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하지 않던 학교 생활
중학교 고등학교 시절을 떠올려 보면 생각이 잘 나지 않는다.
반장도 했었고 나름 재미나게 놀았던 것도 같지만 35살 나이에 되돌아 보면 뿌연 안개도 아닌,
쌀뚝 잘린 기억쳐럼 기억나지 않는다.
친한 친구도 많지 않았다. 초등학교때의 심한 왕따 기억때문인지 여자친구를 깊게 사귀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다. 그 대신 남자친구는 있었다. 하지만 그냥 같이 학교를 가거나 영화를 보러 갈 사람이 필요 했던 것 같다.
부모님에게 못받은 애정 때문인지 남자친구는 어린 나이에 부터 생겼었다.
아마 나와 같이 가족에게서 애정을 받지 못하여 외부에서 애정을 받고 싶어 하는 나와 같은 아이들이 아니었나 싶다. 옛날 남자 친구를 우연히 만나서 나랑 왜 만났었냐고 물어 봤었다.
대답이 충격적이었다.
" 니가 맛있는거 잘 사주고 선물도 잘 사줘서."
나는 그 아이에게 무엇을 사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난 어려서부터 사랑과 돈을 착각 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관계는 나에게 정말 어려운 숙제 같았다.
집에서 친구 관계에 대해 힘들다고 말을 하면 무조건 내가 잘못했다고 하며 "이렇게 말을 했어야지!"라며 화를 내는 엄마로 인해 엄마와의 소통은 단절 되었었다. 아니, 내 생활에 대해 관심 있어 하지 않았다. 본인의 옳음과 우월함만을 나에게 주입 시키고 싶어하는 엄마였다.
담임과 학부모와의 상담은"문제 없나요?" "공부 잘하고 문제 없어요!" 가 다 였다. 의사와 환자 보호자의 통화도 아닌데 왜 학생과 학부모의 상담에서 학생이 문제가 있거나 없는 환자가 되는 것일까?
집은 즐거운 장소가 아닌 돈없고 갈때가 없으니 어쩔 수 없이 가야하는 장소였다. 다행히 집에 있는 시간은 많지 않았다. 학교를 가고 학원을 가고 도서관을 가고 가끔 주말에 도서관을 간다고 뻥을 치고 영화 보러 가는게 낙인 삶이였다.
중고등학교 6년간은 행복하고 기뻤던 기억이 없이 빠르게 흘러갔다.
내가 14살부터 19살까지 무슨 생각을 했었는지 어디에 관심있었는지도 느끼지 못하고 시간이 흘렀다.
의사가 되기 위해서? 변호사가 되기 위해서? 나는 왜 의사가 되어야 하는지 의사의 일상이 어떤지, 무슨일을 하는지에 대해 생각 해 보지도 못한 채 아픈사람을 도와준다는 기본적인 관념과 돈을 많이 번다는 생각을 가지고 의사가 되라는 부모님의 말에 따라 열심히 공부만 했다. 다행히 그 환상은 모의고사가 치뤄지면 치뤄질 수록 와장창 깨져주었다.
길을 잃었다. 아니, 나에게는 길 조차 존재 하지 않았다.
부모님의 눈치를 보며 공부 했고 왜 공부하는지도 모른채 공부했다. 부모님도 내가 왜 공부해야 되는지도 모른채 공부 시켰던것 같다. 본인과 다른 인생을 살게 하기 위해 좋은 학교에 목을 메고 공부를 시켰다.
수학을 잘 하지 못해서 서울대학교 학생에게 과외를 시켰다.
나는 그 사람과 얼마 기간동안 과외했는지, 무슨내용을 했었는지, 어떻게 가르쳤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엄마는 아직까지 서울대생에게 과외를 시켰는데 내가 수학을 못했다고 말을 한다.
반에서 1등 해야 된다는 강박관념에 왜 1등을 해야 되는지도 모르고 다른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교과 과정에서
생각 없이 공부 했다. 그렇게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6년의 시간은 없어졌다.
꿈을 키우고 재능을 배워야 하는 시기에
남들이 만들어놓은 교과서, 시험, 주입식교육, 학교와 학원 시스템 속에서 의사나 변호사가 될 수도 있다는 희망고문을 하며 시간을 흘려보냈다.
책? 독서? 읽을 시간도 없었다. 쉬는시간에는 아이들과 어울려야했고 수업시간에는 당연히 교과서 이외의 책을 보면 혼났었다. 또 문제집 이외의 책을 살 돈도 없었고 도서관은 교과서와 문제집을 싸들고 가는 곳이라고 인식되었다. 주변에 독서를 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집에 오면 드라마를 정말 재미있게 보고 있는 부모님 옆에 교과서를 들고 앉아서 드라마를 열심히 봤다.
이런 일반적인 근면성실한 모범적인 생활 덕분에 부자가 되는 일은 멀어져갔다.