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딸아이 세 살] 연말에 지인들에게 보낸 편지 일부분
와이프가 제 생일선물로 ‘양아록(養兒錄)’이란 책을 선물했습니다. 책 제목이 ‘양아록’은 아니고 『선비의 육아일기를 읽다. - 단맛 쓴맛 매운맛 더운맛 다 녹인 18년의 사랑』입니다. 그러니까 450년전 조선시대 한 사대부 선비가 자신의 손자를 키워냈던 18년간의 일들을 기록해 놓은 것인데 당시 사회 분위기상 정말 쉽지 않을 일이었을 테지요. 제가 하는 딸아이 기록이 그 정도는 이어졌으면 합니다.
사실 선비가 그 시대에 이런 기록을 했다는 그 사실 자체가 매우 크게 다가옵니다만 내용 자체로는 그다지 이목을 끌지는 못했습니다. 다만 아이를 키우다 보니 그 마음은 똑같더군요. 책 내용 중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숙길. 내 손자 숙길. 착하게 잘 자거라. 건강하게 잘 자라거라. 순간 이상하게 가슴이 뻐근했고 눈시울도 붉어졌다.” 아이를 키우는 것은 이런 마음의 연속인 듯합니다. 매일 딸아이를 보면서 그 반갑고 예쁜 모습에 간혹 저도 어쩔 줄 몰라질 때가 있습니다. 물론 몸은 많이 피곤합니다. :)
딸아이는 이제 2012년 올해로 세살입니다. 한 살 더 먹었다는 데에 매우 기뻐합니다. “나 이제 네 살(한국나이겠지요) 큰 언니야.” 한 살 한 살 더 먹어가면서 몸도 커지고 머리도 커지는 스스로가 신기한 모양입니다.
딸아이가 세살 때 가장 좋아했던 놀이가 무엇이었나 생각해 보면 단연 인형극입니다. 역할놀이지요. 물론 그 나이 또래가 가장 좋아하는 범주일 것입니다. 하루에 최소 한 번 이상, 30분 이상은 하는 것 같습니다. 주로 이런 식입니다.
- 인형 넷 앉혀 놓고
저: “큰 곰돌이는 아빠, 하얀색 곰은 엄마, 분홍색 루피는 M, 빨간 곰은 할머니. 자 우리 넷이서 캠핑을 갔어요. 어떻게 갈까요? 한 줄 기차 아님 나란히?”
딸아이: “한 줄 기차!”
저: “자 한 줄로 쭉 서고! 가자, 가자~ 빵빵호텔로 가자!”
* 지난 가을 아버지 성묘 갔다 오는 길에 도고에 있는 파라다이스 스파 카라반캠핑장에 들렀는데 딸아이는 여기를 ‘빵빵호텔’이라고 부르네요. 카라반 내부는 2층 침대도 있어서 2층 침대를 처음 보는 딸아이가 매우 신기해 했습니다.
- 인형들이 담겨져 있던 TV 아래 인형상자에서부터 소파까지 한 줄로 서서 인형들 옮긴다.
저: “와 빵빵호텔 도착했다. 어 호텔이 이층이네? 이층침대에서는 누가 자지?”
딸아이: “나 루피!”
저: “그럼 할머니는?”
딸아이: “1층 침대!”
저: “아빠는, 엄마는?”
딸아이: “바닥!”
- 그럼 루피는 소파 위에, 빨간 곰돌이는 소파 바로 아래, 큰 곰돌이와 하얀 곰돌이 인형은 소파에서 약간 떨어진 바닥에 눕힌다.
저: “자 이제 자자!”
딸아이: (소파위로 루피 인형과 함께 뛰어올라 자는 척하며) “쿨쿨~” (잠시 후) “아빠, 엄마, 할머니 아침이에요 이제 일어나세요.~”
저: “M 루피야, 아직 바깥 캄캄해, 좀 더 자야지~”
딸아이: (다시 누우며) “알았어요~” (잠시 후) “나 루피 잘 자고 일어났어요~ 다들 일어나세요!”
저: “아 아침이니? 아 잘 잤다. 다들 아침 체조해야지~”
- 인형들을 잡고서 앉았다 일어나기, 팔 좌우로 흔들기 등 스트레칭 흉내 낸다.
