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딸아이 아홉 살 (2)]
Roses are red
Violets are blue
Sugar is sweet
And so are you
가방을 열어보니 메모지가 하나 있고 위 글귀가 쓰여 있습니다. 있을 줄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역시 기분 좋습니다. 딸아이가 아빠인 제게 주는 편집니다.
학교 가기 전 아침부터 아이가 분주했습니다. 자기 방에서 메모지에 무언가를 쓰고 있네요. 방에 들어가려 하면 함박 웃음을 지으며 급히 메모지를 숨깁니다. 아무것도 아니라면서요. 그러면서 묻는 말. “아빠, 회사에 가면 가방에서 어디를 꼭 열어봐?” 열어보는 곳에 메모지를 두겠다는 뜻이겠죠? 이렇게 무언가를 준비하는 자체가 아이도 기분 좋은 모양입니다.
딸아이가 메모를 준비했던 데는 나름 이유가 있습니다. 그 전날 아빠가 울적해 보였기 때문일 거에요. 그러면서 항상 자기랑 재밌게 놀던 아빠가 그다지 따듯하게 대해 주지도 않으니 슬펐나 봅니다. 미안했습니다. 같이 잠들며 “미안 아빠가 좀 기분이 울적했어” 그러니, 꼭 껴안으며 눈물을 쏟습니다.
딸아이는 섬세한 아입니다. 아빠의 작은 표정과 말투 하나하나의 변화도 캐치를 해넵니다. 이 녀석이 그런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마음이 불편한 일이 생기거나 화가 나더라도 부러 아무렇지도 않은 듯, 짐짓 오히려 더 쾌활한 듯 표정을 짓습니다. 이 녀석은 그런 것도 아는 듯하지만. 그래서 간혹 마음이 먹먹하기도 하고 혹시 제가 그리 키운 것은 아닌가 걱정이 되기도 합니다. 아이라면 그저 천진난만하면서 밝게 뛰어놀면 좋은 거 아닌가요. 섬세한 것이 나쁜 것은 아니지만 아이가 제 마음의 변화에 조금은 둔감하면 좋겠습니다.
하여간 아이 메모를 받았는데 무언가 이 녀석이 좋아할 만한 것을 해주고 싶었습니다. 길게 편지를 쓰는 것보다는 간단하게 무심하게 짤막한 영어 문구로 회신을 주는 게 무겁지도 않고 좋을 듯 합니다. 이럴 때 써먹을 만한 문구를 알 리가 있나요. 점심시간에 부랴부랴 인터넷을 뒤져보니 적당한 듯싶은 노래가사가 찾아집니다.
You are my sunshine, my only sunshine.
You make me happy when skies are gray.
You'll never know dear, how much I love you.
아이가 좋아할 만한 노란색종이에 적었습니다. 이것만 주기에는 아쉬운 듯하여 편의점에 가 초콜릿을 하나 사서 접은 메모지 속에 넣고 테이프로 사방을 감았습니다. 나름 예쁘게 한다고요.
퇴근 후 집에 가면 언제나 아이가 뛰어와서는 푹 안깁니다. 꼭 껴안으며 “M, 아빠 가방에 아주 기분 좋은 게 있더라, 고마워!” 아이가 배시시 웃습니다. 그러곤 나도 물었죠. “M, 학교 가면 가방에서 어디를 꼭 열어봐?” 이 녀석도 당연히 짐작했겠죠? “응 아빠 난 가방에서 노트 들어있는 데는 꼭 열어”
아이 ‘몰래’ 공책 들어 있는 가방 안쪽에 접은 메모를 넣었습니다. 딸아이가 모를 리가 있나요. 쪼르르 달려와서 가방을 들여다 보고는 노란색 메모에 환히 웃습니다. “아빠 이게 머야?” “응 아무 것도 아니야, 학교 가서 봐봐” “나 열지는 않을 건데 한번 꺼내봐도 돼?” “음 알았어, 열지는 마” “머지? 머가 들었을까?” 같이 잠들면서도 노란색 메모 얘기뿐입니다.
다음날 회사로 가고 학교로 가고, 다시 퇴근해 들어왔습니다. 궁금하네요. 이 녀석이 어떤 표정을 지을까, 노란색 메모 보고 어떤 기분이었을까, 메모지를 어디에 붙여 놨을까. 나는 그 메모지를 회사 컴퓨터 옆 벽면에 붙여 놨습니다.
집에 들어가니 노란색 메모지가 식탁 위에 펼쳐져 있었습니다. 아이는 마루 바닥에서 그림을 그리며 놀고 있고. M 하고 부르니 “아빠” 하며 옵니다. 음 별 얘기가 없네요. 먼저 물었죠. “M, 가방에서 봤어?” “응 아빠, 맛있었어!” 음 맛있었다는데요. 초콜릿이. 메모 내용은 별 얘기가 없습니다. 아이에 대한 걱정은 기우였던 듯싶습니다. 딸아이는 섬세하기도 하지만 적당히 아이답게 무심하네요. 머 그럼 됐습니다. 그래도 메모 얘기도 좀 해주면 좋을텐데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