠.^^
집에 오는 길은 여러 갈래였습니다. 지겨워지면 다른 길로 와 봤습니다. 느지막이 발견한 길인데 산으로 오는 길은 참 맘에 들었습니다. 유치원 뒤에 있는 야트막한 산을 넘으면 우리 동네 초입이 나옵니다. 모르던 길이었는데 무작정 갔다 얻은 수확이었습니다. 딸아이랑 손잡고 산길을 걷는 기분은 최고입니다. 간혹 이 녀석이 다리 아프다고 눈웃음치면 안고 내려오기도 했지만 말입니다. 산 위에 있던 공원에서 아이는 낙엽 밟고 놀고 전 눈감고 햇빛 쬐던 느낌 참 따듯했습니다.
그래도 딸아이가 빼먹지 않던 것은 EBS ‘모여라 딩동댕’입니다. 이 녀석은 이 프로그램을 무척이나 좋아합니다. 오전, 오후에 하는데 오후에 웬만하면 꼭 챙겨보려 합니다. 번개맨과 마리오, 나잘난과 더잘난, 달이 별이, 콩콩조이 등등 등장인물 특징까지 줄줄 욉니다. 사실 이 시간이 저도 간혹 기다려졌습니다. 이 녀석이 TV 보는 동안 밀린 청소를 하거나 망중한을 즐기게 되니까요. 망중한이 심하면 낮잠도 즐겼음을 부인 못하겠습니다. 아이와 시간 보내는 게 물론 좋지만 그래도 쉬는 시간도 필요한 법입니다!
유치원에서는 학부모가 함께 하는 행사가 몇 가지 있습니다. 그 중에 아빠의 하루 점심 배식 행사가 있습니다. 보통 엄마들만 아이들의 유치원 행사에 참여하는데 아빠도 참여시키자고 마련한 행사죠. 아빠가 하루씩 돌아가며 유치원에 가서 아이들 점심 국 떠주고 점심 다 먹고 나서는 자기 아이랑 한 친구를 데리고 동화책방에서 책을 10여분 읽어준 뒤 가는 일정입니다.
그때만 하더라도 딸아이가 유치원에 정 붙이고 친구들과 잘 놀 수 있는 방안을 찾던 때입니다. 아빠가 가서 호기심을 끌어주면 우리 아이가 친구들과 좀 더 잘 놀 수 있지 않을까 싶었죠. 물론 와이프 생각이 그러한 것이죠. 머 저도 동감하긴 했구요. 그래서 ‘번개맨’으로 코스프레 해서 갔습니다. 모여라 딩동댕에서 이 녀석이 가장 좋아하는 등장인물이죠. 아이들이라면 다 아는 인물입니다. 아이들이 매우 즐거워했습니다. 그 덕에 등 뒤에 달려 있던 망토는 떨어져 나갔습니다. 딸아이한테 좋은 선물이었겠죠?!
글쎄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모르겠지만 딸아이는 유치원 가기는 싫어했지만 선생님한테 칭찬받고 싶어하는 욕구가 있는 듯 보였습니다. 그래서 유치원 생활 들어보면 잘 하더랍니다. 선생님 말씀 잘 듣고 무언가를 하면 잘 하려 하고 말이죠. 어른이 된 지금에서는 그 칭찬이 머가 중요하랴 싶습니다만 그 나이 때에는 아무래도 중요한 동기부여인 것은 분명하겠죠. 나중엔 칭찬보다는 자기 스스로 만족이 중요한 동기부여가 됐으면 하지만 말입니다.
12월달에 했던 유치원 발표회가 기억납니다. 아이들이 1년간 배운 율동과 악기, 노래 등을 엄마 아빠를 초대해서 하는 행사입니다. 어쩜 그리 잘 하던지.^^ 딸아이는 또래 보다 키가 큰 편입니다. 반에서 제일 큰 것 같습니다. 그 큰 녀석이 젤 열심히 하고 동작도 잘 따라하니 예쁘더라구요.
그래서 더더욱 딸아이가 발레를 그만 둔 게 아쉽습니다. 이 녀석이 유일하게 유치원 말고 다녔던 학원이 동네 문화센터에서 배우는 발레였습니다. 1년 이상 꽤 오랫동안 배웠는데 지난해 어느날 더 이상 안배우겠다는 겁니다. 사실 발레라는 게 발레리나로 키우겠다는 게 아니라 아이들 몸을 유연하게 해주는 운동이라 보내는 건데 아쉽더라구요. 자기 나름 무슨 계기가 있던 것 같습니다. 발레를 배울 때도 엄마나 아빠가 창문으로 지켜봐 줘야 하는데 어느 날인가 떨어지기 싫다고 안 간다는 겁니다. 무슨 일이었는지 여전히 잘 모르지만 어쩔 수 없었죠. 가기 싫어하던 날이 있었는데 제가 약간은 엄하게 그래도 가야돼 하고 들여보냈을 때 울었는데 그게 계기가 된 것은 아니었나 마음이 걸립니다.