딸아이: “자 이제 아침운동 했으니 아침 먹어요!”
- 딸아이가 장난감통에서 넓은 통 하나 가져오고 각종 채소 장난감과 물고기 모양 나무 등을 가져와 올린다. 집게로 뒤집는 시늉도 하고.
딸아이: “고기 구워먹어요! 냠냠. 엄마도 하나, 아빠도 하나, 할머니도 하나~”
저: “아 맛있다~”
딸아이: “아 배부르다. 아침 다 먹었으니 이제 수영해야지!”
- 인형 들어있는 통을 다 비우고 그 통안에 들어가 제법 수영하는 모양새 취하며. 나는 그 통을 좌우로 앞뒤로 움직여 딸아이를 흔들어준다.
딸아이: (인형들 하나하나 통안에 들여놓으며) “너희도 수영하고 싶지? 언니랑 같이하자~”
저: (인형 하나하나 목소리 내는 식으로) “응 언니 수영하고 싶어~ 언니랑 수영하니까 너~무 재밌다!”
딸아이: (통에서 나와 쪼르르 한쪽에 있던 자신의 장난감 의자를 가져와 그 의자에 앉고 다른 작은 의자에는 인형들을 앉히며) “수영 다하니 이제 햇빛 쬐자. 너희도 의자에 앉아.~”
저: (인형 하나하나 흉내내며) “응 언니, 햇빛 쬐니 따듯하고 정말 기분 좋다~”
딸아이는 빵빵호텔 말고도 요즘에는 동화책에 푹 빠져서 백설 공주, 오로라 공주, 신데렐라, 콩쥐팥쥐, 헨젤과 그레텔, 동물원 구경, 개울 건너기, 동물 올림픽 등등 갖가지 생각해 낼 수 있는 상황극을 만들어서 인형극 해달라고 졸라댑니다. 그리고 지난 크리스마스 때는 무엇을 해줄까 고민하다가 회사에 있는 커다란 초롱이 인형탈 쓰고 가서 “안녕 난 아빠 친구 초롱이야~” 그랬더니 무척 좋아했습니다. 지금은 초롱이 여자친구 색동이 데려오라고 닦달합니다.
이 녀석이 아주 좋아하는 또다른 놀이는 발레와 노래율동입니다. 동네문화센터에서 발레를 배운 게 벌써 2년이 다 돼 가는 것 같습니다. 분홍색 발레 옷에 아주 매료돼 있습니다. 발레는 어찌 보면 제 엄마의 로망이었지요. 와이프는 초등학교 때 발레를 배웠다는데 계속 배우지 못했던 걸 많이 아쉬워합니다. 그래서인지 딸아이에게 어릴 때부터 발레를 가르쳤는데 이 녀석도 문화센터에서 또래와 함께 발레 동작 배우는 것에 아주 열심이고 즐깁니다. 그 모습을 찍어놓은 동영상은 딸아이가 수시로 보여달라며 졸라대는 통에 저도 수십 번은 보고 있는 것 같습니다.
발레 사랑은 문화센터 어린이반에서만 끝나는 게 아닙니다. 집에서도 수시로 발레옷에 발레신발까지 갖춰 신고는 발레 동작을 곧잘 따라합니다. “까르르” 웃으며 제 앞에서 발레 동작을 뽐내는데, 웃음 짓게 합니다.
그 발레 동작은 저로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동작입니다. 두 다리를 양옆으로 쭉 펴는 것은 기본이고 무릎에 뽀뽀하기도 하고, 누워서 손을 뒤로 돌려 발을 잡아 흔들흔들 해보입니다. 간혹 “아빠도 같이해” 하는데 이미 굳어버린 제 몸이 따라갈리 만무합니다.
이 또래 아이들이 다 마찬가지일 것 같긴 합니다만 딸아이는 이러한 무용에 심취해 있습니다. 노래에 맞춘 율동을 배워오거나 봐 와서는 집에서 곧잘 따라 합니다. 그 동작 하나하나가 어쩜 그리 귀엽고 앙증맞은지요. 딸 키우는 재미가 이런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물론 간혹 가다가는 짐짓 새초롬히 “창피해” 하면서 무용 시범이나 노래율동 보여주는 것을 거부하기도 합니다. 구슬려 멍석을 깔아주면 그제서야 신나게 하지요. 노래만 틀어놓으면 수십 번이고 반복하면서 “까르르”입니다.
