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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HGXING Oct 22. 2023

반도체 나라 대만에서 IT를 지키는 것은? '꽈이꽈이'

 “차장님 컴퓨터에 ‘꽈이꽈이’(乖乖) 없죠?”


못 알아들었다. 컴퓨터가 고장 난 것 같다는 내 말에 대만 직원들이 웃으며, 다소간에는 부러 진지하게 한 말이다. 


꽈이꽈이는 중국어로 '귀염둥이, 순둥이, 말 잘 듣는‘ 머 이런 의미를 갖는 단어다. 고장났으면 고쳐야지 꽈이꽈이가 없다니? 꽈이꽈이라는 보안 프로그램이 있고 그것을 설치하지 않았다는 말인가?


자기들 PC를 보여준다. 컴퓨터 화면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데스크탑 본체 위에 놓여 있는 녹색 봉지를 보여준다. 과자 봉지인데 그 이름이 꽈이꽈이(乖乖)였다. 사무실에 있는 대만 직원 자리가 10개이고 자리마다 있는 컴퓨터 본체 위에 하나같이 똑같이 그 과자가 놓여 있다.  


꽈이꽈이가 없기에 컴퓨터가 고장 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에이 이게 무슨 말이람. 웃으며 그런 게 어디 있어? 과자 회사 마케팅 아닐까? 했지만 우리 직원들은 내심 열심히 설명한다. 이런 ‘풍속’?이 꽤 오래됐단다. 정밀 전자기기를 연구하고 개발하는 연구원 컴퓨터 위에 높여 있는 꽈이꽈이 사진도 보여준다. 실제 그런 인증 사진은 SNS 등 온라인 상에 넘쳐났다. 대만의 주요 과학기술 연구기관인 중앙연구원에도 꽈이꽈이는 놓여져 있다. 


세계 최대 반도체 회사 TSMC가 있는 나라가 대만 아니었나? 반도체의 나라 대만에서 컴퓨터를 지키는 것이 최첨단 프로그램이 아니라 꽈이꽈이 과자라고? 대만 사람들이라고 이를 얼마나 믿겠나 싶다. 하여간 흥미로운 ‘현상’이다.


호기심에 찾아보니 BBC에서 2021년에 기사화까지 했다. ‘컴퓨터 보호신이자 대만 과학계의 행운의 부적 문화’라는 제목으로 흥미롭게 써내려갔다. 대만 사람들은 대만 사회의 소소한 풍속이 글로벌 매체에 기사화되자 ‘국가기밀이 드러났다’, ‘TSMC의 아성이 흔들리지 않는 비밀’이라며 재미나게 반응했다. 


기사나 인터넷에서 좀 더 찾아보니 꽈이꽈이가 행운의 부적이 된 것은 어느 대학원생에서 시작됐단다. 과학 연구논문을 쓰던 이 학생 컴퓨터가 종종 고장 나자 무언가 행운의 부적이 필요했고 꽈이꽈이 뜻이 말 잘 듣는 이런 의미가 있다는 데 착안해서 옆에 뒀는데 실제 고장이 안났고 논문을 잘 마무리했다는 믿거나 말거나 식의 이야기였다. 이런 얘기가 슬슬 퍼지면서 정말로 컴퓨터 보호 부적으로 자리매김했다는 ‘카더라’다. 


이 과자 봉지 색깔이 녹색인 것도 영향을 미쳤다는 얘기도 있다. 녹색은 보통 ‘순조롭게 통과한다’는 의미가 있는데, 예를 들어 교통신호에서도 녹색은 '이제 지나가세요'란 의미가 있지 않나. 그래서 더더군다나 이 과자를 일종의 행운 부적으로 삼았다는 것이다. 


실제 꽈이꽈이 과자는 3가지다. 향신료 맛의 노란색, 초콜릿 맛의 빨간색 봉지도 있지만 컴퓨터 부적으로는 녹색 과자만 사용한다. 노란색과 빨간색을 원하지 않는 이유는 교통신호등을 생각하면 충분히 짐작 가능하지 않나.           


언제부터 이런 ‘가벼운 믿음’이 생겨났는지는 대만 사람들도 정확히는 모른다. 그렇지 않나, 이런 소소한 ‘미신’이 언제 생겨났는지 누가 신경 쓰겠나. 하지만 대략 따져보니 1990년대 말이 아닐까 싶단다. 컴퓨터 위에 꽈이꽈이를 올려놓는 것을 소재로 한 글이 처음 나온 게 2003년인데 이미 그 당시 널리 퍼져 있었기에 90년대 말에 이미 습관 아닌 습관이 되었을 것이라는 짐작이다. 2004년 이후 이런 관습에 대한 글들은 꽤 많이 눈에 띄는데 대만 총통 선거가 있던 2004년에 한 선거 사무소에서도 컴퓨터 위에 꽈이꽈이를 올려 놨단다.


믿거나 말거나 식의 꽈이꽈이 실제 효능도 온라인 상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2009년 타오위안 공항 컴퓨터가 36시간 연속해서 고장 났는데 이게 컴퓨터 위에 있던 그 과자를 먹어서 그랬다는 식이다.   


여기서 꽈이꽈이 ‘부적’에 대한 규칙이 있다. 과자를 먹고 봉지만 있으면 효과가 없단다. 그리고 유효기간이 지난 과자도 안되고 1년에 2번, 즉 신년 초와 음력 7월에 새 걸로 바꿔줘야 효과가 지속된단다. 아무리 봐도 과자 회사 마케팅 같은데... 아니라 하니..


사실 일종의 ‘의식, 의례’가 된 느낌이다. 효능을 믿고 안 믿고는 중요하지 않다. 해야 하는 관례, 의식으로 자리 잡은 것이다. 제사를 지낼 때 빨간색 음식은 동쪽에 둬야 하고 하얀색 음식은 서쪽에 둬야 한다고 들어왔지만 그 이유는 사실 잘 모른다. 그렇게 그냥 한다. 꽈이꽈이를 컴퓨터 위에 두는 것도 일종의 그런 게 아닌가 싶다. 


이게 신기했다. 대만에 온지 2개월도 안된 초짜 외국인의 눈에는 이게 신기했다. 대만 사회에는 유독 무언가에 대한 믿음이 많다. 소위 초월의 존재에 대한 믿음을 다른 사회보다도 더욱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궁, 묘, 사’ 등의 다양한 종교 시설이 크건 작건 동네 곳곳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냥 골목 어귀 마다 있다. 


꽈이꽈이 현상은 그런 초월적 존재에 대한 대만 사회의 태도가 그대로 투영된 것이 아닌가 싶다. 자연재해가 빈번한 대만이라는 지역 특성으로 인해 이런 태도가 생겨난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대만 사회의 다양한 모습이 더욱 궁금해진다. 


그리고 내 컴퓨터 위에도 이제 꽈이꽈이가 놓여져 있다. 


<컴퓨터 위에 올려져 있는 꽈이꽈이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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