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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HGXING Nov 01. 2023

대만사람들은 추석에 고기를 굽는다.

“추석에 어디 안가면 같이 고기나 구워 먹죠.” 어떻게 알게 된 대만 사람이 중추절을 앞두고 인사를 건넨다. 으레 한 인사일 터인데 밥 먹자도 아니고 술 마시자도 아니고 고기를 구워 먹잖다. 고기를 좋아하나 싶었다. 


중추절을 앞두고 마트 입구에 추석 특집 코너가 마련되었다. 우리라면 각종 선물세트가 자리할 공간에 캠핑 장비가 한 가득이다. 정확히 말하면 바비큐 장비다. 화로대와 석쇠, 그릴 등이 천장 높이로 쌓여 있다. 대만에서는 중추절에 고기 구워 먹는 게 몇몇 사람만의 취미가 아니었다. 사실상 ‘전통’이었다. 


추석 연휴에 동네 골목 곳곳에서 고기 굽는 냄새가 피어올랐다. 식당 앞에서 옹기종기 모여 석쇠에 고기를 굽고 있다. 동네 어귀 사당 앞에서도 젊은 친구들 몇몇이서 고기 굽는 연기 속에서 술잔을 기울이고 있다. 


신기했다. 한족의 중추절이라면 떠오르는 음식이 우리의 송편에 해당하는 월병이나 과일 유자다. 고기를 구워 먹는 문화는 들어보지 못했다. 중국에서도 추석에 고기를 구워먹는 ‘전통’은 본 적이 없다. 한족의 전통이 아니라 대만의 전통인 셈이다. 


오며가며 인사를 나누는 동네 대만 아저씨께 궁금함을 이기지 못해 물어본다. “추석날 바비큐 전통은 어떻게 시작된 건가요?“ 그 아저씨도 정확히는 모르는 눈치긴 한데 TV 광고가 히트 치면서 시작된 것 같단다. 그리 오래 되진 않았고. 40~50년 정도 된 ‘신삥’ 전통이란다. 이렇게 한 사회의 문화를 바꿀 정도의 TV 광고라니? 대단한 광고임이 틀림 없으렸다. 


그 광고는 ‘一家烤肉萬家香’이라는 1986년도 불고기 양념 간장 광고였다. 해석해 보자면 ‘한 집에서 굽는 고기 냄새가 온 동네에 진동한다’ 정도 될 것 같다. 고기를 좋아하긴 하지만, 안 좋아한다 하더라도 광고 사진 속의 구워지는 고기 모습이 꽤 먹음직스럽긴 하다. 


대만 사람들도 이제 와서는 추석날 고기 굽는 전통이 어떻게 생겨났는지 궁금한가 보다. 인터넷에 여러 연원이 소개되고 있다. 이 광고도 주요한 역할을 하긴 했지만 원주민 가운데 고기 구워먹는 풍습이 있기도 했고, 광고 이전부터 이미 추석날 바비큐 풍습은 시작되었단다. 특히 대만 중부 신주시(新竹市) 지방에서 말이다. 


대만의 한 언론매체(민생보(民生報))가 1982년 추석에 보도한 기사다. “신주시 지역에서는 올해 중추절에 달맞이 바비큐가 유행하고 있다. 야외 관광지구 곳곳에서 고기를 구울 뿐만 아니라 야외로 나가지 않은 사람들은 대문 앞이나 베란다에서도 화로불에 고기를 굽느라 연기가 자욱하고 그 냄새가 짙게 퍼진다. 이전에는 중추절에 대부분 월병과 유자를 먹으며 얘기를 나누고 달구경을 했다면 올해는 고기 굽는 모습이 더해졌다. 명절 분위기를 돋운다는 의견도 있고 휘영청 맑은 달맞이 분위기를 해친다는 불만도 있다.” 광고가 나오기 전인 1982년에 이미 신주시에서는 추석 달맞이 바비큐가 성행하고 있던 셈이다. 


헌데 신주시에서의 바비큐 연원 또한 흥미롭다. 신주시에서는 캠핑용 화로와 바비큐 장비를 만드는 업체들이 많은데 당시 수출 부진으로 해외 판로가 막히자 가격을 대폭 낮춰 박리다매로 내수 판매로 전환했기에 신주시 지방에서 바비큐가 성행했다는 언론 보도다. 


이러저러한 이유로 80년대 생성되기 시작한 추석 달맞이 바비큐 문화는 90년대 이제 대만 전국으로 널리 퍼져 정착한 것으로 보인다. 1992년 대만 언론 매체들이 “‘바비큐 명절’(烤肉節)은 중추절(中秋節)의 대명사가 되었다.”라고 보도했을 정도니 말이다. 


하지만 문화라는 게 또 어떻게 바뀔지 모르겠다. 그 부작용 또한 나오고 있으니 말이다. 대만의 한 언론매체(자유시보(自由時報))의 올해 9월 29일자 독자 투고란에 “중추절 바비큐, 공기 오염 조장하고 있어”란 기사가 실렸다. 제3자인 나로서는 웃음이 터져 나왔지만 투고 당사자는 열불 터졌을 법하다. 


간단히 투고 내용을 소개하면 이렇다. 추석을 앞둔 전날 피트니스센터에서 스테퍼 등의 운동을 하던 중 연기와 고기 냄새가 진동하길래, 무슨 일인가 보니 센터 직원들이 한쪽 베란다에서 고기를 구워 먹고 있는 게 아닌가. 


화가 단단히 나서 쏘아붙였다. “돈 써서 운동하러 온 것이지 고기 구으며 나오는 PM2.5 초미세먼지 들이키려 온 게 아니에요.” 책임자에게 당장 고기 그만 구워 먹으라고 항의했다. 이에 책임자 왈, “1년에 단 한번 뿐입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어처구니없었을 이 고객은 주변의 운동하는 사람들을, 동의를 구할 양 돌아봤다. 놀라운 것은 다른 사람들은 이러한 바비큐 파티가 아무렇지도 않은 듯, 이 시기에 아주 정상적인 일인 양 받아들이고 있는 게 아닌가. 이에 이 사람의 시니컬한 반응도 재미난다. “좋아 오케이!, 우리 같이 들이키죠 머! 추석을 즐기자구요!” 후략..


하여간 신기하다. 전통과 문화라는 게 항상 오래된 것이라 여기고 있는데 40년 갓 생성된 문화를 그 현장에서 체험하고 있기에 말이다. 이렇게 한 나라의 문화가 형성되는 것이렷다. 아울러 여담이긴 한데 이번 추석에 대만의 문화에 동참하진 못했다. 고기에 대한 열망이 있긴 하였으나 우리 집에서는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해피 추석이다.


<1986년 ‘一家烤肉萬家香’ 광고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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