책읽어주기는 하루 일과를 마무리한다는 의미의, 신성한 ‘통과의례’입니다. 자기 전에는 최소 5~6권의 책을 가져와서 침대 머리맡에서 읽어달라 합니다. 잠은 엄마와 자는 버릇이 돼서 제가 읽어주는 경우는 많지 않지만 저도 간혹 읽어주게 됩니다. 읽어줄 때는 주의할 점이 있습니다. 등장인물 특성에 맞는 목소리 변조이지요. 스토리는 단순할 순 있어도 현장감은 필수입니다. 어릴 때와 달라진 점은 바로 이때입니다. 이렇게 책을 읽어주면 스르르 잠이 들어버리곤 합니다. 아니면 “책 다 읽었다. 이제 불끄고 자야지” 그러면 뒹굴뒹굴하다가 잠들어버립니다. 신통방통합니다.
물론 낮에도 책읽기 ‘요구’는 수시로 있습니다. 제가 양반다리하고 앉아 있으면 자기가 읽고 싶은 책을 가져와서 제 다리 사이에 풀썩 앉고는 “읽어줘” 합니다. 요즘에는 혼자 읽는 경우도 종종 생기곤 합니다. 아직 글이야 모르지만 그림에 매칭된 내용을 정확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혼자 재미나게 읽어나가는 모습을 보면 정말 신기합니다.
아무래도 아빠다 보니 몸으로 놀아주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고 그게 편할 때도 있습니다. 인형극이나 상황극은 말을 만들어내는 것이 곤혹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30분 이상 하다 보면 왜 그리 이야기 만들어내는 것이 쉽지 않던지요.
몸으로 노는 대표적인 것이 ‘삥삥’입니다. 딸아이 겨드랑이 사이에 팔을 집어넣어 번쩍 들어서 빙빙 돕니다. 그렇게도 재밌나 봅니다. 웃는 소리에 제가 헉헉 댈 때까지 해주곤 합니다. 이 녀석은 머리와 다리를 위아래로 젖히며 빙빙 돌리기를 스스로 변형하곤 합니다.
구름빵 먹었다는 가정 하에 하는, 딸아이 겨드랑이를 잡고 제 머리위로 힘껏 들어올린 뒤 제 가랑이 뒤로 최대한 내리는 동작도 매우 좋아합니다. “구름빵 많이 먹었어.” 하고 오면 바로 이 동작 준비태셉니다. 제 등에 올라타는 말타기와 무등타기, ‘수영점프’ 등도 이 녀석이 아주 좋아하는 놀이지요. 수영점프는, 소파위에서 뛰어내리면 제가 솜씨 있게, 안전하게 잡아채는 놀이입니다.
술래잡기도 빼놓을 수 없는 놀이입니다. 제가 숨기도 하고 딸아이가 숨기도 합니다. 이 방, 저 방 숨어서 서로 찾아다닙니다. 크지도 않은 집입니다만 이 녀석한테는 궁궐인 듯싶습니다.
그림그리기와 음식만들기 또한 주요 놀이 테마지요. 제가 그린 그림조차 아이한테는 아주 멋들어진 그림입니다. 참고로 전 그림과는 담 쌓은 사람입니다. 왜 멋들어진 그림이 될까요? 우선 그림 그리면서 딸아이 주문을 한껏 반영합니다. 이 녀석이 요즘 제일 좋아하는 오로라 공주라고 그린 그림에 의미부여 하면 됩니다. 그리고 그냥 오로라공주가 아니라 ‘M 오로라공주’라 하는 게 중요합니다. 요즘 딸아이는 스스로 ‘공주’를 자처합니다. 공주에 푹 빠져 있지요. 하여튼 그림에는 다시 치마를 입혀야 하구요, 머리는 가급적 길게 그려야 합니다. 눈은 약간 둥글게 그려야 하는 것도 주요 포인트입니다. 그제서야 만족합니다. 하지만 요즘에는 이제 곧잘 혼자 그립니다. 동그라미와 선을 슥삭슥삭 그리더니 “이거는 나, 할아버지, 이모~”이렇게 이름 붙입니다.
