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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HGXING Oct 27. 2024

자전거 수리

[2018년 딸아이 아홉 살 (3)]

서울에선 자전거로 출퇴근 하곤 했습니다. 불광동 집에서 출발해 구기터널을 지나 부암동 고개를 넘어 청와대 뒷길로 해서 광화문을 가로질러 종각역 쪽에 있는 회사로 향하곤 했습니다. 고개를 두 번 넘어가는 ‘험난한’ 여정이었고 자전거 도로가 없기에 위험한 길이기도 했죠. 허나 부암동 언덕에 올라 윤동주 기념관을 지나 청와대로 향하는 내리막길은 그저 신나기만 했습니다. 그리고 자전거로 다니다 보면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였죠. 퇴근길에는 호기심에 구기동 골목을 누비기도 했고 광화문에서 부암동으로 향할 때는 서촌과 통의동 구석구석 헤매는 재미에 빠지곤 했습니다.     


회사가 원주로 옮긴 뒤에도 출퇴근은 가급적 자전거였습니다. 회사에서 가까운 사택에 살다보니 자전거는 최적의 교통수단이었죠. 자전거로 20분이면 충분했습니다. 여기도 고갯길이 만만치 않았지만 자전거 도로가 있었습니다. 혁신도시 초기라 자동차가 없다 보니 길 전체가 자전거 도로이기도 했고요. 치악산 아랫자락이라 겨울엔 눈이 심심치 않게 쌓였습니다. 그래도 자전거였습니다. 눈길을 달리는 게 위험하긴 했지만 쏠쏠했습니다.  


자전거를 좋아하긴 했지만 기계치다 보니 고장 나면 암담하기 일쑤입니다. 자전거가 고장 나면 얼마나 나기야 하랴만 바퀴에 구멍이라도 나면 혼자서는 어쩔 도리가 없습니다. 하다못해 바람이 빠져도 집에는 바람 넣는 기구가 없다보니 입맛만 다셨습니다. 자전거를 끌고 동네 자전거 수리점에 갈 밖에요. 


글쎄 서울 도심에서는 자전거 수리점도 세련되고 각종 서비스가 구비되어 있을 겁니다. 하지만 제가 살던 서울 외곽 은평구나 고양시쪽에선 자전거 수리점이라 하면 ‘정겨운’ 모습입니다. 늙수그레한 동네 터줏대감 아저씨가 기름때 잔뜩 묻은 장갑으로 자전거를 뒤집어 체인을 고치고 있거나 의자에 앉아 부채질 하는 정도의 모습이랄까요. 너무 각색한 거긴 하지만 하여간 동네에 어느 정도 오래 살아야 점포 위치도 정확히 알고 눈인사라도 건네면서 퉁퉁거리는 아저씨한테 말이라도 건넬 요량이라도 생깁니다. 자전거 바퀴 구멍도 때우면서 요령껏 소소한 서비스도 부탁하고요. 체인에 기름도 좀 칠하고 안장과 손잡이 높이도 좀 맞추고 말입니다. 


그러다 보니 자전거 수리 점포에 가서 자전거를 맡긴다는 것은 그 동네에 그래도 어느 정도 익숙해졌구나 하는 ‘징표’였습니다. 지리도 좀 눈에 익고 동네 분위기도 얼추 파악됐다는 자신감의 발로가 자전거 수리 점포에 가는 것이라는 얘깁니다. 엉뚱한 얘기지만 제게는 그렇습니다.   


베이징에 와서 작은 변화 중 하나가 와이프와 아이가 자전거를 배웠다는 겁니다. 아내야 자전거를 탈 줄은 알았지만 ‘3미터’ 자전거였습니다. 고작 3미터 정도 가면 옆으로 넘어지니 말입니다. 그러다 중고로 접이식 자전거를 한 대 샀습니다. 지난해에는 드디어 완전히 마스터했고요. 베이징 생활은 자전거 타기 이전과 이후로 나눠진다네요. 웬만한 거리는 자전거가 교통수단이고 운반수단입니다. 시장에 가거나, 테니스 치러 가거나, 피아노 배우러 가거나, 병원에 가거나 자전거를 타고 갑니다. 집에서 반경 10km 정도는 거뜬합니다. 대단하지 않냐네요. 대단합니다. 



딸아이도 여덟살이던 지난해 드디어 자전거를 탈줄 알게 됐습니다. 부부간에는 자동차 운전 가르쳐 주면서 티격태격하지 않나요?. 아이와는 자전거 가르치면서 티격태격했습니다. 그 찰나 이 녀석이 안넘어지고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동호만 아파트 6동 옆길을 지나가면서 분명히 잡고 있던 손을 놨는데 넘어지지 않았습니다. 잘 안되고 재미를 못 느끼니 찌푸리고 울먹대던 아이 표정이 ‘어 이거 머지?’하고 바뀌었습니다. 키가 해마다 부쩍 자라 지난해 말에 자전거를 좀 더 큰 것으로 바꿨습니다. 주말에 종종 우리 세 명은 나란히 자전거를 타고 장푸공원이나 량마치아오 근처 맛집을 찾아다니곤 합니다.    


그러다 한동안 와이프가 자전거를 타지 못했습니다. 자전거 앞바퀴에 아무리 바람을 넣어도 금세 빠지더라고요. 어딘가 구멍이 난 게 틀림없습니다. 몇 주간 끌다 주말에 등 떠밀려 고치러 나왔습니다. 어디선가 자전거 점포를 본 기억이 있는데 가물가물합니다. 구멍난 자전거를 끌고 이곳저곳 기웃거리다 길 건너편 멀리 ‘자이언트’란 표지판이 보입니다. 자이언트는 그래도 꽤 알려진 자전거 브랜드. 점포 앞에는 많은 자전거들이 나와 있고 젊은 친구들이 각종 도구로 자전거들을 고치고 있습니다. 


능숙합니다. 두어 번 바퀴를 눌러보더니 일자 드라이버로 바퀴 옆을 꾹꾹 눌러 겉 바퀴를 떼어냅니다. 그러곤 그 안의 고무튜브를 빼내어 에어펌프로 바람을 넣고는 꽉 잡아 어디서 바람이 세는지 확인합니다. 고무패치를 붙일까 싶었는데 아예 새 튜브를 가져와 교체하네요. 불광동 아저씨는 구멍 난 곳에 ‘구멍 전문 테이프’를 붙이던데 이 친구는 아예 바꿔버립니다. 비용이 꽤 나올까 싶었는데 싸기까지 합니다. 중국돈 25위안인가 그랬습니다. 다시 겉 바퀴를 끼어 넣고 바람을 가득 집어넣습니다. 곳곳에 기름도 칠하고 먼지도 닦아줍니다. 한번 타보라네요. 가뿐합니다. 


자랑스럽고 기쁜 소식을 어서 알려야 합니다. 당장 사진을 찍어 와이프에게 보냅니다. 의기양양하게 말이죠. ‘엄지 척’ 이모티콘 하나 딸랑입니다. 고작 이모티콘 하나람. 하여간 뿌듯합니다. 이제 왕징 이 동네도 얼추 익숙해졌나 싶습니다. 골목 지리까지도 어느 정도는 알 듯 하고요. 제가 이제는 동네 원주민이 된 것 같고 동네 반상회라도 나가야할 듯합니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자전거 수리 하나에 이 온갖 ‘의미’를 괜히 혼자 담아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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