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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화 이경희 Mar 21. 2018

내 마음의 숲

 - 우수와 경칩 사이에 쓴 글, 춘분에 꺼내 읽다

내 마음의 숲


진화 이경희

나무는 사철 제 몫을 다한다. 2월이라 아직 나무에 잎도 꽃도 없고 잠잠하다. 우리 집 울안의 두 나무는 사뭇 형편이 다르다. 둘 다 가지 높은 곳에 지난가을이 열매를 매달고 있었다. 감나무의 달디 단 까치밥은 산새들이 짬짬이 찾아와 다 먹고 가서 텅 비었지만, 남아있는 모과나무의 열매는 얼었다 녹았다 반복하며 가지 끝에 그냥 매달려 있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의 나무를 다 좋아하지만 2월의 나무를 유심히 바라보는 까닭은 겨울을 죽은 듯이 난 후 봄을 맞으며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 궁금하기 때문이다. 아직 꽃이 없으니 꽃샘추위라고 하기에는 이르지만 2월의 추위는 참 을씨년스럽다. 오늘 밤에는 마른하늘에 천둥번개까지 치더니 눈이 펑펑 내린다. 그러나 아무리 으름장을 놓아도 봄은 오고 말랐던 나뭇가지에 움이 틀 것이다. 매운 겨울도 잘 넘겼는데 코감기와 몸살기를 앓으며 그래도 잘 버텼다고 자신을 토닥여준다.

특히 이번 겨울에는 1주일 간 영상 40도에 이르는 더위의 나라로 출장을 다녀왔더니 몸도 50~60도의 기온차를 이겨내느라 애를 많이 썼다. 세월의 속도와 몸의 속도는 반비례한다. 그렇게 민첩했던 어머니는 버스를 세우려다 넘어진 후로 뛰거나 달리지 않고 조심을 하신다. 차차 몸의 유연성이 떨어지는 것을 어쩔 수 없는 자연의 이치니 넘어지는 것을 조심해야 한다고 누차 당부를 드렸다. 하지만 그것은 내게도 해당되는 말이다. 모과나무와 더불어 나이가 먹어가는 어머니와 나, 우리는 인생의 가을과 겨울로 가고 모과나무는 우리 마당의 대표로 다시 봄을 기다린다.

주일에는 교회에 갔다가 늘 정동길을 산책한다. 지난주에는 러시아공사관 유적에 가서 사진을 찍고 경희궁 앞으로 언덕을 넘다가 오랫동안 공사를 멈춘 건물이 있어 유심히 바라보았다. 처음에 계획이 있었을 텐데 어쩌다 회사가 파산을 해서 몇 년째 방치되고 있는지, 거기에 얽힌 얼마나 어려운 사연들이 많을지 헤아려 보았다. 그 건물과 울타리를 두고 비어있는 터가 있고 학교가 있던 자리를 홀로 지키는 회화나무가 있다. 한 때는 여자 중고등학생들이 그 나무를 중심으로 쉬고, 민속춤 축제도 했었는데 1988년 이래로 30년째 터가 비어있다. 원래가 경운궁 터였으나 학교가 들어섰고, 미국 대사관이 터를 사들여 건물을 지으려다 중단된 상태로 울타리만 쳐놓았다. 아무리 말 못 하는 나무지만 한 때 궁궐에 위풍당당하게 서 있다가 여학생들의 쉼터가 되었던 300살 넘은 고목이 홀로 30년을 보내고 방화로 훼손되었다니 더욱 마음이 짠하다. 행여나 다시 살아나 새잎이 돋아날까 자주 가서 지켜보려 한다.

나무만 보면 만지고 올려다보며 살아온 날을 헤아리는 것이 습관이 되어 가까이 달려가서 관찰을 한다. 나이가 들어도 의연한 모습, 
세상의 많은 이야기를 듣고 보았지만 묵묵할 뿐 말이 없다. 옛 궁터였던 정동에는 유난히 회화나무 고목이 많다. 이화여고 건너 캐나다 대사관 앞에 있는 나무, 배재학당 박물관 앞에 있는 두 그루의 고목, 모두 몇 세기를 살아온 나무들이다. 맑은 날이나 비가 쏟아지는 날에도 나무는 그냥 서서 모든 것을 받아들인다. 뿌리를 움직일 수 없는 나무가 할 수 있는 일은 서식하는 새나 벌레들을 품어 받아들이는 것이고 가장 큰 방어는 피톤치드를 뿜어 병충해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것뿐, 가장 큰 천적은 역시 사람이다.

식물의 화석인 은행나무도 오래 사는 나무 중의 하나다. 정동길 이화여고 교문 앞에 서있는 나무는 중학생 때부터 반백년을 바라보았다. 지난 주일에는 차를 이화여고 주차장에 세워두고 교회에 다녀오다가 은행나무를 두 팔로 껴안았다. 딱 두 아름 정도 되었다. 울퉁불퉁 거친 나무의 몸을 가까이 들여다보니 나무껍질의 두께가 손가락 두 마디만큼이나 두껍다. 가지 끝에 여린 연둣빛이 어리고 꼬물꼬물 새싹이 돋아나면 어느새 부채꼴의 신록의 여름을 다가오고 머잖아 정동길의 젊은 은행나무를 거느리며 황금빛 가을을 맞이할 것이다.

집을 줄여 이사를 해야지 하면서도 못내 아쉬운 것은 집 마당에 있는 모과나무, 
감나무, 향나무, 홍송을 두고 가야 하기 때문이다. 예전에 살았던 집에 대한 기억은 주로 나무와 함께 되살아난다. 참새 수백 마리의 보금자리였던 카이로 헬리오폴리스 빌라의 키 큰 망고나무, 고향에서 여생을 보낸 아버지의 사랑-매화나무와 뒤란에 빽빽하던 검은 대나무 숲, 학창 시절 언덕을 넘어 등하교하던 길에 도토리가 툭툭 떨어지던 참나무 숲길, 나무의 기억들이 내 마음속에 숲을 이루어 흔들리는 세상 속에서도 평화를 준다. 마당에 나무가 깨어나는 조용한 소리, 곧 3월이다.




봄을 기다리는 모과나무
연둣빛 소름이 돋는 모과나무 가지끝
 가지끝에 매달린 채 겨울을 난 모과나무 열매


오대산 전나무 숲
인제 자작나무 숲
브루나이 맹글로브 숲과 턱시도를 입은 신사 코주부 원숭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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