음식만들기는 진짜 음식을 만드는 겁니다. 물론 딸아이는 ‘방해꾼’이지만 이 녀석이 즐기는 그 모습 자체가 정말 보기 좋습니다. 와이프는 음식 만들기를 ‘좋아합니다.’ (아내에게는 나름 음식 철학이 있습니다. 약간 농도가 옅어지긴 했습니다만 유기농을 써야 하구요, 육식보다는 채식 위주 식재료를 많이 씁니다. 우유보다는 두유를 활용한 요리를 좋아하고 가급적 다양한 식재료를 써야한다고 주장합니다. 밖에서 사먹기 보다는 집에서 만들어먹자 하구요. 물론 그러면서 “매일 난 다음날 머 먹어야할지 고민해야 해. 불공평해! 넘 피곤해!”를 달고 있긴 합니다.) 하여간 와이프는 종종 케잌이나 머핀, 호두과자, 붕어빵, 파전, 두유홍시 등 별미 음식도 만듭니다. 그럼 딸아이는 엄마 옆에서 밀가루반죽 하는 것을 도와줍니다. 식탁은 말 그대로 난장판이 되지만 그 모습이 왜 그리 예쁜지요. 간혹 가다가는 된장 주물러서 맛보기도 합니다.
키즈카페와 놀이터야 물론 딸아이에게는 최고로 좋아하는 놀이공간 중 하나지요. 가끔 와이프가 피곤해 하면 저만 딸아이를 데리고 키즈카페에 갑니다. 그럼 아주 지쳐 쓰러질 때까지 신나게 놉니다. 딸아이는 ‘마마걸’인데 키즈카페 간다고 하면 “엄마 집에서 쉬어” 이렇게 말합니다. 아빠인 저랑 가야 더 허용범위가 넓다는 것을 체득한 거지요. 결혼식 놀이도 요즘 재미붙였습니다. 대상은 당연히! 저입니다! 저는 이게 넘 행복하더라구요. “아빠 결혼하자!” 그러면서 제 팔을 붙잡고 딴딴따단 딴따다단~ 노래를 부릅니다. “M, 누구랑 결혼할거야?” 물어보면 “아빠!” 이렇게 대답하는데 이게 언제까지 가겠습니까만 아주 마음이 간질간질해지는 순간입니다.
딸아이는 장모님이 낮에 돌봐주시기에 그리고 장모님이 바쁘시면 낮에 화정 처가에 가 있기에 화정 처가 공간이 딸아이에게는 낯설지 않습니다. 친숙하지요. 다만 와이프나 저나 딸아이가 흙을 만지며 넓은 공간에서 가급적 자연과 놀았으면 하는 바람이기에 동산동 어머니 댁에 비교적 많은 자연놀이터를 만들어주곤 합니다. 이 집은 제가 태어나서 자란 집이기도 하지요. 아버지는 지금 안계시지만 어머니가 그 곳에 계속 계시다는 사실에 언제나 마음 한구석 든든합니다.
아 술래잡기도 그러고 보니 딸아이가 좋아하네요. 넓지 않은 집이지만 이 녀석에게는 숨을 곳이 무궁무진합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제가 일부러 못 찾는 척을 해야 합니다. “어 이상하다 어디 갔지? 못찾겠다 꾀꼬리!!”라고 하거나 겨우 찾은 듯이 하면 아주 재밌어 하지요. 그리고 제가 퇴근하고 들어가면 언제나 이불속에 들어가거나 아님 한쪽에 숨어서 찾으라 합니다. 그럼 저는 외출복을 벗기도 전에 “어, 이거 우리 딸 발인 거 같은데, 어디 갔지?!” 부르다 “여기 있었네!” 하면 아주 좋아합니다. 자기가 어디 있는지 들키기까지 느끼는 그 긴장감을 즐깁니다.
유치원놀이도 있습니다. 딸아이가 이제는 어린이집에 갈 때가 되긴 했습니다. 동화책에 나와 있는 내용대로 어린이집 놀이를 하고 싶어합니다. 자기는 루 언니이고 저는 톰 오빠이고 엄마는 어린이집 선생님입니다. 이렇게 저녁 시간을 보냅니다.
