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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똘맘 Apr 13. 2023

아이 둘 데리고 집도 없고 갈 때도 없을 때...

3일 남겨 놓은 캐나다 행을 취소 하니, 어디로 가야할지 막막했다.

눈물을 훔치며 걱정을 산더미처럼 쌓아 놓고 캐나다 가기 전에 만나고 가려 던 언니네 집으로 갔다.  
언니를 보자마자 울음이 터져 나왔다.

Unsplash의Zhivko Minkov
"더 좋은 곳 갈려고 상황이 이렇게 된 거라고 생각해..."


위로를 받으며 머리로는 이해가 되지만 마음 속은 돌덩이 하나가 올려져 있는 것처럼 답답했다.
술을 마시는데 취하지도 않았다.

오늘이 지나면 어디에 가야 할까?


2일 후 캐나다로 간다고 생각했기에 우리의 모든 짐은 차 한대에 실려있는 캐리어 4개가 끝이었다.


집도 없고 갈 곳도 없었다. 언니네 집에서 나가면 어디로 가야 하는지 목적지도 없고 오라는 사람도 없었다. 가족은 있지만 편하게 신세 질 수 있는 가족은 없고 모든 것이 뒤죽박죽이었다.
다시 기다려야하는 4개월을 생각하니, 깨지는 돈도 더이상 감당하기 힘들었다.
알바를 구하는 사이트를 뒤적거리다가 거제도에 초밥 요리사 구하는 곳이 있어서 잠정적으로 남편과 거제도를 다시 내려가기로 하고 거제도에 살던 집 주인에게 다른 예약을 잡지 말아 달라고 전화로 부탁했다.

밤이 깊도록 언니네 가족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사람 일은 어찌 될지 모른다면서 주위에 열심히 노력해서 부자가 된 사람들 이야기를 했다.  나쁜 일이 지나가면 좋은 일이 온다는 취지로 희망 찬 이야기만 했다.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잠자리에 들어서 그런지 새벽에 문득 떠오르는 사람이 있었다.


아! 그 오빠가 평택 고덕 식당에
직원 구하기가 힘들다고 했었는데!

그 지인과는 십 년 된 사이인데, 신혼여행에서 만났다.

10년전 우리가 신혼여행을 계획 했을 때, 한번도 가보지 않았던 유럽에 꼭 가고 싶었다. 그 중 이탈리아와 프랑스를 가고 싶었는데, 유럽 여행은 처음이라 걱정되는 마음에 패키지로 갔었다.

그 때 같은 패키지에 여러 커플들이 함께 했다. 하지만 서로 대면대면 고개 인사만 했었는데, 이탈리아에서 마지막 저녁에 가이드가 다음날 공항은 각자 가는 것이라고 하여 패키지 사람들이 패닉이 되었다.  그 덕분에 "내일 어떻게 공항 가실꺼예요?" 라며 자연스럽게 6박 7일 만에 말을 섞었고 저녁에 한잔을 하며 친해 진 커플이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신혼여행 마지막날까지 함께 했던 4팀이 일 년에 한 두 번 모임을 하고 있었다. 그 중 한 분이 사업을 하셔서 만나면 사업에 대해 좋은 말을 많이 해주셨던 분이다.

마지막 모임이 코로나 이전이었는데, 그 때 평택에 식당을 차리는데 인원이 구해지지 않는다고 했던 말이 떠올랐다. 또 그 분이 오피스텔이 몇 곳이 있는데, 그 곳에서 모임을 했던 것이 기억났다.   

어렸을 때부터 남들한테 폐 끼치지 말라는 소리를 많이 듣고 자라서 그런지, 다른 사람에게 밥을 얻어 먹는 것도 잘 못하고, 눈치 보는 사람이라 남들에게 부탁도 못하고 먼저 연락도 못하는 성격이었는데,  어디에서 용기가 났는지 아니면 그동안 내가 많이 변했는지, 아침 일찍 일어나자마자 그분에게 우리의 현재 상황과 혹시 집과 일자리를 잠시 제공 받을 수 있냐는 뻔뻔한 문자를 보냈다.

두 시간쯤 지났을까, 언니와 카페에서 커피 한잔을 마시고 거제도로 내려가려고 발걸음을 옮기는 중에
전화가 왔다.


지금 식당 하나 오픈 하는데 인원 없었는데 잘 됐다.
고덕으로 와!


영화 같은 일이 갑자기 일어났다. 긴장이 확 풀리면서 갑자기 눈 앞이 환해졌다.

Unsplash의Dyu - Ha
구해라, 그럼 얻을 것이다


종교는 없지만 성경에 좋은 말들은 드문드문 알고 있는데 그 좋은 말씀이 현실로 펼쳐졌다.

내가 언제 무엇을 해 달라고 말한 것이 있었나? 기억이 안 난다.
무엇이든 부탁을 하면 빚을 지는 것 같은 마음에 혼자만 끙끙대며 살아왔었는데,
이렇게 내가 원하는 것을 생각하면 생길 수 있다는 것도 현실에서 처음 느껴보는 것 같다.

말도 안! 말도 안!
진짜 말도 안는 일이 생겼다.

그렇게 어쩌다 생긴 소중하고 감사한 인연 덕분에 인생 최대의 고비를 넘길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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