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딸아이 두 살] 연말에 지인들에게 보낸 편지 일부분
이렇게 편지를 드리는 것은 딸아이에게 주는 선물이기도 합니다. 후일 딸아이가 글을 읽을 수 있게 되면 매년 연말과 연초에 이렇게 써서 선물로 주고 싶습니다. 이 글은 물론 제 인생 기록이지만 제 인생의 상당부분은 딸아이 관찰 기록일 터이니 말입니다.
어느 부모가 안 그렇겠습니까만 제 인생에도 딸아이가 큰 비중을 차지하더군요. 가족이라도 같이 하는 시간이 점차 줄어드는 현대사회에서 한국도 부모와 자식간의 관계가 과거와는 달라지고 있다 하지만 딸아이와의 감정의 농도만큼은 전 예전시대와 같길 바랍니다. 제 인생은 제 인생이고 딸아이 인생은 딸아이 인생이겠습니까만 서로 함께 하는 공유하는 인생이 많길 바랍니다.
올해 딸아이가 두돌이 됐습니다. 2009년 태어나서 건강히 잘 크고 있습니다. 두 번째 생일이기에 첫돌처럼 바깥에서 식사하지는 않았지요. 집에서 가족끼리 많이 축하해 줬습니다. 친가는 어머니가 계신 동산동에서 같이 밥 먹었고 처가는 불광동 집에서 함께 식사했습니다. 그리고 와이프가 딸아이를 위한 초코 케이크를 만들어 줬습니다. (매년 딸아이 생일 때 우리는 우리가 만든 케이크를 선물로 주기로 맘 정했어요~)
두 번째 생일이라서가 아니라 케이크에 대한 이 녀석의 태도 때문에 많이 컸구나 하고 느낍니다. 첫 돌 때는 당연히 케이크에 대한 욕심이 없지요. 돌 잔치의 어수선함 때문에 무엇에 신경써야 할지도 몰랐을 거에요. 하지만 이제 케이크에 대한 욕심이 생겼네요. 정확히 말하자면 케이크가 아니라 촛불에 대한 욕심입니다. 아이들은 다 그런 것 같아요. 후 불어서 꺼지는 촛불이 그렇게 재밌고 신기한가 봅니다. 딸아이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젠 케이크 위에 켜져 있는 촛불은 자신이 먼저 꺼야 합니다. 누구도 건드려서는 안됩니다.
하지만 경쟁자가 있기 마련이지요. 큰누나네 조카들은 이미 중학생이 되어 가기에 촛불은 당연히 시큰둥이지요. 하지만 작은누나네 조카들은 딸아이의 강력한 촛불끄기 경쟁상대입니다. 아직은 초등학교 입학전이니 촛불에 대한 흥미는 살아있으면서 행동도 빠르고 불기도 잘 부니 촛불이 켜져만 있으면 딸아이보다 빨리 훅 불어 제낍니다. 그럼 이 녀석은 내 촛불, 내 촛불 하며 울상입니다.
음 그런데 제가 딸아이한테 무슨 생일 선물을 줬는지 기억이 나지 않네요. 아무리 기억하려 해도 안 떠오르는 게 제가 선물을 주지 않은 것 같은 민망한 생각이 듭니다. 실은 이번 생일은 와이프가 거의 준비했지요. 제가 2011년 8월 교육 합숙을 들어가 있던 지라 생일날에만 참석했던 듯 합니다. 딸아이가 당시에 아직은 선물에 대한 개념이 그리 확실하지 않은 것이 다행입니다. 2012년엔 딸아이가 활짝 웃으며 기뻐하는 선물을 사 줄겁니다.
올해 보니 이 녀석 참 많이 컸습니다. 물론 앞으로 커나갈 모습이 창창하고 아직도 어리디 어린 모습이지만 하루하루 커간다는 게 실감납니다. 게다가 제가 매일 커나가는 모습을 올해 많이 못 봤기에 더욱 더 실감나는 것 같습니다. 몇 가지 모습을 말씀드리면 이렇습니다.
2011년 12월 15일 집 근처 마트 유아센터에 간 첫날입니다. 시간이 가능해서 같이 갔습니다. 딸아이는 신났죠. 이 녀석 이제 분위기를 즐길 줄 압니다. 새로운 공간에 대한 호기심도 왕성하구요. 제 또래 애들이 가득하니 긴장하면서도 수많은 놀이기구들에 하나하나 지대한 관심을 보입니다. 수업이 시작됐습니다. 선생님이 애들을 하나하나 호명합니다. 딸아이 이름이 호명됐습니다. 앞으로 나가 선생님 포옹하고 돌아옵니다. 얼굴이 빨갛게 상기됐습니다. 그 돌아오는 순간의 딸아이 얼굴 표정을 아마 한동안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 엄마 품으로 돌아오며 '엄마, 나 갔다 왔어, 선생님 포옹도 했고'라고 말하는 듯 합니다. 많은 애들 앞으로 나갔다 오고, 낯설은 선생님께, 선생님이라는 이름만으로 처음 본 사람과 포옹도 하는 모습이 정말 많이 컸습니다. 이날 수업 1시간 내내 신나게 뛰어 놀았습니다.
역할 놀이가 가능해졌습니다. 상상 놀이도 가능해졌습니다. 예를 하나 들어보죠. 조그만 동물 인형과, 애들 모양 나무조각, 어른 모양 레고를 갖고 목욕을 시킵니다. 나무 조각으로 둥그렇게 만들어 목욕탕이라 그러면 이제 상상놀이가 시작됩니다. "사자가 목욕할 시간이야, 동물원 레고 언니가 물을 뿌려서 목욕시켜줘, 비누칠도 해줘야 해, 목욕 다했으니 드라이로 머리 말려야 해, 수건으로 말리고." 이런 식으로 동물 친구들 10여 마리, 나무조각과 레고 10여명을 차례로 목욕시킵니다. 그리곤 차례로 그네를 태워줍니다. 자기가 타고 있으면서 레고 언니 운다고 말합니다. 자기가 안태워주니 타고 싶어서 울고 있는 거라 합니다. 그래서 저보고 말하라 합니다. "나도 그네 타고 싶어, 태워줘, 잉잉" 그러면 "알았어 태워줄게, 이리와" 그러며 안고 태워줍니다.
밥 먹으면서는 카메라나 핸드폰 보고 싶어서 투정도 부립니다. 하지만 엄마가 녹록치 않습니다. 안된다고 하면 사촌 오빠나 언니 등에 빗대서 얘기해달라 합니다. 그러면 이런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오빠는 밥 먹다가 카메라 보여달라고 떼쓰다가 아빠한테 혼나. "누가 밥 먹다 카메라 보니." 그럼 오빠가 울어. 하지만 언니는 안보면서 밥 잘 먹어. 참 착하지?" 그러면 딸아이는 "오빠 밥 먹으며 카메라 보는 거 아냐. 언니는 안보며 잘 먹잖아" 그러며 자기도 밥 잘 먹습니다.^^
이렇게 커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