딸아이가 자주 쓰는 말투와 단어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는 딸아이 성격을 고스란히 드러냅니다. “배고파!” 밥 먹고 정말 식탁의자에서 내려오면 하는 말입니다. 음식을 아주 좋아하고 ‘식탐’이 있습니다. 저를 닮았나요. 음식 잘 먹는 거야 참 좋긴 한데 요즘은 정말 많이 먹습니다. “내거야!” 이맘때 아이들이 다 그렇겠지요. 자기 것에 대한 애착이 강합니다. 이 녀석 놀리기 참 쉽습니다. 그 녀석 거 부러 내가 가지고 놀고 있으면 약간의 심통과 함께 제게 와서 “내거야!”하고 달라 합니다. 아빠, 엄마에 대한 소유욕도 대단하지요. 제가 다른 아이를 안아주거나 예쁘다 하면 “안 예뻐, 안아 주지마! 내 아빠야!”라고 해서 간혹 난처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상황에 따라 달라집니다. 엄마와 아빠만 있을 때는 그 사랑은 엄마한테만 갑니다. 제가 아내 손을 잡거나 장난으로 뽀뽀라도 할라치면 “내 엄마야! 하지마!” 합니다. 엄마에 대한 애착이 강하지요. 잘 때도 항상 침대에는 자신과 엄마만 자고 저는 침대 아래에서 자다 보니 저랑 침대에서 잘 놀다가도 자기가 졸리면 땡깡 부리며 “아빠는 아래에서 자야지! 엄마 자리야!” 그럽니다. 하지만 간혹 제가 책읽어주면서 재울 때가 있는데 그럴 때 스르르 잠들면 왜 이리 예쁜지요.
“1등”, 왜 딸아이는 제일 먼저 하는 것을 좋아할까요? 밥도 자기가 제일 먼저 다 먹어야 하고 달리기해도 1등해야 하고 줄다리기해도 꼭 이겨야 합니다. 샘이 많아요. 음 나중에도 이러한 점이 성격으로 굳어질까 약간 염려도 되지만 이맘때는 다 그러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이 녀석 성격은 영락없이 ‘서울깍쟁이’이고 ‘새침데기’에요. 겁쟁이이기도 하지요. 아직은 무서워서 컴컴한 데서 뮤지컬이나 인형극 등을 볼 수 없어요. 잘 참다가도 결국 운답니다.
하여간 전 딸아이를 이렇게 키우고 싶습니다. 투박하면서도 자연과 함께하는 삶을 누리도록, 소소한 재미를 알도록,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는 삶을 즐기도록, 자기 주관도 있고 섬세한 면도 있고 반면 웃어넘길 줄도 알고,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이 되면 좋겠습니다.
딸아이 얘기가 끝나질 않네요. 어른들 말을 그대로 따라하면서도 자기만의 것으로 응용, 소화해서 하는 말들은 어쩜 그리 귀여울까요. “예쁘니까 주지 안 예쁘면 주나~”(자기 먹을 거 선심 쓰는 듯 주면서), “잘 자고 일어났어요~”(아침에 눈뜨자마자), “나 혼자 기다리고 있었어요, 엄마도 안부르고” (잠자다 일어났는데 옆에 엄마 없으면 엄마 올 때까지 기다리면서(원래는 일어났을 때 옆에 엄마 없으면 난리납니다.)), “엄마는 왜 나 혼내? 나 안 사랑해? 엄마가 나 안혼내면 좋겠어”(딸아이가 유일하게 무서워하는 사람이 엄마에요), “나 흙 만지고 눈 비벼도 괜찮아?(치과 다녀오고 나서는 겁이 많아져서 머머해도 괜찮아? 이렇게 물어보는 버릇이 생겼어요.) 요즘은 청개구리 흉내를 냅니다. 반대로 말하는 것이지요. “아이 예뻐, 아빠사랑 M” 이렇게 말하면 이 녀석은 “아빠 아이 안 예뻐, 엄마사랑 나!” / “아빠가 M 많이 사랑해!” 그러면 “응 난 아빠 조금 사랑해” 이런 식이지요. :) “그래도 좋아” 그러면 딸아이는 “조금만 사랑하는데 머가 좋냐~” 이렇게 말한답니다. 음 그리고 별로 안좋은 말버릇인데 화가 나면 “야! 이놈아!” 이럽니다. --;