육아휴직인만큼 단둘이 함께 했던 것들이 많았습니다. 여전히 잠은 엄마와 자야하지만 엄마가 회사가고 난 뒤 유치원 땡땡이치거나 아님 유치원 끝나고 나서 저와 많이 돌아다녔습니다. 물론 더 많이 못 돌아다녀 아쉽기는 하지만 그래도 둘이서 보낸 시간이 있었다는 건 참 행복한 기억입니다. EBS 뿡뿡이 촬영에 당첨돼서 촬영장에 데리고 갔고, 정동극장에 가서 미소도 보고 장구 체험도 했고, 상암 노을공원에 가서 돗자리 펴놓고 도시락 먹으며 물총놀이도 했습니다. 평일날 낮이니 그 넓은 공원이 우리 차지였습니다. 유치원 끝나고 자전거로 한강 시민공원 가서 놀고 있으면 와이프가 퇴근하고 차 끌고 그리 와서 합류했습니다.
하루는 작은누나네 아이들이 여름방학에 놀러왔기에 같이 데리고 시민공원에 가서 텐트치고 놀았습니다. 딸아이 사촌 오빠, 언니인데 잘 따릅니다. 한살림 체험교실이 노들섬에서 열려서 같이 논밭체험도 했고, 경찰박물관, 농업박물관, 민속박물관도 가봤습니다. 딸아이 최고 놀이터인 롯데월드에도 여러 차례 갔네요. 어머니 집 마당에서는 여름에 가지가 주렁주렁 달려서 가지꽃병도 만들어 보고 제가 30년전 잠시 살던 집에도 아이 데리고 가보기도 했습니다. 이전 동네길이 그대로였지만 넓어보이던 골목길이 참 좁아보였습니다.
물론 육아휴직기간이 이렇게 화려함만으로 채워졌을 리는 만무입니다. ‘지지고 볶았다는’ 표현이 어울리는 장면 또한 많았죠. 아이와 싸우기도 부지기수였습니다. 이 녀석이랑 있으면 저도 다섯 살이 되는 경우가 종종 있더라구요. 하고 나서 후회하지만 같이 삐지기도 하고 제가 큰소리 내기도 했죠. 그 때는 왜 그리 평정심이 안찾아지던지. 결국 아이가 울면 ‘아유 내가 왜 이러나’ 하면서 안아줬습니다.
육아휴직이 소중했던 게 이건 것 같습니다. 보통 아빠와 딸의 관계는 엄마와 딸의 관계와 달리 한번 틀어지면 회복하기 어려운 관계인 것 같습니다. 쉽지 않은 관계죠.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이게 서로 같이 공유했던 시간이 부족해서 이거나 아니면 연습이 안되어서 그런 게 아닌가 싶습니다. 서로 싸우고 나서 회복하는 연습 말입니다. 그런 점에서 육아휴직 시간은 훌륭한 연습시간입니다. 서로 싸우거나 서먹서먹해진 뒤 회복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을 준다는 점에서 말입니다. 주말에만 보는 지금도 잘 놀다가도 곧잘 싸우기도 하지만 그게 그리 두렵지만은 않습니다. 좋아진다는 것을 아니까요. 나중에 이 녀석이 초딩이 되어서도, 사춘기가 되어서도, 고딩이 되어서도, 대학생이 되어서도, 엄마가 되어서도 아빠인 저와의 이때 기억이 그대로 살아있길 바랄 뿐입니다.
그리고 육아휴직 때 커피는 제게 참 좋은 휴식도구였습니다. 아무래도 하루 종일 딸아이와 놀다보면 지치기도 하는데 그때 저녁 8시경 집근처 빵집이나 커피숍 가곤 했습니다. 상반기에는 1주일에 2~3일 정도 그랬던 것 같습니다. 그럼 커피 한잔 마시면서 혼자만의 시간을 즐겼죠. 청승맞은 것인지도 모르지만 혹시 나중에 주변에 이런 남자 보이면 따듯하게 바라봐 주십시오.~ 다 사연이 있는 법입니다.^^
아무쪼록 육아휴직으로 제게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생각해 봅니다. 그저 1년이란 시간만이 흘러간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리고 딸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이 많을수록 그리움이 해소되는 게 아니라 오히려 더 함께 하고 싶어지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딸아이의 다섯 살을 함께 해서 좋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