예쁜 것에 대한 자기만의 시선이 벌써 있습니다. 그 또래 여자아이들처럼 분홍색에 대한 사랑은 지극하지요. 분홍색이면 모두 자기 것이라 합니다. 분홍치마에, 분홍 드레스에, 분홍 발레복에, 분홍 신발에, 분홍 머리핀과 머리띠에, 분홍 바지에 등등. 그림을 그리더라도 자기는 분홍색으로 그려야 합니다. 얼굴이 하얘서인지 다른 색깔 옷들도 다 잘 어울립니다. 머리도 예쁘게 묶어야 만족스러워 합니다. 그래서 간혹 아침에 출근할 때 저는 두 가지 옷 중에 무엇을 입어야할지 고민스러울 때 주저하지 않고 이 녀석한테 물어봅니다. “오늘 아빠 자주색 폴로 입을까, 아님 파란색 폴로 입을까?” 그럼 딸아이가 “응 오늘은 이거”라고 가리키는 것을 입고 갑니다. 그리고 제가 자기 말대로 옷을 입으면 뿌듯하고 만족한 듯이 제가 입은 것을 바라봅니다.
딸아이는 아빠를 어떤 사람으로 기억하고 있을까요? “아빠는 어떤 사람?”이렇게 물어보면 이런 답이 돌아옵니다. “응 아빠는 인형극하는 사람, 삥삥하는 사람, 놀아주는 사람, 책읽어주는 사람, 책읽는 사람”, 이런 딸아이가 한없이 예쁘기만 합니다. 참고로 엄마는 어떤 사람이냐 하면 “요리하는 사람, 청소하는 사람”이라고 답하네요. 어서 이 녀석이 무럭무럭 커서 아빠랑 팔짱끼고 산책하고 맛난 거 먹으러 다니고 여행 다닐 날이 손꼽아 기다려집니다.
지난해 또 특징적이었던 것을 쓴다면 딸아이가 처음으로 머리를 잘랐어요. 치과도 갔구요. 사촌 언니오빠가 써준 생일축하편지도 받았구요. 변기에서 응가 쉬야 잘 하구요(가끔 옷에 쉬도 하긴 합니다. 아직은). 아 그리고 바다도 처음 봤어요, 동해바다. 파도가 밀려왔다 나가는 것을 많이 신기해했지요. 모기에 물려서 탱탱 붓기도 했어요. ‘간질간질’을 못참습니다. 웃음부터 나오지요. 가끔은 간질이면 쉬야를 해버리곤 해서 곤란할 때도 있어요. 언니를 참 잘 따릅니다. 사촌언니를 좋아합니다. 그리고 제 친구 딸과도 잘 놉니다.
이 녀석하고 올해 돌아다닌 곳을 꼽아볼까요? 선유리마을 눈썰매장, 헤이리마을 ‘딸기가 좋아’, 곤지암리조트, 장흥 미술관, 홍천 대명 콘도, 설악산 권금성 케이블카, 설악산 한화 리조트, 배다골 테마파크, 춘천 제이드가든, 진관사, 사과나무 키즈카페, 뽀로로 테마파크, 롯데월드, 에버랜드, 청계천(저랑 단둘이 갔답니다.), 도고 파라다이스 카라반, 할아버지 성묘, 과천 서울랜드, 성곡 미술관, 경복궁 어린이 박물관, 강씨봉 자연휴양림, 전쟁기념관 안 동물 박제 박물관 등등. 음 그다지 많이 다니지도 않은 것 같네요. 맘 같아서는 주말마다 돌아다니고 싶지만 맘처럼 되지는 않네요.
지금은 어린이집에 대한 고민이 큽니다. 이제 어린이집 보내고 싶은데 추첨 넣은 어린이집에서 다 떨어졌네요. 지금 집근처 어린이집 대기 걸어놨고 다른 방법 없나 고심 중에 있습니다. 아이를 많이 낳으라는 정부지만 별 대책은 없는 것 같아 화납니다.
아무쪼록 이렇게 딸아이와의 2012년을 보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